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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26. 2022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특별상

레바논, 전정터에서 피어난 사랑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필을 쥔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험 삼아 만든 브런치 북이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특별상에 포함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미리 소감을 작성하라는 연락을 받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잘난 체하며 수준 높은 단어나 한자어가 가득한 문장을 써야 할지, 문학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메타포나 복선이 스며들었거나 반전이나 위트가 가득한 글을 작성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투박하고 단순한 제 글을 선정했는데, 어색한 글로 포장하는 것보다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가볍게 다루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참가한 다른 작가님들께 실례가 될 테고, 힘주어서 고상하게 쓰고 싶지만 필력도 안되고, 그렇다고 유치하거나 저급하게 보이면 무시당할 게 뻔하기 때문에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게 특별상을 받은 지금을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계기, 즉 터닝포인트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평생을 독후감이나 일기 한번 제대로 쓴 적 없던 사람이 마흔 살을 넘어서 뒤늦게 시작 한 글쓰기를 통해서 엄청난 행복과 행운까지 얻게 된 터닝포인트는 언제였을까요?


제가 꾸준하게 습작하는 공간은 두 곳입니다. 고양시 밤가시마을에 있는 독립 책방 너의 작업실과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입니다. 우연하게 들른 독립 책방에서 책을 한 권 구입하여 읽다가 글쓰기 모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일상을 기록하자고 처음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글방에서 우연히 만난 글벗들은 엄청난 능력자였습니다. 대부분 여성이며 엄마였는데, 간혹 저처럼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나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인원이 늘어서 서른 명 정도 되는데, 글벗들이 출간한 책만 해도 열 권이 넘으며 등단 작가도 수두룩 합니다. 더구나 몇 해 연속으로 경기 히든 작가를 배출하기도 했고, 문학상도 여러 번 수상했습니다. 드므, 미지, 백지, 오정민 등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분도 함께 글을 나눕니다. 매일 글 한 편을 올리고 서로의 글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가득했습니다. 소재가 부족하면 서로 영감을 주고 필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필사를 추진하거나 누구나 인정하는 박연준, 한수희, 김완 작가님을 초대하여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까지 가졌습니다. 너의 작업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글과 가까워졌고 글벗 덕분에 글을 삶 속으로 스며들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브런치 북은 어떤 마음으로 작성했을까요? 너의 작업실을 통해서 우연하게 가입한 브런치에 소소한 일상을 남기다가 2021년 늦여름 즈음 아내와 만나서 사랑하고 지금껏 행복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남녀 사랑이야기인데, 레바논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와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떠난 파병지에서 싹튼 사랑은 이야깃거리로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아내와 사랑 이야기를 글로 담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씩 회상하면서 브런치에 연재했습니다. 친한 글벗 응원을 받으면서 열 편 이상 쓰다 보니 브런치 북을 만드는 조건을 충족했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더 담아서 브런치 북을 완성했습니다. 2021년 10월 23일은 우리가 결혼한 지 정확하게 11년이 지난날이었고 운명처럼 브런치 북 프로젝트 마감일과 같았습니다. 아내에게 결혼 기념 선물로 만든 브런치 북이었기에 의미가 컸고 모든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게 느껴졌습니다. 실컷 기대를 한 상태에서 결과가 나오자 아쉬움 가득한 고배를 마셨지만, 좋은 추억을 쌓았다는 뿌듯함은 남았습니다.


그 후로도 너의 작업실과 브런치에서 열심히 글을 나누던 중 올해 브런치 북 프로젝트도 똑같은 10월 23일까지 마감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예전에 작성한 브런치 북에서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서 공모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정제된 단어가 아닌 어색한 문장과 수려함과 유려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이며 맥락도 잘 맞지 않았지만 진심을 담아 글로 새겼고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깃든 정성을 브런치 북 심사위원께서도 좋게 평가한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서 직업을 바꾼다거나 삶이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백억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단지 살면서  전환점이었던 레바논 파병 당시 아내를 만난 순간을 우연히 찾아온 글쓰기 공간 두 곳 덕분에 브런치 북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터닝포인트는 제 삶 마지막에 닿을 목표를 바꾸는 게 아닌 조금 다른 길로 안내할 뿐입니다. 물론 꽃길입니다.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길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걷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다시 한번 글벗과 관계자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디 없을까 고민하다가 2032년쯤 가능하거나 앞으로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며 적었습니다. 놀라셨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보글보글 주제 터닝포인트를 생각하다가 혹시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당첨(?) 되면 소감에 반영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미리 쓰면서 제 바람을 듬뿍 담았습니다. 그래도 양심껏 대상은 아니고 특별상입니다. 이글이 브런치에서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운영진에게 경고를 받을지도.

여하튼,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분은 곧 다가올 올해 수상 발표에 제 필명 옆에 나란히 새겨집니다. 단, 이 글에 흔적을 남겨야 유효합니다.(행운의 편지 느낌으로...)


* 표지 : 지금 뜨는 작가에 올라 간 화면캡처하여 기존 브런치 수상작 작가와 교체했습니다.




* 이전 글:  대상 수상자(였음 하지만, 관심 없는) 작가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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