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영화리뷰

by 서산시민


끔찍함을 표현한 작품들을 최근에 많이 접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끔찍함의 이야기에 가까울 것 같다.




삶은 사랑을 위해 존재하며, 삶의 가치는 무엇을 주었는가에 있다는 마츠코의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많은 철학자가 이야기했던 삶의 가치기도 했으니까.


다만 마츠코와 수많은 철학자의 차이는 기대에 있다.




수없이 많이 되풀이된 "어째서?"라는 말은 그 기대감을 증명한다.


마츠코는 사랑을 기대한다. 그래서 아낌없이 자신을 바쳐서 사랑을 건넨다.


하지만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을 보면서 여러 질문을 떠올렸다.




사랑은 어떻게 생기는가?


사랑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사랑은 어떻게 끝이 나는가?




여기에서 마츠코가 혐오스럽게 된 이유가 나온다.




마츠코의 사랑은 꽤 가볍게 생기는 것 같다.


내게 사랑을 줄 것 같다는 '기대' 한 줌이면 사랑이 생긴다.




마츠코의 사랑은 힘들긴 하지만 마츠코의 마음대로 유지된다.


기대를 낮추고, 모든 것을 견디며 상대에게 다 퍼준다.


그 대가로 곁에 있기만 한다면 마츠코의 사랑은 유지된다.




마츠코의 사랑은 결국 상대가 떠남으로 끝난다.




혐오스럽게 되어버린 이유는 그 모든 답이 쉬운 답이었던 탓이겠다.


또한 기대도 쉬운 기대였던 탓이겠다.






스토너가 생각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마츠코의 삶과 스토너의 삶은 차이가 있을까?




스토너는 내가 사랑했던 것이 남음을 보면서 죽었다.


마츠코의 마지막은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이 남음을 실감하지는 못했겠지만


결국 그들도 마츠코를 떠올린다. 사랑했던 것이 남기는 했다.




사랑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답인가.


정말 마츠코의 일생은 혐오스러운가.


마츠코라는 사람은 혐오스러운가.




우리가 이 작품을 인상깊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랑을 돌려받진 못했지만 결국 사랑이 남았고,


끝없이 좌절하고 실망해도 다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리뷰를 쓸 때, 이 글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한다.


질문을 만들어놓고 시작하지만 쓰다보니 생겨나는 질문도 있다.




감사하게도 이번 리뷰도 질문이 생겨났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참 어렵다. 사랑을 주기만 해서 끔찍해진 일생을 보았기에.


그러나, 사랑을 주기만 해서 인상깊은 사람을 보았기에, 나는 이 질문으로 리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질문)

1. 사랑은 어떻게 생기는가?

2. 사랑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3. 사랑은 어떻게 끝이 나는가?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채식주의자 -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