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보험회사의 무료긴급출동 여섯 번을 모두 배터리 충전에 사용한 마티즈가 한 대 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블랙박스가 전기를 많이 먹어 운전을 며칠 하지 않으면 쉽게 방전된다고 한다. 내 돈으로 혹은 내가 능력이 있어 산 차가 아니라 아빠가 몇 년 전에 사주신 차고, 그나마도 펜언니가 몰다가, 작년에 운전면허증을 따면서 나에게도 운전을 할 권한이 생긴 차였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다니면 마음이 불편했고, 마티즈는 주로 주차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와서 부딪히지 않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블랙박스를 켠 채.
그래도 이따금 혼자 운전해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혼자 배터리를 갈겠다고 집 앞 정비소에 가기도 한다. 혼자 차 안에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잠잠하다. 운전이 서툴러 온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마티즈는 힘에 겨운 듯 웅, 하고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내고, 나는 겁이 나는 것을 억누르고 다른 차들을 따라 열심히 도로를 달린다. 핸들을 꼭 잡고 커브를 돌 때는 바이킹을 탈 때처럼 발바닥에서 살짝 땀이 난다.
며칠 전에 군대 휴가를 나온 대학동기 동생을 만나러 갔을 때 녀석이 내가 운전을 한다는 것에 기가 죽는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기가 죽어버렸다. 나는 운전이 능숙하지도,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잘 적응하고 있지도 않은, 굉장히 어리고 또 여린(최근에 다시 느낌)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운전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싫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영원히 운전을 안했으면 좋겠다. 예전에 중학생 때, 터질 듯이 아이들이 꽉 찬 마을버스를 타고 다녔을 때처럼, 버스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남자친구가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말했다. 나는 아무리 오래 운전을 해도 당신처럼 운전을 잘 하진 못할 거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수석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아보았다.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또 한 해가 가고 있고, 나는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서글퍼서, 당연히 나는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차 안에 울려퍼지는 남자친구의 목소리만 들었다. 남자친구는 나를 행요라고 부른다. 행복요정이라는 뜻인데 내가 요정이라기보단 처음 사귈 무렵 내 앞머리가 너무 빽빽해서 남자친구가 만화캐릭터를 빌려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버스만 타고 다닐 수 없다는 걸 안다. 차 없이 못 살거라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나 그 때처럼 교복을 입고 마을버스에 탄 아이일 순 없다는 거다. 이미 아닌데, 앞으로도 아닐 거다. 가만히 서 있으면 오히려 방전되어버리는 마티즈처럼, 어쩌면 나도 가만히 있어서 배터리가 나갔는지 모르겠다. 요며칠 갈바람에 마음이 멈췄었다. 서투르게나마 계속 굴려줘야지. 나쁜 머리도 약한 몸도. 그러면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