가족 또는 지인과 식당에서 주문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나를 향해 건네주는 주옥같은 대사이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결은 비슷하다. 가족이나 동료 할 것 없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음식을 선정해 주거나 자신이 선호하는 음식을 시킨다. 그들에게 나는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매번 식당을 선정하거나 음식을 결정할 때 엄청나게 고민한다. 짜장과 짬뽕, 콜라와 사이다 그리고 양념치킨과 후라이드는 무엇을 결정하든 시간이 걸린다. 크게 고민할 이유도 없는데, 가게에 들어가기 전부터 수능 문제를 푸는 듯이 최근 먹었던 음식까지도 따져가며 최적의 맛을 찾는다.
어려서부터 즐겨 입던 옷도 회색이 많다. 서른 즈음에 처음 느꼈는데, 마흔이 넘어가는 시점에도 옷장안이 회색 빛깔 가득한 것을 보면, 명백한 결정 장애가 맞을 수도 있다. 나름 흑백 논리에 빠지고 싶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개똥철학을 가져다 붙이며 회색분자를 흡족해 하지만, 십수 년 정도 지켜왔던 소신 없는 행태를 보면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만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귀가 얇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짬짜면이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같은 메뉴도 탄생한 것이다. 결정장애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주관이 뚜렷하고 신속결정러들에게 답답함을 선사할 뿐이다.
하지만, 내 결정 성향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늘 선택을 못해서 지리멸렬 끌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특정 분야는 단호하고 빠르게 결정한다.
평소 결정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결정장애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일에 대한 내 작은 가치관 중 하나가 '결심이 늦어지면 서두른다'를 되새기며 빠른 상황판단 이후 단시간에 결심하는 편이다. 주변에서도 끊어주는 결정을 잘해서 수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한, 안전의 욕구가 크다 보니 안전 위해요소가 발생했을 경우에 단호하다. 가끔 불안전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아이들도 그 모습에 놀라고 울면서 아빠 밉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음식은 답이 없다. 결국,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주고 운명처럼 순응하면서 결과를 즐기는 것으로 택했다. 내 결정이 생사를 가르지도 않고 막심한 후회를 가져오지 않는 상황이 확실한데, 고민할 필요 없이 배려도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같은 결정장애가 있는 후배들은 곤욕이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결정장애란 단어가 나와 겹쳐 보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몇 가지 결정이 쉽지 않다. 어디다 쓸 것 인지, 무엇을 쓸 것인지부터 퇴고를 더 할 것인지 까지 수차례 고민하며, 최종 발행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결정의 무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대신 결정하도록 권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두 눈 딱 감고 운명이라는 보험 등 뒤에 숨어서 모든 결정을 관망하게 된다.
누군가는 삶 자체가 결정 또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일본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명대사 "운명이 아니야! 우연도 아니야! 우리는 각자의 결정을 따라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도 같은 맥락이다. 단지 결정에 걸리는 시간이 빠르고 늦음 보다는 결정에 따른 순응과 만족을 통해 발전해 나가는 게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유에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만족하던 세상이 굽고, 뿌리고, 볶으며 바사삭하거나 푸다닥 거리는 지경을 반갑게 느낀다. 복잡한 선택지에서 이번 주 나의 결정은 아내가 좋아하는 신포 닭강정이다.
* 표지 : 얼마 전 다녀온 단골 브루어리에서 주문한 레몬 페퍼 치킨과 맥주를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다른 결정은 쉽지 않지만 어떤 치킨이라도 함께하는 음료는 맥주가 정답입니다. 특히, 브루어리에서 직접 만든 정키 세일러 생맥주는 치킨 맛을 열 배 이상 높여줍니다.
보통은 매거진 주제가 부여되면 바로 구상하고 빠르면 당일이나 일주일 전에 초고를 씁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주 보글보글 매거진 주제에 대해서도 직관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육계(?) 장으로 웃긴 글을 쓰려다가 힘들었던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사다 주신 간석시장 닭강정 이야기를 썼습니다. 참고로 친구 놈이 닭을 튀깁니다.
하지만, 갑자기 발생한 많은 일과 글이 가져다주는 복잡한 생각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퇴고는커녕 모든 일을 제쳐두고 좋아하는 육아일기만 여러 편 썼습니다. 매일 쓰는 자신과 약속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여유롭게 글을 쓰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보자란 생각을 했고, 발행 전 새벽까지 미루다가 허겁지겁 서둘러서 작성했습니다.
하루 전 글을 발행한 차영경 작가 글과 그 글에 대한 본인의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담은 글까지 읽고 머리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결국 취기를 빌려 침대에 누운 채 휴대전화로 꾹꾹 눌러가며 제가 정한 마감 네 시간 전에 초고를 마무리했습니다.
최근 퇴고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보니 다시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고, 결국 한 주를 건너뛰는 것보다 미진한 글이지만 발행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결정하고 나니까 '모든 순간들의 안녕들'의 저자 김수정 작가가 선물하여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그 길을 걷는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매 순간 옳다'란 문구가 머릿속에 새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