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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24. 2022

[에피소드] 몰래 맛 본 닭튀김

여러분은 어떤 치킨을 좋아하세요??

몰래 맛 본 닭튀김

주말이면 국민 간식 치킨으로 한 끼를 때울 때가 많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차라리 뭉근하게 고아 낸 누룽지 백숙을 선호하는 편이다. 찹쌀을 무쇠솥 바닥에 충분히 깔고 토종닭 뱃고래에 각종 한약재와 찹쌀을 그득 채워 닭다리를 교차해서 묶어준 뒤 찹쌀이 깔린 무쇠솥에 살포시 얹어 뭉근히 고아낸 누룽지 백숙이 그것이다. 푹 고아낸 닭백숙의 야들야들한 닭살은 보들보들 매끄럽게 넘어간다. 바닥에 가라앉은 찹쌀 누룽지는 벅벅 긁어내 닭 육수를 끼얹어 겉절이와 곁들이면 그 맛이 금상첨화다.

식당 'O슴과 O님' 닭백숙

아쉬운 점이라면 식당에 가서 먹어야 제맛이라 배달 음식으로 즐기기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네 식구 치킨 취향은 각기 다르다. 남편은 튀김옷 없이 기름기를 쫙 뺀 영양 닭이나 오븐 치킨을 선호한다. 치즈를 좋아하는 앵글이는 뿌링클 치킨, 엽떡과 곁들인 허니콤보를 즐겨 먹고, 동글이는 통째로 튀긴 옛날 통닭을 쟁반 위에 펼쳐 놓고 직접 손으로 쭉쭉 찢어 큼직한 닭다리를 한 입 가득 뜯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옛날 통닭이 여의치 않을 때는 후라이드 닭다리만으로 시켜 먹는다. 나는 닭을 토막 낸 후 양푼에 마법의 치킨 가루를 넣은 뒤 양푼 째 출렁출렁 뒤적여가며 버무려 갓 튀겨낸 시골 장터식 닭튀김을 좋아한다. 바삭바삭한 겉 피와 육즙 가득한 속살, 그리고 닭똥집까지 모두 넣어 튀겨 낸 재례식 닭튀김이 제맛이다.

남편이 선호하는 전기오븐통닭과 후라이드
동글이의 옛날통닭과 로운의 재례식치킨/앵글이의 뿌링클


가족이 선호하는 치킨 종류가 다르다 보니 치킨 한번 시키기가 정말 어렵다.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 된다. 왜냐!! 돈 내는 사람 맘이니까... ㅎㅎ 이래서 돈주머니 찬 사람이 갑이다.


주말이 되었고 어정쩡한 3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온 가족을 내려다보고 있을 즈음... 눈치코치 없는 동글이의 외침이 들려온다.


"엄마, 나 배고파."

"밥 줘?"

"아니, 난... 뭐... 좀 특별한 게 먹고 싶은데?"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해. 그럼 사줄게."

"진짜?"

"그럼, 언제는 뭐 안 사줬나?"

"난 그럼 치킨."

"치킨 말고는 없어? 치킨이 뭐가 특별해. 맨날 시키는데..."

"맨날은 아니거든?"

"그래도 배달시키면 거의 치킨이잖아."

"나는 치킨이 제일 맛있어."

"어떤 치킨 먹을 건데?"

"음... 호랑이 치킨 먹을까?"


치킨 얘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앵글이가 한몫 거든다.


"난 뿌링클."

"뿌링클 다른 가족들이 잘 안 먹잖아. 같이 먹을 수 있는 거로 시키자."

"엄마, 답정너야? 어차피 엄마 맘대로 시킬 거면서 왜 물어봤어~"

"그러네. ㅎㅎ 왜 물어봤지? 그냥 모두 같이 먹게 네가 좋아하는 허니콤보랑 레드콤보랑 두 마리 시키는 건 어때?"

"좋아. 그러지 뭐."


어렵사리 협상을 마치고 치킨 두 마리가 배달되었다. 내가 치킨을 잘 먹지 않아서 한 마리면 충분한데 두 가지 맛을 시키려다 보니 두 마리가 되었다. 한 시간을 꼬박 기다린 후 치킨이 도착했다. 고를 때는 의견이 분분했어도 막상 도착하니 모두 식탁으로 달려와 자기 접시에 담기 바쁘다. 치킨은 다리만 먹는 동글이라 다른 가족들도 다리를 맛보려면 다리만으로 주문을 해야 한다. 값은 더 비싸도 만족도가 높아 늘 다리만 혹은 날개와 섞인 콤보 메뉴로 주문한다.



곁들임으로 주문한 찹쌀 꽈배기도 인기 만점이다. 이른 저녁까지 책임져주며 성황리에 치킨 시식을 마칠 수 있었다. 술을 즐기지 않아 탄산음료로 거국적인 건배도 하고 각자 제 몫을 덜어 하고픈 것들을 하면서 먹는 우리 집 만의 풍경이 펼쳐졌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이 다르다 보니 식탁으로는 덜어가기 위해서만 다가올 뿐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 하고픈 것들에 집중하며 치킨을 먹는다.



1월 4주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아이가 치킨을 먹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이가 가장 맛있게 행복하게 즐겁게 감동적으로 먹는 상황"



몰래 맛 본 닭튀김


가난이 뭔지도 모를 나이가 있었다. 동네 어귀에서 함께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며 놀던 친구들의 살림살이도 고만고만했기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그런 것도 생각 못할 나이였다. 학교에서 다녀오면 현관 앞에 가방을 던져놓고, 코밑이 시커메지도록 아이들과 동네를 쏘다니며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친구들이 하나둘씩 엄마의 부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가면 나 혼자 우두커니 남아 친구들이 버리고 간 구슬이며 딱지들을 주워 모아 집으로 왔다. 그래도 그것이 불행하다거나, 쓸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잡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매일이 똑같았고, 오늘도 역시 그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날일 뿐 색다른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저 그런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참 이상하다. 장을 보러 나가시면 닭발, 닭똥집, 돼지머리 같은 것을 사 오셨다. 삼겹살, 목살, 쇠고기 같은 것은 명절에만 먹는 고기였다.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육고기는 거의 부속들이었다. 가끔 천엽이나 쇠간 등을 사 오셔서 생으로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으라고 주시기도 하셨는데 먹지 않겠다고 고갯짓을 하면 귀하게 사 온 거라며 역정을 내기도 하셨다. 어릴 적 빈혈이 있던 딸을 위해 정육점에 도축된 소가 들어오는 날을 미리 알아뒀다가 받아오시는 거라는 건 한참 큰 뒤에나 알게 됐다.


그때는 몰랐다. 아이들이 커가는 데 필요한 고기 단백질을 넉넉히 먹일 만큼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해 허드레 값으로 구할 수 있는 각종 고기 부속을 사다가 손질하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주셨던 것을 말이다. 닭발을 졸여 간장 양념, 매운 양념으로 닭조림을 만들어주셨고, 닭똥집을 튀겨주거나, 잘게 썰어 볶아주기도 하셨다. 가끔 돼지머리를 사 오기도 하셨는데 웃고 있는 돼지가 비싸다고 하셨다. 돼지 마음이 선해서 죽는 순간에도 웃으며 죽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찌고 삶고 뼈를 발라내어 살을 골라 삼베 주머니에 담은 후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편육을 만드셨다.


도로 건너 앞 동네에는 골목 시장이 있다. 시장에는 산 닭을 잡아 튀겨주는 닭집이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면 닭튀김 냄새가 온 골목 끝까지 진동을 했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사달라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달라고 졸랐던 적은 없다. 아무리 눈치코치 없을 나이라지만 우리 집 살림살이가 치킨을 맘껏 먹고살 만큼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일 년이면 두서너 번 치킨 심부름을 할 때가 있었다. 눈치코치 없는 오빠가 먹고 싶다 생떼를 쓰는 날이 그날이다. 아들이라면 죽고 못 사는 엄마는 입 짧은 아들이 졸라대면 고쟁이 쌈짓돈을 털어서라도 사주셨다. 그게 잦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을 뿐 엄마 마음은 매일이라도 사주고 싶었으리라...


마을 어귀 / 다음이미지


엄마가 주신 쌈짓돈을 받아 챙겨 오빠와 둘이 골목을 내달렸다. 마치 닭집까지 누가 먼저 도착할까 내기라도 하듯 달리고 달려 닭집 앞에 도착하면 세상 다 얻은 듯이 만개한 웃음을 하나 가득 품고 미서기 문을 덜컥 열어젖힌다.


"아줌마, 큰 닭으로 한 마리 튀겨주세요!"


숨이 턱에 닿아 헉헉 거리며 아줌마를 부르는 모습은 개선장군 부럽잖다.


"한 마리? 큰 닭으로?"

"네."

"토막은 어떻게 내줄까? 크게? 잘게?"

"잘게요..."

"잠깐만 기다려. 얼른 해줄게."


닭장 / 닭에 튀김옷을 입히는 아주머니 / 중랑 동부시장 OO닭집

가게 오른편에는 생 닭들이 닭장 안에서 부대끼며 살고 있다. 그중 한 마리에 아주머니의 매서운 눈이 꽂히고 번개보다 빠르게 닭의 목덜미를 잡아챈 후 닭장 문을 닫는데 그 솜씨가 비호와 같다. 아주머니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뜨거운 물이 팔팔 끓는 가마솥에 닭을 담가 짤순이에 닭을 넣어 돌렸다.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해 검지와 중지 사이를 살짝 벌려 실눈으로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짤순이가 멈추니 아주머니는 닭을 꺼내 잔털들을 뽑아내는데 그 솜씨가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빠르고 정확하게 한 톨도 남김없이 뜯어낸 닭털로 가게 안은 하얀 털이 폴폴 날렸다. 능숙한 솜씨로 닭을 토막 내며 아주머니께서 한 마디 하신다.


"내장까지 다 튀길 거지?"

"네!!"


우리는 빠르고 크게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동그란 다라이에 토막 친 생닭을 담은 후 밀가루 옷을 입혀 다라이를 양손에 잡고 휙휙 던져 허공에서 뒤적이는 아주머니의 솜씨는 우리 남매의 입이 쩍 벌어지도록 능수능란했다. 몇 번을 뒤적인 후 펄펄 끓는 기름통에 닭을 넣어 튀겨주니 그 냄새에 빨려 들어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은 기분이 드는 남매에게 닭이 다 튀겨지는 동안의 시간은 고역이었다.


중랑 동부시장 OO닭집


드디어 닭이 튀겨지고, 기름 쫙 뺀 닭튀김을 은박 종이봉투에 담아 절인 무와 소금, 매운 양념까지 챙겨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눅눅해지지 않도록 여미지 않은 봉투에서 맛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남매를 유혹했다.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원래 집이 이렇게 멀었던가 싶은 생각이 스치며 남매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우리 걸어가면서 하나 씩 먹을까?"

"엄마한테 혼나면 어떻게?"

"다리 말고 다른 부위를 먹으면 모르지 않을까?"

"그럴까 그럼?"


퍽퍽한 가슴살도 상관없었다. 둘이 하나씩 입에 물고 잰걸음으로 집 앞까지 오는 동안 닭튀김이 반쯤 줄어있다는 것은 집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중랑 동부시장 OO닭집


엄마에게 닭튀김을 전해주고 조마조마 두근두근 눈치를 살피는데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큰 접시에 닭튀김을 부어 양은상에 올려놓았다. 절인 무와 소금, 매운 양념까지 상에 얹어 방으로 들고 오신 후,


"큰 닭으로 튀겨오랬더니 닭이 왜이리 작아? 어린애들이 심부름 갔다고 아주머니가 작은 닭을 주시고 큰 닭값을 받으신 거 아니니?"


아풀싸! 큰일이다... 엄마가 아주머니께 달려가 따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둘이 눈을 마주하고 눈알을 디굴 디굴 굴리는데 엄마가 한 마디 거드신다.


"너희 둘! 집에 오면서 맛보려면 하나씩만 맛봐야지 이렇게 많이 먹어버리면 어떡하니? 손도 안 씻고!"


역시 엄마는 모르는 게 없으시다. 다 알고 계시면서 봐주신 게 분명하다. 오랜만에 맛보는 닭튀김 냄새를 참으며 집까지 오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아신 모양이다.


"오늘은 엄마가 그냥 넘어가 줄 거야. 그런데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돼. 어른들이 먼저 드시고 너희들이 먹는 거야. 알겠어?"

"네!!"

"오늘 아빠가 늦으신다고 하시니 셋이 맛나게 먹자. 아빠가 드실 것은 엄마가 덜어뒀으니 걱정 말고 많이 먹으렴."


가뭄에 콩 나듯 맛보는 닭튀김은 꿀맛이다. 셋이 깔깔 웃으며 먹던 가난했던 그 시절 닭튀김은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진수성찬이었다. 그렇게 그날은 뉘엿뉘엿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 소리 가득 품으며 비어 가는 닭튀김과 함께 저물어 갔다.  -끝-


※ 경험과 잘 버무린 픽션입니다. *^^*



생닭을 직접 도축해서 닭요리를 하는 음식점을 도시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동물복지와 위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동네에 한 두 개쯤 직접 닭을 잡아 튀겨주는 닭집이 있었습니다. 계란도 팔고, 원하는 대로 닭을 손질해 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 닭집에 들러 닭을 사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닭 부속들을 사 오셨습니다. 한 바구니에 천 원 정도 주면 닭발, 닭똥집, 닭머리 등을 살 수 있었죠. 어릴 때 먹던 닭발을 지금은 먹지 않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닭 부속 음식을 지금 여느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지만 있다 해도 별로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닙니다. 제가 잘하는 말 중 하나는,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닭발, 닭똥집, 소나 돼지의 내장을 먹어?"


라고 합니다. 친구들은 저더러 맛을 몰라 그런다고 합니다. 저는 곱창도 먹지 않습니다. 보신탕, 토롱탕, 내장탕... 등의 음식보다 그냥 고기가 더 맛있습니다. 어쩌면 술을 즐기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샐러드, 육개장, 애호박전, 생선구이, 한상 가득 차린 백반 등 눈 돌리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평이한 음식입니다. 그리고,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과 먹을 때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음식 이야기에 배고파진 로운입니다.





사진출처 : 로운 / 다음 이미지 / 중랑 동부시장 OO닭집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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