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
문을 열면 어떤 식으로든 문이 열렸다는 걸 알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종을 달자니 마음에 드는 소리의 종을 찾기가 힘들고 고개를 책상에 쳐박고 있으면 문이 열리는지 강도가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게 나일 텐데 어쩔까. 그러다가 도어스토퍼를 찾았다. 적당히 밀면 그 자리에 고정되는 도어스토퍼 말이다. 다시 닫기 위해 잡아 당겨야만 하는 작은 도어 스토퍼를 바닥에 붙였다. 그러면 날씨가 추운 날엔 손님이 들어온 다음에도 찬바람이 들어와서 날 깨울 것이고, 더운 날엔 에어컨 바람 빠져나가는 즉 전기세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겠지. 그러면 이제 내 책상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자유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렇지만 어디에 내가 앉는가가 죄다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데... 손님이 없기 때문. 손님이 없다. 간판이 내 눈에만 보이는 마술 간판인가? 밖에서 여기 서점이 있다는 걸 이렇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나? 열어두고 이틀이나 지났는데? 게다가 여기가 뚝딱 생겨났을까? 여러 날을 왔다갔다 하고 가구가 들어오고 간판을 달고... 인테리어 공사도... 아무튼 그렇게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특별히 조심하지 않았는데.
서점을 열고 이틀 사이에 온 손님은 종이 한 장이었다. 누가 문을 아주 살짝 열었다가 닫으며, 광고지 한 장을 안으로 던져넣었다. "사장님대출/일수환영" 그게 서점 안에서 유일하게 내가 만들지 않은 물건이었다. 나는 전단지를 카운터 옆에 두었다. 언제라도 사장님 대출이 필요할 지 모른다고, 경종처럼 날아온 종이가 밉지 않은 한 여름의 오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이름의 동네에 서점을 차렸다. 내 이름은 P. 오늘은 서점 문을 연 지 꼭 일년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