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슨 일을 하든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었다.
' 일단 해보자! '라는 말은 나와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 모든 것들이 두려웠으며 막연했다.
그리하여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 흩날리는 벚꽃이 지고 나면 할 수 있을 거야. '
' 저 담벼락의 능소화가 떨어지고 배롱나무의 꽃이 올라오고 나면 나갈 수 있을 거야. '
' 어느덧 배롱나무의 꽃도 잎들도 다 떨어졌네. 이 겨울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으로 5년을 보내고 6년째가 되니 알게 되었다.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괜찮지 않아지고 있음을.
한 해를 보내고 그다음 해도 보내버리고 나니 사회로 나갈 용기는 찾아볼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조차 용기가 되어버렸다. 용기 없이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 감히 내가 무언가를 꿈꿀 수 있을까. 이 상태 그대로 나이 들어가겠지 '
끝끝내 생각은 우울에 잠식되어 버려 부정적 기운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희망적인 생각은 하기 어려웠다.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나를 부정 중이었다.
그런 나에게,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다며 망설이던 나에게 힘이 된 것은 남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사회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망설이는 나를 곁에서 기다려준 사람.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천천히 찾아 나서라고 무려 6년 동안 말해준 그가 있었기에, 경력이 단절된 지 6년 차인 올해 새로운 시작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 시작이 '사회복지대학원'이다. 못다 한 공부를 더 하겠다는 명분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 명분 아래 아직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 두려워 또 다른 유예기간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것 또한 사회로 돌아가는 걸음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왜 '사회복지대학원'인가.
언제나 나는 인생은 아름답고 세상은 둥글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 나의 생각은 아이를 낳고 더 짙어졌다. 그리하여 차가운 세상 속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환경'을 알아야 했기에 사회복지대학원을 선택한 것이다.
더불어 이전과는 다르게 아동복지 관련 공부를 한 후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기에 사회복지대학원을 선택한 것도 있다.
과연 나는 이 선택을 용기로 삼아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