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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Jun 23. 2018

습관

74화

최근에 사랑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뜨거운 사랑이나 적당히 불편한 정도의 설렘, 혹은 잘 맞는 성격, 공유하고 있는 많은 비밀, 오래된 행복한 추억. 이런 것들은 사랑을 보장해주는 데 한계가 있다. 최장 기간 보장, 가장 확실한 보증. 이런 게 꼭 필요한가, 물으면 당연히 없다고 하겠지만 그저 있다면 이게 아닐까 싶은 걸 알았다. 이미 제목에서 말해버렸지만, 습관.


같이 살다보면 맞지 않아서 짜증나거나 화가 날 때가 많은데, 그걸 견디게 만드는 건 바로 습관이다. 좋은 습관이라 불편한 시간을 잘 버텨서 갈등도 해결하고 마음도 좋아지면 행복하겠지만. 불행한 생활이 이어진다면 이미 습관적으로 오랫동안 그걸 견뎌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쁜 배우자나 나쁜 가족도 그냥 나쁜 습관처럼 오래도록 이어져버린다. 만들어내기도, 끊어내기도 힘든 습관이 바로 인생을 이어가는 비밀인 것 같다. 왜 사느냐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이 그저 태어났고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거. 다들 알고 있듯이 살아간다는 건 우리가 놓지 못하는 가장 오래되고 끈질긴 습관.


누군가에게 습관이 되는 일은 아주 어렵기도 하고 또 때론 어처구니가 없게 쉬워서,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진다. 나는 특별히 별로 습관을 만들지 못하는 편이라, 학교를 다닐 땐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그만 둬 버렸고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도 그토록 사랑하여 남들이 다 질려버릴 때까지 듣다가도 그냥 어느 순간엔가 찾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게 되어버린다. 내가 가진 습관이라고는 죄 나쁜 것들 뿐인가보다. 손톱을 뜯거나, 늦잠을 자거나, 방을 어지럽히거나...


내가 가진 좋은 습관을 찾아보노라면 대학 때 "왜 쓰느냐"에 대해 답했던 것. 습관이 되어서. 그래도 정기적으로 쓸 만큼 습관이 잘 들어있지는 않다. 또 하나는 가만히 있을 때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운동을 한다거나 자세를 고치는 등 신경쓴다는 점. 그리고 좀처럼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 어릴 땐 뒤돌아서면 매번 잃어버리는 게 많아서 죄책감이 심했는데 요즘엔 너무 잃어버리질 않아서 무언갈 사는 데 죄책감이 심하다. 또 아주 어릴 때부터 가는 모임. 그리고 밥 먹기 전에 하는 기도. 다행히 괜찮은 것도 몇 개는 있는 모양이네..


오늘은 어떤 커플의 웨딩 파티를 다녀왔다.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습관이 되기를 바란다. 불행을 이겨내고, 슬픔을 털어내고, 활기를 일깨워주는 습관. 함께 있어 마음이 편안하고 없을 땐 늘 기다리게 되는, 좋은 습관. 서로에게 좋은 습관이 된다면 결코 살아가는 일이 죽어가는 일이 되지는 않을 테지. 그리고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치 좋은 습관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웃어주는 것, 말해주는 것, 내가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 필요할 때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내가 세수를 하다가 눈을 감고 비누를 찾듯이 있어야 할 바로 그 곳에 습관처럼.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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