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고속버스

29화

by Lia


겨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 해 초였다. 새해가 되었으니 곧 봄이 올 텐데 그러면 더 이상 내가 숨을 쉴 때 입김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차를 타고 달릴 때 창문에 물기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길가 상점에 들어설 때 얼굴에 따뜻한 공기가 스며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갑자기 매우 서운해졌다. 누구에게랄 것은 없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겨울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 번도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한 적 없었던 지난 삶을 근거로 이번 기회에 겨울을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 해 봄은 너무 빨리 오고 있었다. 일본 여행 때문이었다. 늦가을쯤 예약해 둔 여행이었고, 취소하려면 여행비용의 반을 날려먹어야 할 판이었다. 이러쿵저러쿵 여행을 떠날 수 없는 피치 못한 사정을 만들어 보았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여러 가지 핑계거리를 만들어 마침내 전화를 걸었지만 여행사 직원은 반액 환불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냥 가겠다고 했다.


하필이면 오키나와였다. 초봄 날씨여도 서러울 마당에 초여름 날씨라니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여행가방을 쌌다. 내가 먼저 겨울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겨울이 여기 있는데 말이다. 결국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우울증이 도지고 말았다. 여행 내내 화창했던 날씨와는 달리 내 마음은 눈물바람이 불었고, 따뜻한 바람에 꽃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겨울은 떠나고 없었다.


딱히 겨울을 좋아하게 될 만 한 계기는 없었다. 그 겨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한 연애를 했거나 승진을 했거나 하는 이벤트는 없었다. 단지 새해가 되자 겨울이 곧 지나간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진 후였고, 겨울이 좋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그러니 그 해 내내 나는 다가올 겨울만을 바라봤고, 다른 무엇에도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여자에도 관심이 없었고 학교 일이나 내 공부나 집안일 그 모두를 아무런 감흥 없이 흘려보냈다. 무심결에 한 해가 날아갔다.


그러던 여름의 끝. 고속버스를 타고 시골에서 올라오던 길이었다. 창 밖에 어스름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첫 바람이 불어왔다. 찬 바람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단지 그 공기의 온도와 공기의 이동, 공기와의 접촉 때문에, 내 모든 벽이 허물어졌고 모든 얼음이 녹아내렸다. 겨울은 매우 귀찮다는 듯, 다시 돌아왔다. 게으르게, 늑장을 피우면서. 나는 안다. 겨울이 얼마나 걸음이 더딘지.


나이 먹는 것도 두렵고, 추운 것도 싫어지는 요즘이면 그 바람을 생각한다.






추신. 이것은 픽션입니다. 제 산문을 구독해주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탈하고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