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 한강

by 서산시민

언제나 그렇듯이 책을 읽는다 하여서 그 모든 것들을 헤아릴 수는 없다.


이는 대화의 과정에 가깝다.


생각과 실제 말, 듣는 말과 해석한 생각은 각자가 다르기에.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의 나열뿐이다.


내 질문은 오롯이 내 것인 이유이다. 그것이 작가가 말한 것과 다를지언정 그렇다.



폭력은 무엇인가.


폭력의 종류에 대해 나열해 보자.


어쩌면 고기를 생산하는 것도 폭력이고, 평범함의 기준을 정해 맞추는 것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일 테다.


어쩌면 상대를 이해하지 않음도 폭력이고, 비범함과 평범함 사이에 끼인 인간도 폭력을 당하는 것일 테다.



식물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마 그것은 폭력을 내려놓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폭력을 내려놓은 자의 모습과 폭력에 저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였다.



어쩌면 이렇게 보아서는 자본주의도 폭력이 될 테다.


이전에 EBS 자본주의 책에서 자본주의는 반드시 파산자를 낳는 구조임을 알려준 적이 있다.


즉, 사회도 폭력을 행한다. 우리가 숨 쉬는 이 순간에도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함을 다시 상기하고 있다.



폭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작품에서는 그것이 나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도끼를 댈 수 없는 나무가 그러한 존재일 것이다.




과연 주인공 영혜는 폭력적이지 않았는가.


그 또한 모호하다. 작품의 해석에 따라 어떤 이는 폭력에 저항하는 영혜를 보았을 것이고


어떤 이는 또한 영혜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폭력을 가하는 영혜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리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연 폭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삶의 양식이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마무리해야 할까?


우리는 결국 폭력을 주고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언급하며 마무리해야 할까?



싯다르타에서 나는 우리가 고통을 느끼고 감각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에게 비극을 주는 존재를 사랑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우리가 결국 흙으로, 나무로, 다른 무수히 많은 삶의 존재로 돌아간다 하여도


생명 그 자체의 속성 때문에 사랑도 선택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했었다.



이전에 욕망에 대해서,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정리한 글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이 단어들을 서술하기 어렵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참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산재한 폭력에 대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자가 오히려 폭력을 행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서로가 서로의 폭력을 수용하거나 그것에 분노하거나 하는 것도



나에게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이었다.



질문)

1. 폭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2. 폭력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삶의 양식이 있는가?

3. 수많은 폭력 중 무엇을 수용하고 거부할 것인가?



사용법)

폭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만한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의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찝찝한 책이기는 하네요. 소장 가치는 있습니다. 다시 읽어볼 것 같은데.. 글쎄요.. 언제 다시 읽을지 어떤 이유로 다시 읽을지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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