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Aug 28. 2021

소설을 무시한다

생애 첫 소설 아몬드 독전감

 



소설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할 것 같은 책 표지를 보면서 다음에 천천히 사서 읽겠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바로 구입해 버렸다. 젊은 청년의 증명사진 같은 그림이 표지이다. 표지에는 제목과 작가, 그리고 출판사만 쓰여 있고, 낮은 채도의 갈색 계열을 많이 사용했다. 칙칙한 듯한 짙은 갈색 머리에 동공과 흰자위는 구분되지 않으며, 얼굴에 비치는 빛은 적당하게 밝고 어두움만 구분하는데, 무표정이 압권이다. 무슨 말을 걸어도 듣지 않을 것 같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주인공 같은 청년의 얼굴을 보면서 앞으로도 아무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지나쳤던 책 '아몬드'를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끄럽지만 난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사실 소나기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교과서에서 접한 소설은 읽었는지 아니면 누가 읽어줬는지 그것도 아니면 티브이로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어려서 부터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한참 읽어야 할 나이에는 만화책을 많이 접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슬램덩크나 H2, 러프, 상남 2인조와 함께 보내고, 대학 때는 학점 받을 수준으로 전공책을 읽었으며,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대하면서 군 관련 교리를 주로 읽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나 여행 또는 인문학 도서를 많이 구입했는데, 잘 읽지는 않고 보기 좋게 책장에 차곡차곡 쌓아 놓다가 이사를 할 때 즈음 중고서점에 내다 파는 일을 반복했다. 당연히, 읽은 책이나 읽지 않고 팔려가던 책 중에 소설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내는 인생 책을 '해리포터'라고 한다. 고전 중에 소설도 많은데, 책도 잘 읽는 아내가 해리포터를 좋아한다고 해서 웃겼지만, 생각해 보니 난 해리포터를 한 문장도 읽지 않았다. 가끔 책을 같이 읽으면 내가 3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아내는 200페이지를 읽거나 다른 책을 본다. 아내가 유독 빠르게 읽는 것도 있지만 내가 정말 느리게 읽는다. 읽는 것만 느리면 그나마 괜찮은데, 이해력도 많이 떨어진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취미로 글쓰기를 하면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많이 읽는다. 특히, 함께 글 쓰는 모임의 글은 정독한다. 어쩌면 쉽지 않은 글을 읽는데 노력을 허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준 높고 유명한 작가의 글을 많이 읽으면 도움이 되는 것이 마땅한데, 계속 동네 친구들 글만 읽는다. 감정에 치우친 것이 아니고 글 모임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동력을 받는 것이 내 글쓰기의 큰 양분이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네 친구들의 글에는 베스트셀러나 고전에서 본 문장보다 내 가슴에 와닿는 문구가 많다. 대신 많이 접하다 보니 읽는 속도나 이해력도 조금 빨라졌다. 글쓰기 플랫폼의 다른 글도 읽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책을 한번 제대로 읽어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서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이른 아침부터 무미건조한 청년과 눈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작가 이름과 표지의 청년을 보면서 당연히 남성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편견이 깨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표지 한 장을 넘기자 작가 추정 인물이 무표정 청년과 비슷하게 어느 한 곳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가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아몬드'가 등단 작품인 것과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도 번역되어 인기 있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쓰여있다. 일러두기에는 알렉시티미아 라면서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생소한 글이 있는데, 표지와 일러두기만 봐도 무미건조한 아이가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읽었다. 책을 구입하자마자 서점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한 장을 읽는 중 더 이상 읽고 있다가 우리 가족의 화목이 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덮었다.



 첫 장만 읽었는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죽음과 관련된 단어들이 쓰여 있었고, 자살과 살인이라는 단어도 기억에 남는다.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만 다시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함께 읽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인상 깊은 문장을 공유하는 것 같은데, 난 읽지 않았다. 한 주간 정해진 분량에서 내가 읽은 부분과 다른 사람이 읽은 부분을 비교해 보고 싶어서 아니면 오늘 하루라도 읽은 부분까지만 공감하고 싶어서 참으려고 한다. 한주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라 오늘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텐데, 잔뜩 기대가 된다. 청년은 살인마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 프롤로그에서 아몬드가 누구한테나 있다고 언급하던데, 감정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부터 소설을 읽는 기대감은 크다. 어쩌면 인생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의 말처럼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 수도 있을 텐데, 책을 읽기 전에 내 심경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독후감 또는 서평에 대한 독서 전의 내 생각을 미리 정리하고 다 읽고 난 다음 비교하고 싶었다. 이렇게 되면 독전감이 되는 것인지 독후감의 초안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아몬드를 만지작 거린다.




* 한 달간 천천히 소설을 읽었다. 작가의 서랍에는 주 단위로 인상 깊은 문장과 소감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감정을 느꼈다. 소설을 다 읽고 리뷰까지 마무리 한 시점에 독전감과 독후감만 발행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나도 그곳에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