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자취 요리가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당연히 밥부터 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땡! 오답. 처음에는 즉석밥으로 해결했다. 아직 전기밥솥조차 들이기 전이었거든. 놀랍게도 우리는 갓 지은 것처럼 촉촉하고 윤기 나는 밥을 2분만에 전자레인지에서 ‘땡!’하고 꺼낼 수 있는 즉석밥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아무튼, 내 첫 자취 요리는 ‘계란 프라이’였다. (표준어가 ‘계란 프라이’여서 저렇게 적긴 했지만, 사실 ‘계란 후라이’라고 써야 더 맛있어 보인다.)
즉석밥 하나와 본가에서 얻어온 김치까지는 확보를 했는데, 곁들일 반찬이 없는 거다. 참치나 김에 대충 김치 얹어 먹을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제 스무살이나 됐고, 진짜로 혼자 살기를 시작했으니 불 위에서 뭐라도 지글지글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마음만 들었지, 할 줄 아는 요리는 없어서 고민 끝에 선택한 게 바로 계란 프라이.
어릴 때부터 ‘잘 만든’ 계란 프라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길까 싶지만, 아마 모두들 속으로는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걸.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일명 ‘하울 정식’을 보며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진정 없는가. 노릇노릇한 베이컨 두 줄 옆에 곱게 놓인 아름다운 계란 프라이. 노른자가 터지지 않고 동그랗게 모양이 잡혀 있으며, 흰자는 끝이 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그 아름다운 계란 프라이 말이다.
아니면 헐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이 브런치를 만들어 먹을 때 소시지 옆에 무심하게 툭 올려 놓는 그 계란 프라이. 이 때는 헐렁한 파자마 바지에 머리는 대충 올려 묶고 한 손으로 프라이팬을 멋들어지게 다뤄야 한다. 그렇게 대충 만드는 것 같지만 결과물은 완벽한 써니사이드업이어야 하고. 여기서 더 말하면 뭔가 계란 프라이 변태 같아 보일지도 모르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아무튼 계란 프라이는 내 자취 생활의 로망이었고, 그걸 처음으로 이뤄내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달걀 프라이 만드는 건 정말 쉬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프라이팬을 센 불 위에 올리고, 식용유를 한번 휘릭 두르고, 달걀 하나를 톡 깨서 떨어뜨리면 끝.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는 초간단 요리니까, 어려울 게 뭐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나의 본격적인 첫 계란 프라이는 보기 좋게 ‘망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기름을 둘렀는데도 계란이 그대로 프라이팬에 달라 붙어서 망했다. 팬이 충분히 달궈지기 전에 성급하게 계란을 깨 넣은 탓이었다. 프라이팬을 들어서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아주 단단하게 붙었다. 당연히 탔다. 당시엔 집에 뒤집개도 없어서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서 떼어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계란 윗면을 익히려다가 노른자를 다 터뜨렸다. 프라이팬에 맞닿은 아랫면은 타들어갈 정도로 바삭하게 익고 있는데, 윗면은 날계란인 채 그대로인 거다. 윗면을 어떻게 익혀야 하나 고민하다가, 숟가락 두 개로 간이 뒤집개를 만들어서 휘릭 뒤집었다. 성공! 인 줄 알았지만, 다시 뒤집어보니 노른자가 완전히 터져서 흰 자와 뒤섞인 채 마블링이 되어 익어 있었다.
대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그 ‘멋쟁이 계란 프라이’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란 프라이 예쁘게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영상 레시피까지 찾아보며 꼼꼼하게 공부했다. 수도 없이 먹어본 계란 프라이 만드는 법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배워가는 것이었다.
레시피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달걀을 프라이팬 위에 바로 깨서 올리는 게 아니라, 접시에 깨서 모양을 잡는 거였다.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달걀을 바로 올리면 닿는 순간 익으면서 모양이 굳기 때문이란다.
프라이팬을 달굴 때도 주의할 점이 있었다. 불 위에 프라이팬을 그냥 올려만 두면 불이 바로 닿는 부분만 더 뜨겁게 달궈지기 때문에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바닥면이 골고루 뜨거워지게 만들어줘야 한단다.
그렇게 프라이팬이 준비 되면, 접시에 깨둔 달걀을 조심스럽게 팬으로 옮긴다. 약불로 천천히 익히다가 흰자의 가장자리가 노릇노릇 익기 시작하면 계란 주변에 물을 세 스푼 정도 둘러준다. 그리고 프라이팬 뚜껑을 덮어주면 물이 끓으면서 생긴 수증기의 열기로 계란 윗면까지 고루 익는다고 한다. 계란 윗면을 익히려면 당연히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이렇게 만드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방법 중 ‘당연하게’ 들어 맞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너무 기본적이고 너무 쉬운 요리였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이 전부 틀렸던 거다. 심지어 저 레시피를 다 따르면 계란 프라이가 간단한 음식이라는 ‘대전제’ 자체가 틀린 게 된다.
이제 막 세상에 홀로 나온 스무살에 계란 프라이를 하며 가장 먼저 깨달은 인생의 진리였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내가 그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계란 프라이 덕분에 깨달았다.
대학교 시험도 고등학생 때처럼 그냥 무조건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아 공부하면 ‘당연히’ 점수가 잘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달달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사람을 대할 때도 내가 좋은 뜻과 선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상대도 ‘당연히’ 나를 그렇게 대해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을 이용해먹으려 드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은 ‘A’를 넣으면 ‘A-1’이 나오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는 걸 그때부터 차차 알게 됐다. 그럴 때마다 계란 프라이 만드는 법을 다시 배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건, 달걀 노른자를 깨뜨리지 않으려면 홱 뒤집어서 익힐 게 아니라 주변에 물을 부어주는 것처럼, 내 멘탈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급하게 홱 몰아칠 게 아니라 서서히, 부드럽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 마음이 급하다고 계란을 홱 뒤집었다간 노른자가 다 터져버리고 만다. 조상님들께서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셨던 이유를 계란 프라이를 만들며 체감했다.
사실 계란 프라이는 모양이 엉망이어도 맛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정성을 들여 예쁜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먹어보면 어떨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기존 레시피를 잠시 덮어두고 ‘예쁘게 만드는 법’을 따라보자. 마지막에 계란을 팍 뒤집는 대신 증기로 살살 익히는 건 잊지 말자.
<동글동글 예쁜 계란 프라이 레시피>
계란을 깨서 접시에 담는다. 접시를 살짝 기울여 계란에 있는 물기를 빼내주면 더 좋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만 바른다. 혹은 기름을 두르고 키친타월로 적당히 닦아낸다.
중불에 프라이팬을 달군다. 이때, 프라이팬의 아랫면에 골고루 열 기운이 닿도록 이리저리 움직여준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면 약불로 바꾸고, 접시에 깨둔 계란을 조심스럽게 팬 위로 올린다. 수분이 빠져 있어서 모양이 퍼지지 않고 탱글하다.
계란 노른자가 한쪽 방향으로 쏠려 있다면 스푼을 이용해 노른자를 원하는 위치로 끌어온 뒤, 살짝 익어서 고정될 때까지 잡아준다.
계란 흰자 가장자리가 익기 시작하면 계란 주변에 물 3 큰 술을 두르고 프라이팬 뚜껑을 덮는다.
계란 윗면까지 골고루 익으면 계란 프라이를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