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후폭풍이 꽤 심한 타입이다. 쿨하게 ‘어, 고마웠고 잘 지내’라며 끝낼 수 있는 타입이 아니라, 한번 헤어지면 몇 달이고 끙끙 앓는다. 한참 지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이별 후 미련이 길게 남는 쪽이다. 멋지고 시원한 이별은 해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정말 많이 좋아했던 뮤지션 남자친구가 있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의 SNS에 며칠에 한 번씩 들어가(다행히 뮤지션이라 SNS가 전체 공개였다.) 새 소식은 없나 기웃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 때는 그게 내 하루 중 제법 중요한 루틴이었다. 너무너무 찌질하지만 말이다.
친구들은 ‘그럴수록 네 마음만 힘들어진다’고 말렸지만, 나는 그걸 멈출 수 없었다. 나중엔 그냥 습관이나 중독처럼 구 남친의 SNS를 확인했던 것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 계정에 새 사진이 올라왔다. ‘혹시 아직 나를 잊지 못하고 우리 추억을 곱씹는 사진이라도 올렸을까’ 싶어서 기대했지만, 사진을 보자마자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새 여자친구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기 때문이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우리가 처음 데이트했을 때 먹었던 메뉴가 하필 까르보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다행히(?) 엉엉 울지는 않았다. 나 참, 까르보나라가 그렇게 슬픈 음식일 줄이야. 며칠간 밥도 제대로 안 넘어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창밖을 보며 멍때리고, 퇴근길에는 그 사람의 SNS를 또 열어보았다.
당시 마음속에서 끝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새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겠지?’
그때의 나는, 내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휘청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감정은 느낌조차 가물가물할 지경이 됐다. 지금의 나는 그 사이 이미 새로운 사람들을 좋아해 봤고, 그중 몇 명과는 꽤 괜찮은 데이트도 해 봤다.
연애와는 상관없이 이직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오래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이사도 두 번이나 했다. 글로 풀어놓을 순 없지만 생활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는 일도 있었다. 정말 별별 일을 다 겪었다.
이제 와서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조금 귀엽기까지 하다. 까르보나라 사진 하나에 며칠을 앓아눕다니, 지금은 상상도 안 된다. 그땐 파스타 사진 한 장으로 내 세상이 끝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있지 않은가. 심지어 과거를 떠올리며 웃음까지 짓게 됐다. 물론 구남친 때문에 웃는 게 아니라 너무 귀여웠던 과거의 나 때문에 웃는 거다.
철학자 세네카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일은 실제로는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더라. 맞는 말이다, 진짜. 그때 내 세상을 무너뜨린 건 구 남친의 사진이 아니라, ‘이 일은 내 인생을 끝장낼 사건’이라는, 괴상하게 부푼 나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묵묵히 흘렀고, 결국 그 시간이 내 잘못된 믿음을 깨뜨려 버렸다.
지금은 까르보나라를 먹을 때마다 자꾸 웃음이 난다. ‘이 음식 때문에 울던 때가 있었지’ 하면서. 하지만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괜히 ‘나 까르보나라 너무 좋아하잖아’라고 웃음에 대한 이유를 둘러대곤 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결국 지나간다. 꼭 나쁜 일만 잊혀지고 흐릿해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를 쥐고 흔드는 어떤 일에도 초연해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노자의 도덕경 제13장에 이런 말이 있다. 총욕약경, 귀대환약신(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총애를 받는 것도(寵), 욕을 먹는 것도(辱) 마치 놀란 것처럼(若驚) 여기라. 큰 근심(大患)을 자기 몸처럼(若身) 귀하게 여겨라(貴). 칭찬이나 모욕, 좋은 일이나 나쁜 일 모두에 흔들리지 말고, 근심과 환난을 중하게 여기되, 그것이 나 자신을 깨닫게 하는 계기임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즉, 바깥에서 미치는 영향에 너무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말라는 것.
이 생각을 붙잡으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오늘의 고민도 언젠가 별것 아닌 추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까르보나라 한 그릇 먹듯, 삶을 한 입 베어 물자. 조금 짜도, 면이 조금 덜 익었어도, 결국은 삼켜지고, 소화되어 지나갈 테니까.
<부드럽게 넘어가는 까르보나라 레시피>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소금을 짭짤하게 넣어준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스파게티면을 넣고 포장지에 적힌 시간보다 30초에서 1분 정도 덜 삶는다.
-면이 익는 동안, 삼겹살이나 베이컨을 잘게 잘라 팬에 올리고 올리브 오일 1큰술을 두른 뒤 중약불에서 천천히 볶는다. 돼지고기 겉이 바삭해지면 잽싸게 불을 끈다.
-볼에 계란 노른자만 2개를 넣고 로마노 치즈를 곱게 갈아 넣고, 후추를 넉넉하게 뿌리고 잘 뒤섞어준다. 너무 되직하다 싶으면 면수 1~2큰술을 넣어 미리 풀어둔다.
-약간 덜 삶은 면을 팬으로 옮겨 담고, 돼지고기 기름에 잘 버무린다. 불은 아주 약하게 켜거나 아예 꺼도 된다! 준비한 계란물을 휙 넣는다. 재빨리 저어주어 계란이 스크램블 되지 않고 면에 부드럽게 코팅되도록 만든다. 농도가 부족하면 면수를 조금씩 넣어 조절한다.
-까르보나라를 접시에 담고, 치즈와 후추를 취향껏 더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