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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08. 2022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어쩌다 보니 브런치에서 200번째 글을 발행한다. 지금껏 작성한 글은 대부분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러다 보니 보글보글 이번 주제 '나에게 보내는 편지' 한 편으로 글을 엮는 게 어렵고 줄기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마감일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약속을 지키겠다며 주저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누군가 흘리듯 건넨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다.'

늘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순간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는 게 쉽지 않다. 특히, 글을 쓰다 보면 초고는 이상하고 부정적인 느낌으로 글을 쓰는데 퇴고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다듬어지고 포장된다. 다른 누군가 읽는 글이라는 생각에 보편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내용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결국, 거리낌 없이 쓴 초고에 박힌 불편한 활자는 발행때 즈음 말끔하게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글 생성 일시가 오래될수록 본심과 다르고 진솔하지 못 한 글일 수도 있다.


본질과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보고서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연구했던 보고서인데, 골자는 정체성은 본질이 이미지는 정체성을 덮는 포장이 때문에 조직의 본질을 다지고 걸맞은 포장을 자란 당연한 이야기를 다뤘다. 내용 중에서 본질은 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부에서만 평가할 수 있으이미지는 밖에서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외부 모두 평가할 수 있다는 부분이 기억난.


글을 쓰면서 정체성과 이미지에 대한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실제 자아와 활자로 표현되는 부분이 정확하게 일치할 수 없겠지만, 스스로 일치하겠다는 다짐 아래서 진솔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초고에서 퇴고 후 탈고하는 과정까지 처음 작성했던 활자가 다른 문장(이미지)으로 변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심지어는 초고와 정반대로 쓰인 경우도 있다.


아마도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에 초고를 쓸 때 발현한 생각과 감정을 여러 번 되새기면서 정돈했 때문이다. 아니면 본질에 가까운 생각 직관으로 표현다가 퇴고 과정에서 잡념에 의해 잘못 포장했수도 있다. 둘 중 정답은 없지만 결국 정체성과 이미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살면서 정체성과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그 아이는 진국인데, 사람들이 잘 몰라봐"  또는 "걔 허당이야. 겉만 번지르 해"처럼 본질 이미지가 크게 차이 난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은연중에 재고 대이곳저곳에 세운다. 지금껏 살아온 세상이 그랬고 그렇게 배웠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핑계 대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남을 입에 담지 말자이다. 꼭 지키고 싶은 다짐인데 쉽지 않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처럼 본질은 외부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질과 이미지를 놓고 비교하며 허당과 진국을 찾는다. 본질은 스스로 다지고 찾으면 되는 것이며 이미지는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서 보이는 대로 평가하거나 평가가 어려우면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면 그만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다른 사람 이미지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그나마 가능하지만 본질에 대해서는 입 다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하튼, 네가 나를 모르는 건 당연하다.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살아내며 하나씩 끼워 맞춘 퍼즐이 완성될 시기가 지났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두르거나 주변 평가를 무시하며 안하무인으로 살고 싶지도 않다. 미완성이라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고 완성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시간에 기댄 채 온전한 나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되면 본질과 비슷한 이미지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조금 빠르게 다가올지 모른다.




* 서랍 속 글을 꺼내어 다듬었습니다. 최근 바쁘기도 했지만, 이전 어떤 주제보다도 이번 주제가 어려웠습니다. 가을이라 글이 잘 써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네요. 시원한 가을바람에 잡념은 날아가고 차분하게 앉아 독서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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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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