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모노 파일을 받았다

그래도 영화 사운드

by 정이안

새벽 두 시에 도착하는 메일에는 대체로 사연이 있다.
아무 일도 없이 새벽 두 시에 파일이 오지는 않는다.
보내는 사람은 대개 급하고, 받는 사람은 대개 체념해 있다.
나는 후자였다.

메일 제목은 무난했다.
“사운드 작업 부탁드립니다.”

무난한 제목일수록 불길하다.
파일을 열어보니 wav 하나가 들어 있었다.
모노 파일 하나였다.


나는 스튜디오 의자에 등을 붙이고 한동안 화면을 봤다.
소리를 둘러세우기 위해 준비된 장비들이 정면의 작은 파형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5.1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모노 파일 하나로.


이쯤 되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다.
사람들은 소리가 얼마나 뒤늦게 생각나는 것인지, 사운드 작업자가 어떤 마음으로 파일을 여는지 잘 모른다.
영상은 일단 눈에 보인다.
무너지면 티가 난다.
소리는 그렇지 않다.
없어도 되는 것처럼 취급되다가, 막상 없으면 가장 먼저 욕을 먹는다.


나는 예전에 사운드가 영화의 절반이라고 말하는 문장을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실제 영화 현장에서는 영상 절반, 사운드 절반이라지만,
궁색하게도 예산이며 시간이 사운드에 할애되는 폭이 절반이 아니다.
늘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촬영이 끝난 뒤에야 사운드가 호출되는 경우가 많다.
편집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색보정도 이야기되고, 포스터 시안도 나오고,

때로는 예고편 이야기까지 나온 뒤에야 제작진들 사이에서 “아, 사운드!”가 된다.

그리고 그때는 꼭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는 상태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언제나 돈도 없다.


나는 모노 파일을 열어놓고 헤드폰과 스피커를 번갈아 썼다.
노이즈를 듣고, 잔향을 듣고, 말의 거리감을 듣는다.
말은 가까운데 공간은 멀고, 인물은 실내에 있는데 소리는 애매하게 벽을 잃어버린 상태일 때가 있다.
이런 파일을 들으면 사람이 아니라 조건을 듣게 된다.
어디서, 얼마나 급하게, 무엇을 포기한 채 녹음했는지가 같이 들린다.

소리는 스피커 갯수의 문제가 아니다.
촬영 당시 공간의 문제다.
앞에서 들릴 것과 뒤에서 스칠 것, 인물 곁에 붙어야 할 공기와 멀리 물러서야 할 숨소리를 나누는 일이다.
그런데 모노는 납작하다.
앞도 뒤도 없고, 깊이도 옆도 없다.
한 점처럼 온다.
그 점 하나를 가지고 방을 만들고, 밤을 만들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럴 때 계산기를 켠다.
문학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결국 내 일은 계산을 피해서 굴러가지 않는다.
한 시간짜리 오디오가 들어오면 몇 시간의 작업이 소요될지,
대사가 이 상태면 복원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노이즈를 더 깎으면 자음이 얼마나 같이 죽는지,
공간감을 억지로 세우면 얼마나 가짜처럼 들릴지.


창작자라는 말에는 자주 낭만이 묻어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도구는 저장과 되돌리기 버튼이다.


예술은 갑자기 오지 않고, 대부분 작업 시간표 안으로 강제로 끌어들여야 한다.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포기할지 정하는 과정은 미학이 아니라 예산표에 맞닿아있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런 밤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모노 파일 하나를 받아놓고 한숨을 쉬다가도 결국 나는 다시 사운드를 다듬기 시작한다.
센터에 대사를 놓고, 양옆에 얇은 공기를 펴고, 뒤로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생활음을 숨긴다.
저역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를 조금 넣는다.
관객은 이런 걸 모른다.
그냥 소리가 들린다고 느낄 뿐이다.


나는 그 “그냥”이라는 말을 오래 생각한다.
좋은 사운드는 자주 그냥 지나간다.
너무 잘 붙어 있으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존재감이 있으면서도 튀지 않아야 하고, 분명히 일을 했는데 한 일처럼 보이면 안 된다.
사운드는 보이지 않는 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있어야 하는데, 드러나면 안 되는 노동.


새벽 세 시가 가까워졌다.
모니터 속 파형은 여전히 가늘고, 스피커는 여전히 묵묵했다.
나는 또 조금씩 없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없는 방향, 없는 깊이, 없는 공기.


생각해보면 내 일은 늘 그런 식이었다.
이미 놓쳐버린 것들 옆에 앉아
만들 수 있는 것을 세는 일.


모노 파일 하나가 도착한 밤에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좌절이 아니라 분류다.
어디까지 가능한가.
어디서부터는 불가능한가.
무엇을 속일 수 있고, 무엇은 끝내 속일 수 없는가.


그 경계를 오래 보다 보면
사람이 하는 일도 대체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가진 것은 시간과 조건에 쫓긴 모노 파일인데,
원하는 삶은 화려한 서라운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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