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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Dec 02. 2019

일상 속의 서점

92화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유브 갓 메일>을 보다가 책 읽어주는 시간에 꽂혀 지난 달부터 벼르던 "12월 한정 책 읽어주는 월요일"을 열었다.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책 듣는 시간. 서점 안을 정돈한 뒤 목청을 가다듬으며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었다.


처음 책방을 차릴 땐 홍대나 이태원처럼 핫한 곳이 아닌 이런 아파트 상가에 동네 서점을 차리는 게 못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찾아와주는 핫한 젊은이들이 있어 남부럽지 않은 독서모임을 열었고, 아이들을 위한 독서수업을 열어 월세를 낼 수 있었다. 이제 영어책을 같이 읽는 어린이들도 있고, 선생님도 함께라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이렇게 평온한 가운데 책방 4주년을 맞이한 것으로도 모자라, 오늘처럼 내가 읽어주는 책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준 날에는 기분이 더 좋을 수 밖에.


없던 에너지까지 샘솟아 마지막까지 손님들을 배웅한 뒤에 퇴근하던 길. 문득 10살짜리 손님이 한 말이 선물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이번 한 달 내내 월요일에는 책을 들으러 올 거라며, 이게 제 일상이 될 걸요, 라고 말했다. 일상. 누군가의 일상 속에 우리 서점이 있다는 게 갑작스럽게도 너무 황홀한 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일기 속에. 하루를 되돌아보면 그 날 안에. 기억 속에 아련하게. 일상이 되어 남는다니 너무 고마운 일이 아닌가... 일생을 딱히 착한 일 하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 과분한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최근엔 이대로, 딱 이대로만 계속 살고 싶다. 누군가 내 행복을 죄 앗아간다해도 별로 억울할 것 같지 않지만, 이렇게 내버려둔다면 더욱 고마울 테지. 뭐라고 할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도, 후회가 섞인 미련도, 두려움도 없는 상태.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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