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식 Jan 25. 2022

[동화] 크리스마스 치킨

맛나 치킨 가게에서 생긴 일

1월 4주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아이가 가장 맛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치킨을 먹는 상황


크리스마스 치킨


크리스마스이브 밤이 깊었습니다. 길에는 차도 사람도 뜸하고 키 큰 가로등만 환합니다. 모두들 바빴던 하루가 끝났습니다. 종일 닭을 튀기던 맛나 치킨 사장님도 빨간 배달 오토바이를 가게 안으로 옮기고 문을 닫았습니다. 치킨 사장님은 퇴근을 하지 않습니다. 아저씨는 가게 안쪽에 있는 작은 방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맛나 치킨 간판 불이 꺼졌습니다. 어두워진 가게 안에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립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 얄리 눈빛 같습니다. 오늘은 밤새 크리스마스트리를 켜 둘 생각입니다. 치킨 사장님이 앞치마를 벗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누군가 가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잠긴 문을 열어보니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치킨 먹고 싶어 왔어요.”

“어, 청소까지 다 끝냈는데 어떡하지?”     


아이는 금방 울상이 되었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이 늦은 시간에 왜 혼자 왔냐고 물어보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도 아이 혼자 왔던 기억이 났거든요. 아이 집에는 다섯 살짜리 꼬마 동생이 집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아참! 작년에 다섯 살이라고 했으니 올해는 여섯 살이겠군요. 아저씨는 돌아서서 가려는 아이를 불렀습니다. 

“오랜만이야. 많이 컸구나. 부모님은 여전히 바쁘신가 보구나.”

“예.” 

“동생이 치킨 먹고 싶다고 해서 왔겠지? 어서 들어와.”    


아저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흔들하면서, 엄마 아빠 이야기 그리고 동생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할 이야기가 생각이 안 나서 조용해졌습니다. 치킨 아저씨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의자에서 폴딱 내려와 크리스마스트리 옆으로 갔습니다. 커다란 별과 작은 인형, 크리스마스 전구, 금종과 은종 등 여러 가지 장식이 달려 있는 트리였습니다. 아이는 작은 장식품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자! 맛있는 치킨이 나왔어요.”     

“야! 맛있겠다. ”

예쁜 포장에서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날아와 코를 간질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빠 오면 돈 드릴 거예요. 저번처럼요."

“그래, 오늘은 엄마 아빠가 많이 안 늦으시면 좋겠다. 그지?” 

아저씨는 트리에 매달려 있던 금종과 은종을 떼어 아이한테 주었습니다.

“동생을 잘 돌본다고 선물로 주는 거야. 치킨도 같이.” 

아저씨는 꼬마가 길 건너 아파트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아저씨가 다시 주방을 정리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몸은 편한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내와 얄리가 보고 싶었습니다. 추석, 설날, 크리스마스 등 즐거운 날에는 치킨이 더 많이 팔립니다. 그래서 아저씨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이 년을 더 참아야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습니다. 

아저씨는 휴대폰을 켜고 가족 사진을 한참 동안 보았습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저씨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나? 그런데 조용해지다가 또 소리가 났습니다. 혹시 도둑이 문을 열려고 하나 싶어 약간 겁이 났습니다.

“누구요?”     

아저씨가 불을 켜고 나가보았습니다. 누가 밖에서 힘없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할머니 한 분이  한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모자와 목도리 하고 지팡이를 짚고 계셨습니다.

“괜찮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의자를 내 드렸습니다. 가게에 처음 오신 분인 것 같아서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르신, 후라이드와 양념 중에서 뭘로 해드릴까요?”

할머니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가 시원치 않아 치킨은 잘 못 먹어요.”

“그럼, 무슨 일로...”

“염치없지만, 부탁이 있어서 찾아 왔어요.”

“예, 말씀해 보시죠.”     


할머니가 들고 온 보따리를 천천히 펼쳤습니다. 그 안에는 달걀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각형 판에 서른 개씩 들어있는 마트 달걀이 아니라, 짚을 엮어서 만든 꾸러미에 여섯 개씩 나란히 담긴 달걀이었습니다. 

“내가 요놈들을 팔아야 하는데... 한 줄만 사 줄 수 있겠어요?” 

“그럼요. 마침 달걀이 필요했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달걀 모두 사겠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한 꾸러미만 사도 된다고 했지만, 장사하는 가게라서 많이 필요하다고 여섯 꾸러미 모두 다 냉장고로 옮겼습니다. 할머니도 값을 많이 깎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르신 잠깐만요. 통닭 한 마리 구울게요. 기름기 빼고 맛있게요.”

“아니 아니, 괜찮아요.”     

아저씨는 할머니께 꼭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도 그 마음을 아셨는지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치킨 아저씨가 열심히 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치킨 아저씨가 신이 났습니다. 

멋진 솜씨를 선 보이는 이 순간이, 마치 엄마 앞에서 잔뜩 폼을 잡고 노래를 하는 아이처럼 즐거웠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휘파람까지 불었습니다. 아저씨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이 나옵니다. 할머니가 입을 가리고 웃었습니다.    

“자! 맛있는 통닭이 나왔습니다. 어머니!”


치킨 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고운 할머니와 더 있고 싶었지만 치킨이 식기 전에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아저씨가 치킨 포장을 보따리를 싸서 들고 할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제가 집까지 모셔 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가까워요.”

“밤길은 위험합니다. 같이 가시죠.”

“정말 괜찮아요. 집이 바로 저기인걸요.”     


할머니가 멀리 보이는 교회 주위로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아저씨는 그곳이 어느 동네인지 잘 모르지만, 할머니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머니 마음이 편해하실 것 같았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지팡이를 짚고 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산타클로스 썰매가 다니는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맛나 치킨 가게의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 안과 밖을 깨끗하게 쓸었습니다. 빨간 배달 오토바이도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오전 내내 영업 준비를 했습니다. 점심때쯤 되었을까요. 첫 손님이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젯밤에 왔던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어제 아저씨가 준 금종을 꺼내 흔들었습니다. 딸랑 딸랑 맑은 종소리가 가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안녕! 낮에 보니 더 미남이구나.”

아저씨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때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남자가 가게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젊은 엄마와 어린 아이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왔습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말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치킨 아저씨와 아이 부모님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제 아이를 믿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동안 힘들었던 일이 해결되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바로 치킨 값을 드리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일 년이 지났군요. 미안합니다. ”

손님이 지갑을 꺼내자, 치킨 아저씨가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돈을 받을 수 없어요.“


손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작은 선물을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 건물 주인입니다. 관리인에게 사장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실하시고 친절하신 분이라고요. 덕분에 우리 건물이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 달부터 월세를 반만 받기로 하였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치킨 아저씨가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가족들은 서둘러 가게를 나갔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이라서 치킨 가게는 더 분주했습니다. 바빴던 하루도 숨 가쁘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자 주문 전화가 뜸 해졌습니다. 이제 치킨 재료도 세 마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마지막 남은 세 마리는 외롭고 힘든 손님에게 무료로 드리고 싶었습니다. 휴일인데도 고시원에서 취직 공부를 하는 청년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청년들은 치킨 한 마리와 콜라를 가운데 놓고 서로에게 권하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마음 먹은대로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마리가 남았습니다. 전화벨이 울렀습니다. 

"예, 맛나 치킨 입니다."

"안녕... 하..세요. 주...문...하려...고요.“


치킨 아저씨는 약간 더듬거리는 그 목소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전화 주문을 받으니 누구인지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거든요. 아주 가끔 주문하는 휠체어 탄 장애인 아저씨입니다. 치킨 아저씨는 치킨 한 마리를 뚝딱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그 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혼자 사시는 그분은 휠체어를 타고 대문까지 마중 나오셨습니다. 

"오늘은 공짜입니다. 더 맛있게 드세요."

"오! 잘 먹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휠체어 아저씨도 유쾌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았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돌아오면서 과연 마지막 치킨의 주인은 누구일가 궁금했습니다. 저 멀리 맛나 치킨 간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가게입니다. 열심히 하면 처음에 계획했던 때보다 일 년 앞당겨 마칠 수 있습니다. 딱 일 년만 더 고생하면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치킨 아저씨가 오토바이 모자를 쓴 채 머리를 끄덕이며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휘파람 소리지만 아저씨 기분은 하늘을 나를 듯 했습니다. 씽씽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바람이 하나도 춥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맛나 치킨 앞에 빨간 오토바이가 천천히 섰습니다. 그런데 가게 안에는 벌써 손님이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헬멧을 벗고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아빠!”

“얄리야!”

손님은 바로 치킨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아저씨가 두 팔을 활짝 벌렸습니다. 얄리가 달려와 개구리처럼 팔딱 뛰어 아빠 품에 안겼습니다. 얄리와 아빠가 뺨을 부볐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엄마는?”

얄리는 대답 대신 주방 쪽을 가리켰습니다. 

얄리 엄마가 두 손으로 커다란 접시를 바쳐 들고 나왔습니다. 방금 오븐에서 구워 낸 따끈한 치킨이었습니다. 얄리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아저씨도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맛나 치킨 가게에 행복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얄리가 양손에 닭다리를 하나씩 들고 짱구 춤을 추었습니다. 치킨 아저씨도 오랜만에 얄리 엄마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연락도 없이 어떻게 갑자기 왔어요?” 

“얄리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갑자기 아빠한테 가자고 조르더라고요. 하루 종일...”

아내가 말끝을 흐리자, 얄리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어젯밤에 할머니 꿈을 꾸었어요.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아빠한테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진짜 살아계실 때처럼 생생했어요.”

“얄리가 꿈을 잘 꾸었네. 그래서 양손에 닭다리를 들었구나.”

얄리가 닭다리를 들고 만세를 불렀고 엄마가 배를 잡고 깔깔 웃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치킨 한 마리는 그동안 힘들고 외로웠던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슬그머니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어! 달걀이 보이지 않습니다. 치킨 아저씨는 어젯밤 일이 꿈인지 아닌지 아리송해서 혼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monicore>



* 이전 글, 로운 작가님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 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 브런치에서 함께 하고 있는 '블루애틱' 작가님께서, 가족이 위급한 상황이라 도움을 청합니다.  

   바쁘신 중이라도 잠시 아래 링크를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피소드] 몰래 맛 본 닭튀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