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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Aug 19. 2022

광안리 바다에 못 들어가 본 이유

여름바다 오렌지족의 추억


광안리 바다에 못 들어가 본 이유
여름 바다 오렌지 족의 추억



“ 아… 나 오늘 친구 만나러 광안리 가기로 해서 만나러 못 가겠는데?”


남자 친구였던 그의 집은 광안리 바다와 가까웠습니다.

X세대 전국의 젊은이들이 여름방학이면 부산 광안리 바다로 모여들던 시절, 우리는 풋풋한 대학 1학년 동갑내기 커플로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 나도 광안리 수영하러 가보고 싶은데..”


가족과 머무는 왁자한 바다에 비해 남자 친구와 함께 가는 바다는 뭔가 달콤하고 다를 것 같아 기대에 차 대답했지요.


 “야~ 거기 사람 구경하러가지 누가 수영하노?”

그가 로맨틱한 환상을 쨍그랑 깨며 말했습니다.


대학교 근처가 집이었던 여자 친구를 만나려면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또 학교에 가는 기분이 나서 싫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뭔가 다른 재미있는 여름방학 계획이 있었을까요? 괜히 뭘 모르는 애 취급을 하는 남자 친구의 말에 서운했습니다.


부산 해변 (사진 출처 픽사 베이)

   반짝거리는 해변가 카페의 조명이 켜지고 느릿느릿 걷듯이 지나가는 차들이 광안리 해변도로를 메웁니다. 여름의 해변은 붐비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좋긴 합니다.


그 시대에는 차들이 천천히 달리다 멈추어 창문을 내리고 “야~ 타!” 하며 여성들을 유혹하는 ‘야타족’이 있었습니다.


오렌지 족도 야타족도 모르고 여자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학교 앞에서만 맴맴 하던 순진한 스무 살짜리도 바다의 기억은 있었습니다.


여름바다는 지글지글한 태양에 익어 껍질이 벗겨지던 어깨의 통증이었습니다.

모래가 너무 뜨거워 깡충거리는 발바닥의 간질거리는 감각이었습니다.

살아있는 파도가 나를 넘어뜨려 꼴깍 먹은 바닷물을 퉤퉤 뱉어내던 짠 거품맛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바다를 즐기는 법이 저와 다른 것 같았습니다. 바닷속에서 바다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바다 밖에서 다른 사람과 바다를 즐기는 법을 더 좋아했습니다.


여름방학 내내 그는 바쁜 것 같았습니다. 재수를 할 거라 학교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했지만 공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수영도 안 하는 여름바다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자주 바다에 가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과 사람들 구경에 신이 난 것인지 통 소식이 없었습니다. 유머감각 있는 자기가 친구들을 위해서 도와줄 일이 많아 바빴다는 것이 나중에 들은 변명이었지요.


어쩌면 여름맞이 한철, 오렌지 족이나 야타족이 되었을 남자 친구는 차가 있다는 이유로 광안리 해변에서 수없는 농담을 던지며 운전을 했을 것입니다. 친구들의 연애를 도운다는 명목으로 사람 구경을 했을 것입니다. 한 번도 야타족을 만난 적 없지만 어쩌다 보니 이미 어설픈 야타족을 하나 알고 있는 셈이었지요.




부산사람은 광안리와 해운대에서 수영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평소에 자주 가는 곳이니 휴가철 전국에서 피서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유명한 해변 근처는 차 막히니 딴 길로 돌아갑니다. 휴가는 오히려 멀리 떠나버립니다. 안 가본 지역의 계곡물에 발을 담그거나 동해나 남해로 이동하기도 하고요. 여행은 그래야만 할거 같으니까요. 늘 듣는 광안리, 해운대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못해 너무 시시해져 버려 그 바다를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안 가는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광안리, 해운대 바다에서 수영 한 번 못해보고 승무원이 되어 부산을 떠났습니다. 일하면서 푸껫 해변, 와이키키, 괌, 사이판, 호주 골드코스트 해변, 산타모니카 등 항공사의 취항지 외에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해변에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바다 중 어느 바닷속에 들어가 보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가장 들어가 보고 싶은 바다는 너무 유명해 흔하고 또 흔한 부산 바다, 해운대 광안리 바다입니다.


어이없지만 아직도 못 들어가 봤습니다. 해운대에 사는 친정 가족들 역시 부산 바다를 보기만 하지 좀처럼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여름마다 해운대나 송정 바다에 데려갔지만, 어쩌다 보니 엄마 역할만 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이들만 파도에 앉혀두고 저는 사진만 찍고 있었네요.

부산 바다에서의 기록들


진짜 제가 부산 바다에 수영하고 싶긴 했던 걸까 스스로 궁금해집니다. 친정에 갈 때마다 또 갈 수 있어 미루다 보니 부산 여름 바다는 평생 못 들어가는 건 아닐까 문득 생각도 들었습니다.

올해는 마음 잡고 광안리, 해운대 바다에 가보려 했지만 머무는 동안 비가 왔고 갑자기 개인 날 바다는 무척 서늘해 발가락 하나 담그고 싶지 않았지요.


언젠가 해운대 바다, 광안리 바닷속 파도에 꼭 안겨 아이처럼 수영을 해보고 싶습니다. 더위에 목이 타 해변가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사 오는 길, 천천히 운전하던 차가 제 옆에 멈춰 섭니다. 윈도가 내려지고 차 안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올 겁니다.


"여보야~ 타!”   

하고 말하는 (사실 이 호칭으로 부르지 않지만 ) 왼쪽 눈이 예쁜 남자의 옆자리에 저는 흥! 하고 웃으며 올라탈 겁니다. 뒷자리에 앉은 오렌지족 아이들을 위해 사온 오렌지주스를 함께 마시며 부산 바다를 즐겨보고 싶습니다.


야타족과 오렌지 족을 그때 못 만난 게 뭐 별건가요? 저 없으면 못 산다고 매일 꼭 붙어 다니는 우리 가족이 평생 만나는 오렌지족과 야타족이지요. 


여름 바다로 떠나자는 연락 전화를 기다리던 제 스무 살 청춘의 연애에 대한 환상은 상큼한 주스의 맛으로 파도에 태워 보내줍니다.

'잘 있어~ 내년 여름에 또 갈게~'




올해 7월 말, 분명 여름인데 우리만의 바다 같았던 광안리 바다


보글보글 글놀이
8월 3주 차
[여름바다, 그리고 추억]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


*매거진의 이전 글 돋보기시스템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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