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좁은 나의 세상 속에 살던 넌 행복하긴 했을까
취향의 세계에 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취향이 분명한 편이 아니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정말 그랬다. 유행따라 인기차트 1위부터 100위까지 랜덤 재생을 하거나, 정말 좋아하는 영화 혹은 드라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만 무한히 반복하곤 했다. 그랬던 나에게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1집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벌써 발매된 지 십 년이 넘었는데, intro부터 outro까지 17곡이 모두 타이틀곡처럼 듣기 좋았고 랜덤 재생을 하지 않아도 질리지 않았다. 더 신기한 점은 모든 노래가 슬프지도, 신나지도 않다는 점이다.
노래에는 정말 다양한 요소가 있다. 음과 멜로디, 리듬, 가사, 쓰인 악기도 하나하나의 요소일 수 있고, 가수의 목소리도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리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1집 노래들은 이 모든 요소가 모두 한 방향을 향해있지 않다. 각각의 요소가 제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노래한다. 가수만 노래하지 않고, 음도 노래를 하고, 악기도 노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의 모든 요소가 더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아름다운 노래의 조건이다.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나는 성악을 1년 여정도 배운 적이 있다. 덕분에 오페라를 몇 번 봤고, 클래식 음악도 많이 들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는 풍부함에 있다. 클래식은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일으키고, 새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특히 앞서 말한 음악의 모든 요소가 단지 하나의 감정을 향해 있는 대중음악은 단 하나의 감정만 불러낸다. 어쩌면 모든 예술이 비슷할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마음 속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그림은 진심으로 아름다울 테다.
특별히 Intro인 <북천이 맑다 커늘>을 적은 것은 풍부한 소울의 세계의 문을 여는, 한국적이면서도 세련된 곡이기 때문이다. 화음이 아주 입체적이다. 날씨가 맑다했는데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가 내린다는, 조선 중기에 살았던 백호 임제의 시가 그 가사다. 기생 한우(寒羽)에게 쓴 것이라 한우(寒雨:찬비)가 내린다. 그는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으면서도 '내 죽음에 곡을 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니, 그래, 죽음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다. 죽음에도 기쁨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풍부함은 입체감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조각상을 미술관에서 만나면 사진에서 보는 앞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놀랄 만큼 아름다운 뒷모습이 있듯이. 연인과의 이별이 슬픔뿐만 아니라, 미안함과 고마움과 후회와 두려움 같은 것들을 가져오듯이. 모든 일에는 한 가지의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듯. 아름다운 것에는 한 가지 아름다움만 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