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영화 돌아보기 -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7)
연예인의 사생활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불륜 관계의 두 사람의 실명이 그렇게 버젓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었다. 특히 영화계에선 이름이 나있던 감독이었고, 그녀 또한 과거에 있었던 연기력 논란을 단숨에 잠재울 만큼 호평받고 있었던 대세 여배우가 아니었던가. ‘티켓 한 장도 팔아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던 상황에서 혼자 영화관에 가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사랑’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줄거리를 통해 혹시나 그들이 내고 싶었던 목소리가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하게도 궁금해서.
영화는 그의 전작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크게 여배우 영희가 독일을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1부와,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2부로 나뉜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결국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밖에 없던 보통의 상업영화에선 느낄 수 없던 생소함이었지만, 보다 보면 그마저도 결국은 홍상수만의 특유의 분위기로 작용하게 되더라.
1부는 2부의 배경이 ‘강원도 강릉’이라는 점을 비교해보았을 때 약간의 이질감이 들었던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친한 언니인 지영과 함부르크에서 만나 한적한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고, 구석구석 숨겨졌던 조용한 공간들을 구경해보기도 하고, 어색하긴 하지만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웃으면서 밥도 함께 먹는다. 지영과의 대화에서 ‘그 남자’라고 칭해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중간마다 꺼내기는 하지만 상황을 몰랐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만큼 1부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스토리의 전개는 진행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이기적이고 독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잘하진 못해도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꺼내는, 얌전하고 순박한 캐릭터의 주인공만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뭐지?’ 하는 생각으로 잠시 멍하게 있던 찰나 화면은 어두워지고, 몇 초 사이 잠깐의 정적이 이어진다. 내 기준에서 엉뚱하다고 생각되었던 영희의 행동과 마지막 장면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마침내 시작된 2부, 극장에서 혼자 울고 있던 영희의 모습을 지나고 나면 반가운 것들이 등장한다. 더 이상 들리거나 보이는 말은 꼬부랑글자가 아닐뿐더러 영상 너머 보이는 풍경도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2부는 한국으로 돌아온 영희가 예전에 같이 연기를 할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걱정과 달리, 그들은 모두 그녀를 반기며 영희가 연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을 격려하고 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전적인 의도는 없다’고 밝혔던 바가 있지만, 그리고 나 또한 ‘밖의 상황은 모두 배제하고 보자’고 생각하고 봤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사나 행동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꾸 현실이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들이 말했던 대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나답게 살아도 되는 걸까. 아무리 본인도 모르게 마음이 이끌렸다고 한들 누군가에게 고통까지 주면서 새로운 사랑을 이뤄내는 것이 정말 올바른 일일까. 그들의 행동에 약간의 후회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회를 남기기 싫어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던 것인지, 왠지 아슬아슬했다.
개인적으로 몇몇 대사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합리화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유치하다는 생각도 했고,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 싶은 말은 뭘까 답답하다는 느낌도 받았었지만, 분명한 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희가 주는 묘한 쓸쓸함이 나에게도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방앗간 앞에서 혼자 서서 부르던 영희의 노랫소리가, 술김에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소리치던 그녀의 목소리가 영화가 끝나고도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홍상수 감독은 배우의 매력을 최대치로 돋보이게 해주었고, 김민희 역시 자신의 연기력과 커리어에 있어서도 정점을 찍었다. 누구의 마음 한 켠에 나 있는 외로움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한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지도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지 않았을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들면서, 영화의 긴 여운처럼 해변에 혼자 잠들어있는 영희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