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지금 나도 그곳에 있어

독립출판 도서 '지금 난 여름에 있어' 에 대한 생각

by 혜남세아


요즘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하나에 집중을 못하기도 하면서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 관심있는 책 몇 권을 사서 가지고 다니다 마음에 드는 한 권을 읽는다. 어제 완독 한 책은 구입한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지금 난 여름에 있어'는 김미현 작가가 제주와 몽골, 프라하와 파리를 다녀온 여행 이야기로 독립출판 도서이다. 책은 200페이지 정도인데, 감성 여행 사진도 중간에 많이 포함되어 있어 가볍게 읽기 좋다. 어제 아내에게 건네줬더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고 다시 돌려받았다. 그러면서 유려한 소감을 전해주고 이상한 문맥과 오탈자까지 찾아줬다. 누군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대충하면서 나와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글쓰기 세상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도록 반드시 차단해야겠다.





독립책방 '너의 작업실' 한편에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책 표지가 세련됐다. 초록색 액자 안에 강변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짙푸른 플라타너스로 추정되는 나무 밑을 천천히 지나가는 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초록색 액자 틀에 초록색 나무, 초록색 강으로 구성 되어있는데, 과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한 여름에 책을 앞에다 두고 지나 칠 수 없도록 표지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냥 예쁘다. 한 장을 넘기면 제주의 광활한 바다가 나온다. 바다는 하얀색부터 짙푸르다 못해 초록 빛깔로 보이는 바다의 끝까지 촘촘히 그라데이션 되어 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아~ 가고 싶다."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책을 표지와 첫 장만 넘겨보고 구입하는 호갱이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호갱이는 글과 사진에 안목 높은 사람으로 변했다. 작가의 문장은 아름답고, 여행 이야기는 솔직하게 들려준다. 읽는 동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으며, 수시로 눈을 감고 작가와 함께 여행을 했다. 심지어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고, 마치 내 글 같다는 망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작가 소개를 다시 찾아서 읽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상상이고 작가의 감성을 발가락만큼도 따라가지 못하는 미천한 내 수준이 원망스럽다 못해 시기와 질투를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제주, 몽골, 프라하, 파리 여행을 특색에 맞게 이야기를 하는데, 작가의 여행에 대한 생각과 삶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소설처럼 전개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와 몽골은 발단과 전개, 프라하와 파리는 절정과 결말쯤이 되는 것 같다. 위기는 곳곳에 있는데, 소설은 아니다 보니 전반적인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달해 준다. 구입한 날 절반 정도 읽었고, 중간에 서너 번 짧게 보다가, 어제는 프라하의 일부와 파리 부분을 읽다 보니 앞부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첩에 좋은 문장을 많이 적어 놨다.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단락이 끝나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사진이다. 여행 에세이는 사진이나 그림이 많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글로 감성이 돋게 이야기해주고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사진이 뒤를 따른다. 이야기를 들을 때 상상했던 장면들이 하나둘씩 뒤에서 나타나니까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느꼈으며, 여행지에서 작가와 함께 글을 쓰고 있는 느낌도 받았다.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 많았는데, 여행지의 강가나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과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일상을 보내는 부분이 좋았고, 중간에 다른 책을 소개한 부분이 있는데, '빈센트 나의 빈센트'에서 '특별한 잔치나 축제가 없어도, 그저 감사와 차 한잔을 나누는 소박한 식사 속에서도 인생의 눈부신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라는 글귀에서 내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나는 가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맥도널드에 가서 해피밀을 시켜놓고 실랑이를 하면서 식사를 즐기는데, 신나서 웃고 떠드는 순간도 아닌데도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좋아 웃음이 나온다.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 눈가가 촉촉해지는 마법도 경험해 봤다. 주책맞게. 그런데, 그냥 그 정도면 충분하다.




책을 보다 여러 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좋은 부분을 읽게 되면 눈을 감고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가만히 있게 된다. 조금 거칠어졌던 호흡이 가라앉으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감정이 날아가는 것을 잡아보려고 펜을 들어 수첩에 내 것들을 쏟아내어 보지만 단 한 번도 그 기분을 고스란히 담아 본 적이 없다. 더 포장할 필요도 없이 그냥 사실 그대로 표현만 하면 되는데, 그것 조차 안된다. 언젠가는 내 글에서도 그런 향기가 묻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난 여름에 있어'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지금은 쓸 수 없어서 읽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십 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읽다 보면 책의 한 단락 정도만이라도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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