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an 26. 2022

<동화> 닭다리는 이제 그만!

1월 4주
[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
아이가 치킨을 먹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이가 가장 맛있게 행복하게 즐겁게 감동적으로 먹는 상황"



그날은 아침부터 신이 났어요. 친구들과 수영장 가는 날이었거든요. 비가 왔지만 상관없었어요. 어차피 물놀이인데 비가 오면 더 재미있지 않겠어요? 비가 와서 그런지 수영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야호! 진짜 잘된 일이었어요. 기다리지 않고 미끄럼틀을 탈 수 있었거든요.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어요.

친구 동생도 몇 명 있었는데 저보다 두 살 어린 유치원생들이었죠. 엄마들은 우리한테 동생들을 잘 데리고 다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렇게 걱정되면 엄마들이 동생들이랑 같이 있어주면 되는데, 엄마들은 수영복도 안 입고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만 나누었어요. 동생들은 우리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우리가 노는 대로 따라 했죠. 귀찮았지만 뭐, 괜찮았어요. 말은 잘 들었거든요.


한참 물놀이를 하는데 엄마들이 불렀어요. 치킨을 먹으라고 말이죠. '오늘이 내 생일인가? 왜 이렇게 좋은 일만 가득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치킨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니까요.

먹음직스러운 후라이드 치킨이 테이블마다 하나씩 놓였어요. 엄마는 "다른 음식도 시켰으니까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라고 했어요. 하지만 제 눈엔 치킨만 들어왔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다리 하나를 얼른 집어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엄마가 제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진호야~ 닭다리는 동생들에게 양보하면 어떨까? 네가 하나 먹어버리면 동생 중에 한 명은 못 먹게 될 텐데?"

엄마는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저는 엄마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싫어. 나도 닭다리 먹고 싶단 말이야."

"에이. 우리 진호 착하지? 동생들 주자~ 엄마가 나중에 집에 가서 닭다리만 잔뜩 시켜줄게~"

저 원래 그런 애 아닌데요, 그날은 화가 너무 나서 떼를 쓰고 싶어 졌어요.

"아. 싫다고~~ 내 동생도 아닌데 왜 맨날 내가 양보해야 되냐고~"


한참을 엄마랑 실랑이를 하다가 입맛이 뚝 떨어진 저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선포했어요. 엄마는 혼자 수영장으로 가버린 저를 쫓아와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요. 닭다리도 날아갔고 제 입맛도 날아갔고, 엄마도 미워졌거든요.

"엄마는 진호 엄마잖아! 그런데 왜 맨날 자기 아들을 안 챙기고 남의 애들만 먼저 챙겨?"

제가 이렇게 말하니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빨개졌어요. 사실이니까요. 우리 엄마는 어떨 땐 내 엄마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다른 애들만 챙겼어요. 맨날 저한테 참고 양보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저는 제일 맛없는 것, 남은 것만 먹었어요. 엄마는 왜 그런 걸까요? 이해가 안 됐어요.


그날 저녁, 전 치킨을 먹지 않았어요. 엄마가 사과의 의미로 치킨을 사준다고 했을 때 날름 받아먹으며 좋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닭다리만 잔뜩 시켜주겠다고 엄마가 절 설득했지만, 어림도 없었죠. 제가 상처받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이후로 엄마는 치킨을 먹을 때마다 닭다리를 제일 먼저 제 접시에 올려주었어요. 그날 일이 미안했나 봐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닭다리를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올라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어제저녁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치킨을 먹는데 엄마가 제 접시에 닭다리를 올려놓으면서 한마디 하더라구요.

"닭다리는 우리 진호 꺼~ 우리 진호는 닭다리 좋아하지?"

전 갑자기 짜증이 났어요.

"엄마는 진짜 뒤끝이 길어!"

"뒤끝? 무슨 뒤끝?"

"맨날 그날 생각하면서 닭다리를 나한테 주는 거 말이야! 그날 나 때문에 창피했던 거 생각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잖아!"

"진호야~ 엄마는 너한테 복수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정말 미안해서 그래. 네 말대로 엄마는 진호엄마인데  다른 애들만 챙겼다는 걸 그날 알았거든. 배려가 뭔지 알려주려고 그랬던 건데, 정작 엄마는 너에게 배려있는 엄마가 아니었던 거잖아. 엄마는 진호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어야 했는데 남들에게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거야. 그게 너무 미안해서 그날 이후로 결심했지. 닭다리는 무조건 진호만 주자고."


엄마의 말에 저는 화가 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화가 났어요.

"사실 나 닭다리 안 좋아하거든?"

"뭐라고?"

엄마는 더 당황했어요.

"난 닭날개랑 넓적다리 좋아해. 그날 괜히 투정 부려본 거라고. 닭다리를 무조건 동생들에게 양보하라고 한 엄마한테 화가 났던 거야. 게다가 그날은 내 기억에서 없애고 싶은 날이야. 동생들이랑 아줌마들 앞에서 화내고 울고 그랬던 게 얼마나 창피한지 몰라. 그런데 엄마가 치킨 먹을 때마다 자꾸 닭다리를 챙겨주니까 그날 일이 떠올라서 기분이 나쁘다고!"

엄마는 풀이 죽어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그랬구나.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닭다리를 챙겨주면서 진호에게 그날 일을 떠올리게 했네. 미안해. 엄마가 또 실수했네. 닭날개랑 넓적다리를 좋아하는 것도 여태 몰랐고 말이야."


엄마가 힘없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속상했어요. 엄마가 날 사랑하고 생각해주는 건 잘 알거든요. 닭다리를 챙겨준 건 그날 일이 미안해서라는 것도 알지요. 하지만 저에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라는 게 있는 건데 그걸 자꾸 끄집어내는 것 같아서 화가 난 거예요.

"이젠 진호 먹고 싶은 부위 마음대로 먹어. 앞으로는 치킨으로 널 괴롭히지 않을게. 미안해..."

"아니야 엄마. 나도 화내서 미안해..."

"그런데 말이야 진호야~"

"응?"

"먹고 싶은 부위 다 먹어도 되는데, 모가지는 양보 못한다! 엄마가 닭 모가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엄마도 그건 포기 못해!"

"알았어~ 하하하. 모가지는 엄마 먹어~"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을 사이좋게 나눠먹었습니다.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작은 아이와의 일화가 자동으로 떠올랐습니다.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제 마음에 미안함으로 가득 찬 기억이었거든요. 글을 쓰기 전 아이에게 그날 일을 물었더니 아이가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또 그 얘기냐면서 엄마는 참 뒤끝이 긴 사람이라고 싫은 내색을 했지요. 엄마가 닭다리를 챙겨줄 때마다 자신에게 부끄러운 기억인 그날 일이 자꾸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원래 닭다리보다 닭날개를 좋아한다고 닭밍아웃까지 하지 뭡니까.

남의 집 아이를 먼저 챙기는 바람에 정작 내 자식에게 낸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으며 그것이 저의 그릇된 배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글이 아이에게 또 한 번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아닐까 미안했는데 아이는 발행을 허락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배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네요.


상대를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 배려입니다. 배려하고 싶다면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남의 아이만 관찰하고 마음을 써버렸던 거죠.

십 년 동안 엄마를 배려하느라 좋아하지 않는 닭다리를 받으면서도 꾹 참고 있던 아이에게 저는 매번 엉뚱한 배려를 했습니다. 아이에게 배려가 뭔지 가르쳐주고 싶던 저의 욕심은 오히려 잘못된 배려가 뭔지를 확실하게 알려준 꼴이었습니다. 이래저래 미안한 것 투성입니다.


배려란, 화분을 햇빛이 드는 곳으로 옮겨 주는 것.
배려란, 산책로에서 자전거가 지나갈 때 한쪽에 서서 길을 비켜주는 것.
배려란, 밥 먹을 때 할머니께서 잘 드시는 음식을 할머니 가까이 놓아드리는 것.
배려란, 엄마가 전화받으실 때 목소리를 낮추는 것.
< 아름다운 가치사전 중에서 >
배려란, 치킨을 먹을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부위를 챙겨주는 것.
우리 집에서 배려란, 나만 잘하면 되는 것.


여러분에게 배려란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의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화] 크리스마스 치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