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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17. 2022

누가 여름 바닷가에 텐트 치니?

보글보글 글놀이 8월 3주
< 여름 바다, 그리고 추억 >

아...

여름은 갔습니다.

바닷물에 발도 한번 못 담가보고, 시원한 계곡 물소리 들으며 백숙 한 번 못 먹어보고 그렇게 여름은 갔습니다. 바다, 계곡이 다 뭐랍니까. 8월 들어 밖에 나간 날이 손에 꼽습니다. 그것도 오전에 잠깐, 이런저런 회의 때문이었지요. 휴가는 고사하고 교외에 콧바람 쐬러 나가는 여유도 허락되지 않던 여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무조건 나갔죠. 방학이라 나가고 휴일이라 나가고 답답해서 나가고 심심해서 나가고. 역마살 낀 사람처럼 돌아다녔습니다. 특히 여름이면 워터파크, 계곡, 바다 가리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들과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보다는 어디든 다녀오는 게 서로의 정신건강에도 좋았으니까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남편과 저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호텔이나 콘도만 다녔던 아이들을 위해 '캠핑'이라는 낭만을 선물하기로 한 거죠.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추억을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텐트 안에 우리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 풀벌레 소리 들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잠드는 상상을 했습니다. 숯불에 고기도 구워 먹고 밤늦게까지 모닥불 앞에서 불멍도 하고 싶었구요.


장비 하나 없는 극초보 캠핑러 둘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5만 원에 장비 풀세트를 빌렸습니다. 일단 처음이니까 빌려서 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우리도 슬슬 캠핑에 취미를 붙여보자고 했지요. 2박 3일의 여정 중 첫날밤은 워터파크 내에 있는 숙소에서 지내기로 하고 속초에서의 둘째 날 밤을 고대하며 길을 나섰습니다. 막상 이튿날 오후 속초에 도착하자 우리는 슬슬 꽤가 나기 시작했죠. 밥을 해 먹기가 귀찮았던 겁니다.

"그래. 휴가까지 와서 밥을 해 먹는 건 서로 힘든 일이야. 밥은 사 먹고 시장에서 야식으로 닭강정이나 사가자. 어차피 텐트에서 잔다는  의미 있는 거니까. 그리고 더워서 불 못 피워~"

불멍을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그렇게 합의를 보고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해안가에는 텐트를 칠 수 있는 구역이 정해져 있었죠. 펜스로 둘러놓은 모래사장이었습니다. 8월 첫째 주, 여름휴가 성수기인데도 설치된 텐트가 별로 없다는 게 의아했지만 한적해서 너무 좋다고, 장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정했다고 마냥 기뻐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랬습니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남편의 짜증이 슬슬 올라온 것은 텐트를 설치하던 바로 그 시점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대략 9시 정도 되는 캄캄한 밤.

바람 한점 안부는 바닷가 모래사장.

아무 도움은 안되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아내와 아이들.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캠핑장비를 빌리고 설레발을 친 장본인이었으니 꾹 참고 설치를 하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설치한 텐트는, 작아도 너~~ 무 작았습니다. 4인 가족이 모두 나란히 누울 수 없었죠.

"괜찮아~ 엄마랑 막내는 텐트 안에서 자고 아빠랑 큰아들은 텐트 앞 돗자리에서 자면 되지 뭐."

"그러자 아빠. 돗자리에 누워 자면 별도 보이고 좋겠네."

기분 좋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부자를 보며 내심 흐뭇하고 좋았습니다. 숯불도 안 피웠고 불멍도 없었지만 속초 시장에서 사 온 닭강정을 야식으로 먹고 두런두런 종알종알 이야기 나누며 휴가 마지막 밤은 그런대로 괜찮게 저물어가고 있었죠.


작은 아이와 저는 텐트 안에, 큰 아이와 남편은 텐트 밖 돗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으아아아~~ 엄마~ 이 안에 모기 있나 봐. 자꾸 물어~~"

"동생아~ 여기 텐트 밖은 모기가 아~~ 주 많다~~"

"여보, 오늘 밤엔 어떻게 바람 한점 안 불어? 텐트 안이 찜통이야."

"그래? 바람 많이 부는데? 헉! 텐방향이 어째 이상한데? 바람이 완전 차단되게 설치해버렸. 텐트 입구가 바다를 향하게 설치했어야 하나보다. 다시 설치하기는 싫은데..."

"아 따거! 엄마~~ 모기~~~~"

"엄마. 잠이 너무 안 와. 너무 더워. 얼굴이랑 온몸에 모래가 끈적하게 묻어서 너무 찝찝해."

"사람들이 여기에 텐트를 안 친 이유가 있었네. 우리가 초짜라 몰랐나 봐."

여기저기 아우성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한밤중이라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

"어? 빈가? 비다! 어떻게 해~~"

설상가상 소나기는 내리고, 텐트는 좁아 네 식구가 다 들어오지도 못하고, 작은 아이는 졸리다고 칭얼, 큰 아이는 찝찝하다고 칭얼, 모기는 사정없이 물어대고, 바람이 안 통하는 텐트 안은 찜통이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지요. 여름이랍시고 빨리 떠주는 해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흡사 피난민이라도 되는 듯한 몰골로 아침을 맞이한 우리는 엉금엉금 텐트 밖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텐트 밖 돗자리는 모래 반 물 반으로 엉망이 되었고 그 한가운데는 먹다 남은 닭강정이 박스채 물에 튕튕 불어 있었습니다. 경황이 없어 텐트 안에 들여놓지도 못했던 거죠. 하긴, 사람 누울 자리도 모자란 텐트 안에 닭강정 자리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남편도 텐트 밖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웠는걸요. 비를 쫄딱 맞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온몸에 모래알이 박힌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바닷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솟아오르는 태양과 이른 해수욕에 신난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다정하게 결심했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에 캠핑은 없어. 이게 마지막이야."


...

우리 집에서 망각의 동물은 저 하나인지라 가족들에게 가끔 칭얼대곤 합니다.

"우리도 캠핑 가자~~~ 사람들 캠핑 진짜 많이 다니더라. 나도 고기 구워 먹고 밤새 불멍하고 싶어. 요즘은 글램핑장도 많아서 몸만 가면 된대. 그런데라도 가서 하루 자고 오면 안 돼?"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왜? 굳이? 안락하고 쾌적한 호텔 놔두고 왜?"


제 인생에 캠핑은 영영 날린 것 같지만 여름, 바닷가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끈끈한 추억 하나는 제대로 건졌습니다.


*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물놀이하는 대문사진이 찍힌 시각을 보니 2010년 8월 6일 오전 7시 2분이네요. 아래 사진이 찍힌 시각은 새벽 5시 15분... 날밤 제대로 세웠던 여름, 바닷가, 추억.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 58. 여름 바다를 처음 느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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