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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Oct 08. 2022

태국 치앙마이에서 나에게 보내는 편지

15년 전의 나에게

외국에 나가면 우체국을 들러볼 때가 있었어.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가끔 있었지.

집에 돌아와서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 날 나에게 왔던 익숙한 글씨의 봉투에 뭔지 알지만 즐겁게 편지를 열어보던 소녀 같은 놀이를 아직도 좋아하는 편이야.


지금 나는 태국 치앙마이 3주살이의 한가운데쯤에 와있어.

오늘은 과거의 너에게, 그러니까 나에게 편지가 배달되는 상상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단다.

.


치앙마이 반캉왓에서..


그때의 너는 회사가 정해준 나라로 이곳저곳의 호텔에 짐을 펼치곤 했어. 2~3일을 보내고 오는 짧은 비행 스케줄에도 언제나 어디든 열심히 돌아다니는 편이었지. 도착한 그곳에 어쩌면 다시 못 올지도 모른다는 이상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했던 것 같아. 그러고도 10년 넘게 같은 곳에 내렸는데 웃기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놓쳐버리고 잃어버릴 것만 같아 불안했던 것 같아.

그때 너는 순간을 창조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회사가 만들어준 스케줄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었지. 그때의 넌 불만도 조금 있었던 기억이 나.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와중에도 넌 너만의 틈새 여행을 수도 없이 떠났었어. 불평하고 앉아있기보다 네가 가진 그 짧은 시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걸음을 걸어내 스스로 네 운명을 만들어 가고 있었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의 나는 그런 네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닫고 있어.




이번 3주 살이를 시작하며 큰 계획 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가족과 치앙마이에 와있어. 별 계획 없는 여행이지만 4학년인 딸과 함께 요리수업은 해보고 싶었었지. 그래서 오늘 하루는 남편과 아들 남자팀은 놔두고 여자팀만 출동하기로 했어.


그런데 딸과 나 우리 둘만의 첫 번째 태국 요리수업을 앞두고 문득 15년 전 결혼 직전 태국 코창이라는 섬에 머물면서 쿠킹클래스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어. 그리고 그때의 네 사진을 발견하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거야. 오랜만의 너를 보고 내가 반가워하는 소리 들리니?


비행으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다 조금은 지쳤었지. 날개를 쉬고 내려앉아 오래 머물 곳을 찾아다니던 너는 마치 새 같았어.

그런 너는 남편을 만나 평화롭고 고요해졌던 것 같아.


15년전 싸이월드에 올렸던 타이 쿠킹클라스


카오산 로드에서 머리를 땋고 현지에서 산 옷을 입은 15년 전의 자유로운 너는 어리고 설레었었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미래로 꿈에 부풀었던 것 같아. 된장찌개 하나 제대로 끓여 낼 줄도 모르는 아이 같던 네가 팟타이를 만들었다고 얼마나 신났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구나.


사진 속의 너는 상상해봤었는지 모르겠다. 그와 함께 만들어낸 미래의 순간을 말이야. 15년 후의 너는 지금 태국에서 다시 쿠킹클래스에 참여해 딸과 함께 색다른 경험을 해볼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어. 그때 남자 친구였던 남편과 함께 가졌던 둘만의 시간은 이제 그와 함께 가족을 만들어 넷이 되었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여전히 함께 여행하며 또 다른 즐거움으로 태국 요리를 하게 될지 혹시 너 알고 있었니?




우리가 어딘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여행은 바로 그 모습처럼 떠날 수 있게 될 거야.

에어비엔비 속의 사진에 속지 말라고 말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진 속 모습으로 상상하고 예약하고 모험을 떠나지. 운이 좋다면 지금 나처럼 사진으로 떠났던 상상 그대로의 수영장과 정원 속에 서서 전율을 느끼게 될 거야.


상상만 할 수 있다면 여행이 될 수 있어.

그런데 여행은 쉽게 계획하고 상상을 믿으며 떠나곤 하지만, 삶도 여행처럼 우리가 직접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은 잘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왜 삶은 여행처럼 상상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까?


여행할 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용감하게 걸어 들어가듯, 몸을 던져서 경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지.

여행 중에 쉽게 그럴 수 있는 건 아마 다시 돌아올 안전한 집이 있다고 느끼기에 그럴 거야.


어쩌면 삶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너는 여행을 떠나듯 상상한 대로 움직여 보고 뛰어들어가 보고 싶어 했어.

여행처럼 삶을 두려움 없이 살고 싶어 했어.

그래! 그렇게 아주 잘하고 있어!

네 발로 마음껏 걷고 상상한 것이 실현되는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시간은 모두 네 힘이 될 거야.


그러다 어느 날, 여행 기록을 돌아보듯 삶을 돌아보면 내가 다시 보낸 놀라운 편지들이 중간중간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미래는 많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오늘 나는 요리수업 다녀와서 또 기록을 남겨 둘 거야. 딸의 첫 번째 요리수업이 한식이 아니라 태국 요리라니! 엄마랑 똑같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 같거든!


오늘 남기는 기록은 아마 또 15년 뒤에 보고 즐거워하게 되겠지?

내가 삶으로 풍덩 빠져들어 두려움 없이 섞여 든 자유로운 시간의 맛은 아마 태국 향신료의 향이 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반 정도 남은 여행도,

반 정도 남은 삶도,

네가(내가) 상상한 대로 펼쳐지기를 기대해~

또 편지할게.


오늘 딸과 둘만의 태국 요리수업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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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 주
“나에게 보내는 편지”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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