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Aug 20. 2022

내 낡은 앨범 속 바다

#여름 #바다 #BGM #사진 #기억

창고에 가득 쌓인 옛 물건을 정리하는데, 낡은 앨범 하나가 보인다. 표지 한 편에 적힌 2010 숫자를 보니까 결혼 전까지 추억을 담았던 사진첩인 게 생각났다. 옆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아 앨범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어려서부터 함께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한 여름 바닷가에서 우리 곁에 머물던 추억은 조각조각 모이는데, 가장 설렜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마흔을 넘기면서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나 보다. 억지로라도 머릿속 구석까지 파고들어서 소중했던 순간을 끄집어내고 싶다. 끝내 기억나지 않는다면 새롭게 만들어서라도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꼬마자동차 붕붕붕 / 만화 주제곡
'엄마 찾아 모험 찾아 낯설은 세계여행
우리도 함께 가지요'



엄마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선다. 옆집 기명이와 혜진이, 한상이까지 엄마들과 함께 나왔다. 모두 피곤해 보이지만 미소를 띤다. 아마도 처음 해수욕장을 간다는 생각에 밤새 잠을 설쳤을 것이다. 사실, 나도 어젯밤 열 시가 넘도록 잠들지 않아서 아빠에게 야단맞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는 척하다가 잠들었다. 잠이 많은 편이라 평소보다 한두 시간 정도 못 잤지만 소심한 한상이는 다크서클 상태를 보니 한 숨도 못 을 것 같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물놀이할 생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유치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선생님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더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위험한 행동하지 말라며 세 번을 반복한다. 두 번은 대답하고 한 번은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들이 모이자 선생님께서 오늘 가는 곳을 설명했다. 해수욕장이라는 단어 빼곤 다른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엄마가 한 말과 비슷한 어였다.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처음 보는 버스에 올라탔다. 가장 앞자리는 선생님 자리여서 두 번째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엄마들이 보였는데, 우리 엄마는 없었다. 내 옆에 앉은 한상이네 엄마를 보면서 대신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출발했고 한상이가 나보고 해수욕장에 처음 가는지 다시 물었다. 귀찮아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도착해서 같이 놀아달라고  더 귀찮아졌고, 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수욕장 가는 길은 어지러웠다. 가는 길이 전부 처음 보는 것뿐이라서 전철역하고 큰 학교같이 생긴 건물 몇 개 빼고 아는 게 없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어지러운 상태라서 멀미가 났지만, 창문은 열지 않았다.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 흘렀고 지루해하는데 버스가 가파른 언덕다. 선생님이 곧 내린다면서 창밖에 보이는 곳이 목적지라고 말했다.


차가 언덕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갈 때 즈음이었는데, 창문 밖으로 반달 모양 모래사장이 검푸른 물을 품은 게 보였다. 모래사장 뒤로는 놀이동산 눈에 들어왔다. 순간 멀미가 사라졌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어쩌면, 나일 수도 있다. 와 바다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감탄하며 소리 질렀다. 나는 신이 나서 꼬마자동차 붕붕붕을 불렀다. 다른 아이들도 함께 불렀다. 잠시 후 버스는 인천 송도해수욕장 앞에 멈췄고, 1985년 내 삶의 첫여름 바다가 펼쳐졌다.


1985년 여름 바다


여름이야기 / DJ DOC
'랄라라라 랄라 랄라라라 랄라
랄라라라랄라라라라 랄랄랄'


괜찮겠어. 종창이가 물었다. 우리 집은 전혀 신경 안 써. 나는 대수롭지 않다고 거듭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집에 이야기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더군다나 영균이 할머니 댁인 부산 기장을 간다고 했지만 사실, 티브이로만 봤던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에 입성하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집에서 걱정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까운 을왕리를 자주 다녔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친구끼리 춘천에서 배를 타고 소양호를 건너 양구까지 여행한 적도 있었기에 집에서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확신에 찬 계획대로 진행했고 어느샌가 우리는 부산역 앞에 도착했다.


어스름이 내릴 즈음 도착했고, 우리는 바다를 빨리 보고 싶어 서둘렀다. 무조건 택시를 잡았다. 해운대요. 내가 택시 기사님께 말 끝을 올리며 말했다. 서울서 왔나 보네. 한 번에 사투리가 아닌 것을 눈치챈 기사님은 정면을 주시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닙니더. 기장 사는데예. 약속 있어서 가입니더. 영균이가 뒤에서 대답했다. 기사님은 피싯 웃더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마이 막히는데, 사아알 피해서 모시다 드리지요.


긴장은 했지만, 택시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금세 어둑해졌고 목적지에 다 왔다는 느낌이 들 때 즈음 다시 환해졌다. 해변이지만 눈앞에는 천막이 가득했고 천막 안쪽과 천막 사이로 보이는 모래사장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이 가득했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니까 멀리 언덕에 불빛이 반짝였는데, 하늘의 별보다 밝게 빛났다.


다왔어예. 짧은 기사님 말씀에 시선은 다시 택시 안 쪽으로 돌아왔다. 앞자리에 앉은 내가 계산하는 동안 친구들은 먼저 내렸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차 문을 여는 순간 모든 감각이 꿈틀댔고 오감을 통해서 흡수하는 낯선 느낌이 나를 감쌌다. 짠내음 가득한 바다향과 옅은 화약냄새 그리고 터질 듯 한 폭죽 소리와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디오씨의 신나는 노래가 들렸다.


먼저 내린 종창이가 바다에 감탄하며 소리 질렀고 뒤늦게 내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모래사장 넘어 잔잔한 바다와 섬이 없는 수평선이었다. 몇 걸음 앞서 걷던 녀석들과 함께 드라마 느낌에서 봤던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해변을 달렸다. 1996년 사춘기를 관통한 여름이야기는 낯선 환경과 상황 오감을 족시키며 시작했다.


다른 시절 같은 바닷가



파도 / UN
'너를 보내고 나 또다시 찾은 바닷가'


2001년 스물세 살, 대천해수욕장에서 기억은 없다. 전부 지웠나 보다.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 버즈
'Far away you're my sunshine.
We were together'


대학을 졸업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여름철 동해바다를 가지 않는 것은 죄악이었지만, 여름 한복판에서 을왕리나 대천해수욕장에 있었다. 여름에 동해바다를 간다는 건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용기가 필요했다. 다양한 제약 요소로 인해서 행할 수 없다며 신세 한탄해봤자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별다른 준비 없이 동해를 향해 떠났다.


당시 강원도에서 근무했지만 홍천은 영서지방이라 바다를 볼 수 없었기에 더 간절했다. 금요일 밤으로 기억한다. 주 5일제가 새롭게 적용하는 달이었다. 일과를 끝날 때 즈음 친구들이 홍천으로 왔고, 시내에서 만났다. 오. 우기쓰. 왔오. 이두가 반겼다. 나는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승합차 앞 좌석에 탔는데, 9인승이 만원이었다. 다섯은 구면인데, 낯선 세 명이 맨 뒷자리에서 미소를 건넸다. 가볍게 인사하고 고개를 돌렸다. 섭스가 신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해가 지기 전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양양 바다는 그전까지 즐겼던 바다보다 넓게 느껴졌다.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얽히고설켜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때는 바다를 보면 무조건 달려드는 게 유행이었다. 우선 뛰어들고 나서 뒷일은 나중에 걱정하는데 전화기나 지갑까지 휴대한 채 물속으로 들어가거나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밤바다 입수는 위험하지만 젊은 열기에 모두 뛰어들었다.


그때까지 경험한 바다와 달랐다. 유독 바닷물이 차갑게 느껴졌고 두세 걸음 앞으로 나가자마자 물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들 물 밖으로 나왔고 뒷자리에 앉았던 처음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허우적거렸다. 손을 건네자 녀석이 내 손을 덥석 잡고 일어섰다. 물 밖으로 나가려는데, 다시 파도가 다가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지했다. 파도가 우리를 덮쳤지만 서로를 꽉 잡아서 휩쓸리지 않았다. 우리 키를 훨씬 넘는 높은 파도의 하얀 포말은 야광처럼 빛을 담았고, 바닥으로 내리칠 때 울리는 묵직한 물대포 소리는 장엄함과 함께 우리를 삼켰다. 하지만, 여름의 한 복판에서 솟구치는 우리 정열과 몸부림을 막을 수 없었다. 이십 대 절정은 2005년 여름 바다의 거친 파도까지 뚫어 버릴 기세였다.


2005년 여름 바다



제주도의 푸른 밤 /성시경 ver.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낭만 가득했던 레바논에서 육 개월을 보내고 처음 다녀온 해외여행지 도쿄는 더위와 파친코만 기억에 남았다. 멋진 풍광을 지중해에서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도쿄만이나 오다이바 야경은 평범했다. 평범했던 해외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제주로 향했고, 비로소 진정한 여름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제주는 다르다고 많이 들었지만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제주 여름 바다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마도 스치는 인연과 함께했던 평범한 제주는 가볍게 지나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아내와 함께 찾은 제주 숙소는 리조트도 좋았다. 숙소 안 인피니티 풀 뒤로 보이는 제주의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햇살 좋은 날 아내와 함께한 협재해수욕장은 말과 글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었다. 바다가 보여줄 수 있는 미의 절정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지중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비한 바다색은 푸른 하늘과 경쟁하듯 눈이 부셨고 하얀 모래사장과 표현할 수 없는 색깔의 바다와 수평선에 걸친 비양도가 오묘한 연녹색 빛을 뿜어댔다.


생전 처음 보는 완벽한 그림이 완성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사같이 하얀 옷을 입고 바다로 천천히 들어가는 아내 뒷모습이 더해지면서 명작이 완성되었다. 반드시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삼십 년을 살면서 마주했던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은 그날 그곳에서 잊혔다. 이후로 십 년 동안 컴퓨터 바탕화면을 장식했던 2010년 제주의 바다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덕분에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바닷가에서 걷는 로망이 가슴속에 남았고 이후 모든 바다를 아내와 함께할 수 있었다.


2010년 여름 바다



모든 날, 모든 순간 / 폴 킴
'네 품속에 있는 지금 순간순간이 영원했으면 해'


얼마나 손해를 봤냐고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백만 원 조금 넘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획대로 여행했다면 괜찮은 기삿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달 사이에 반일감정은 극에 치달았고 혐한으로 인해서 피해까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일본 여행은 진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인 장모님께서 육아 스트레스가 극한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에 항공권 전액과 숙소 수수료를 손해 보더라도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선택한 곳은 베트남 다낭이었다.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섯 식구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숙소를 급하게 계약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설렘도 가득했지만 근심과 두려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기에 출발까지 남은 십 여일 동안 정신없이 준비했고 호이안 소재 리조트까지 편안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시차는 두 시간이지만 짧지 않은 비행시간으로 인해서 가족 모두 일찍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다섯 시, 평소 일곱 시에 일어나는 우리 식구들에게 베트남 아침은 두 시간 먼저 찾아왔다. 바다를 동쪽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리조트 전용 해수욕장으로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큰딸이 함께 나가겠다 졸랐고, 둘째도 일어나서 셋이 해변으로 나섰다.


메인 수영장을 넘어 바닷가에 붙어 있는 수영장을 걸어가는 중간에 숨이 멎을 듯한 풍광을 마주했다. 제주에서 비양도 배경의 협재 바다를 넘어서는 여름바다였다. 다행히 기억으로만 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 실컷 영상으로 남겼다. 호이안 바다는 이전까지 마주했던 바다와 크게 달랐다. 적당한 조도와 고즈넉한 분위기 그리고 이국적인 풍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타지에서 처음 맞는 바닷가 일출이다 보니 큰 의미가 더해졌다. 아이들은 생애 첫 일출을 보는 순간이었다. 붉게 물든 하늘 사이로 타오르는 태양이 나타났고 아내까지 함께하면서 소중한 순간을 만끽했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 2019년이 우리의 마지막 여름바다였다.


2019년 여름 바다


여름바다에서 지냈던 시간과 추억을 가득 품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행복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는 공허와 함께 유독 짧게 느껴지는 소중한 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반면, 바다까지 가는 길은 늘 설렘 가득 품었기에 함께하는 모두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오랜 기다림 끝에 눈앞에 펼쳐진 여름바다를 마주하면 함성을 지르거나 힘차게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태우고 오롯이 바다와 자신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마주한 바다와 함께하는 사람도 달랐지만 처음 눈에 들어온 바다를 대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오래된 낡은 앨범 속 여름 바다사진을 다시 꺼내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아마도 수십 년이 지나 내가 힘들고 지쳐서 누군가에게 의지한 채 여름바다를 마주할 때에도 혼자서 조용하게 읊조릴 것 같다. 유년시절 목 놓아 외쳤던 '와 바다다'를.


2022년 여름 바다 모형




* 이전 글 : 학창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안리 바다에 못 들어가 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