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는 누구의 이름으로 빛나는가

그래도 사운드

by 정이안

이 업계에는 이상한 예절이 있다.
사람을 먼저 보지 않고, 작품도 먼저 보지 않는다.
먼저 묻는 것은 늘 비슷하다.


어느 기업 거 했어요?
누구 나오는 거 했어요?
연예인 붙은 거 있어요?


질문은 공손한데, 속뜻은 대체로 저급하다.
당신을 사람으로 대하기 전에, 당신을 얼마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지 가늠해보겠다는 뜻.
본인의 존중은 선불로 주지 않고, 유명세를 담보로 잡고 나서야 조금 내어주겠다는 뜻.
실력의 세계인 척하면서 사실은 간판의 세계라는 뜻.


가끔은 웃기기도 하다.
영화든 광고든 기업 홍보든, 사운드는 원래 다 똑같이 골치 아프다.
붐마이크에 잡음이 끼면 대기업 현장이라고 해서,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출연 배우가 유명하다고 대사가 더 또렷하게 녹음되는 것도 아니다.
예산이 크다고 후반 수정이 덜 오는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오히려 반대다.
돈이 많을수록 말은 많고,

이름이 클수록 참견은 많고,

책임 소재는 신기하게도 끝까지 아래로 흐른다.


그런데도 업계의 몇몇 사람들은 결과물을 보지 않는다.
그 결과물 뒤에 붙은 로고를 본다.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간판을 듣는다.
기술을 보는 게 아니라 출연진 명단을 본다.
그러고는 마치 감별사라도 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이런 큰 작업을.”

그 말은 감탄이 아니다.
그건 대체로 자기 자신의 안심이다.
본인의 감각과 판단을 믿기 이전에

남이 먼저 인정한 것만 안전하게 인정하겠다는,

게으르고 비겁한 감식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유명 기업 광고 한 줄 들어가면 사람 태도가 달라진다.
이메일 말투가 달라지고, 회신 속도가 달라지고, 갑자기 존칭이 정돈된다.

반대로 독립영화, 저예산 콘텐츠, 이름 모를 브랜드 영상,

지역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면 공기가 묘하게 식는다.

'아, 그런 거 하셨어요?.....'

그 한마디 안에는 늘 비슷한 침전물이 깔려 있다.

별거 아닌 거 했네.
아직 급이 안 되네.
조금 막 대해도 되겠네.


이 업계가 자주 착각하는 것이 있다.
큰 프로젝트가 더 어려울 거라는 착각.

물론 어렵다.

그렇다면 작은 프로젝트는 쉬울까?


작은 프로젝트야말로 대개 구조가 허술하다.
허술한만큼, 가이드라인이 늦게 오고,

수정 지시는 중구난방이고, 파일 정리는 엉망이고, 예산은 적은데 기대치는 크다.
한 사람이 세 사람 몫을 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 결과만 멀쩡하길 바란다.
이런 현장에서 끝내 완성본을 뽑아내는 사람은,

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실력으로 버티는 사람이다.


다만 그 노동에는 번쩍이는 간판만 없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업계의 속물들은 번쩍임이 없는 것은 노동으로 세지 않는다.


결국 이 세계의 많은 평가는 수준이 아니라 신분 조회다.
포트폴리오를 본다면서, 실제로는 포트폴리오를 안 본다.
크레딧 줄에 익숙한 이름이 있는지만 확인한다.
무슨 문제를 해결했는지, 어떤 난도를 감당했는지,

어떤 감각과 노하우와 실력으로 정리했는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걸 알아보려면 본인의 감각과 귀와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은 본인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야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고를 읽는 일은 눈만 있으면 된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업계의 하대는 대개 실력 차이에서 오지 않는다.
겁에서 온다.

이 사람을 잘못 대했다가 내가 놓치는 게 있을까 봐,
이 사람 뒤에 무서운 회사가 있을까 봐,
이 사람이 나보다 더 센 네트워크를 갖고 있을까 봐.
그래서 큰 이름 앞에서는 허리를 숙이고, 작은 이름 앞에서는 턱을 든다.

예의와 존중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만 반응하는 사람들.
강자 앞에서는 프로페셔널이고 약자 앞에서는 본심이 나오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대개 그런 사람들일수록 “업계는 냉정하죠” 같은 말을 즐겨 했다.

사실 제일 우스운 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꾸 실력주의를 입에 올린다는 점이다.

실력으로 증명하세요.
좋은 작업 하시면 다 알아봅니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정작 알아보는 기준은 조회 수, 연예인 이름, 방송국 타이틀, 대기업 로고다.
그건 실력주의가 아니라 중고등학교 운동장식 서열 놀이다.
명찰의 색깔과 크기로 사람 대접을 다르게 하는 아주 촌스러운 방식.
세련된 척하지만 놀랄 만큼 후진적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실력을 키우기보다, 자기 이력서를 남의 유명세로 코팅하는 데 더 바빠진다.
실제로 한 일이 얼마나 되는지는 흐릿해도, 유명한 장면의 근처에만 있었으면 그걸 경력처럼 내민다.
반면 누군가는 진짜로 밤을 새워 결과물을 살려냈는데도,

이름값이 없다는 이유로 설명이 길어져야 한다.

설명이 길어지는 노동은 대개 저렴하게 취급된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잘 모를수록 더 함부로 가격을 깎고, 더 쉽게 무시하고, 더 빨리 평가를 끝낸다.
무지는 언제나 오만과 함께 온다.


나는 이제 안다.
그들의 업신여김이 내 작업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을 증명한다는 것을.

작품보다 로고를 먼저 읽는 사람.
노동 강도보다 유명세를 먼저 묻는 사람.

결과보다 배경을 더 신뢰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감식안이 있는 게 아니라, 남들의 판단을 외주 주고 사는 사람이다.
자기 눈이 없는 사람이다.
남들이 박수친 곳에서만 뒤늦게 박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질문을 들으면 예전처럼 주눅 들지 않으려 한다.

'유명한 거 하셨어요?'

그러면 정직하게 대답한다.

'아니요. 의뢰자가 유명하든 말든 돈만 주면 다 합니다.'


나는 점점 확신한다.
포트폴리오란 누구 옆에 서 있었는지의 증명서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책임졌는지의 기록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업계의 일부는 그 기록을 읽을 능력이 없다.
그래서 더 큰 명성의 로고를 찾는다.

능력이 없을수록 간판에 집착한다.
자기 귀로 판단할 수 없을수록 남의 명성에 기댄다.

그러니 하대받았던 기억들 앞에서 너무 오래 작아질 필요는 없다.
그건 내가 초라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천박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업계에는 실력 있는 사람이 더 많다.
정말로 결과물을 보고, 노동을 알아보고, 이름값 없이도 사람을 존중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유명인의 그림자에만 고개 숙이는 속물들도 그만큼 적지 않다.
문제는 후자 쪽이 늘 더 번듯한 말투를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구별이 잘 안 된다.

그러나 결국 티가 난다.

진짜 프로는 어떻게 진행했는지 일의 과정과 결과를 묻고,
가짜 프로는 출연진과 협력 업체를 묻는다.

사용 장비들도 본인의 철학과 경험으로 고르는 것이 아닌, 남들이 많이 고르는 장비들로 고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런 세계를 너무 잘 안다.
포트폴리오를 본다면서, 사람의 계급장을 찾는 세계.
실력을 말하라 해놓고, 명성을 제출하라는 세계.
작업물을 평가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브랜드에 절하는 세계.


그곳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가끔 헷갈린다.

정말 내가 부족한가.
정말 내 노동은 별것 아닌가.

그런데 아니다.
썩은 기준에 오래 노출되면, 멀쩡한 사람도 자기를 의심하게 된다.
문제는 내 이력의 빈칸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표 그 자체일 때가 많다.


나는 이제 그 표를 믿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내가 실제로 만진 파형, 살려낸 대사,

정리한 소음, 버텨낸 마감, 끝끝내 완성해낸 시간을 믿으려 한다.

간판은 남의 것이지만, 노동과 시간은 내 것이다.
그리고 끝내 사람을 증명하는 건 대개 간판이 아니라, 남이 보기 전에 이미 해치운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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