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 우츠노미야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도시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건데, 우츠노미야는 교자로 유명한 곳이다. 역 앞에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건 전부 교자집 간판이었다. ‘교자의 도시’라는 별명이 괜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도 교자 캐릭터 인형, 교자 모양 가방, 교자 그림 스티커까지 온통 교자 천지다. 교자, 교자, 교자!
그리고 나 역시 관광객답게(?) 우츠노미야 친구와 함께 점심 약속을 교자집으로 잡았다. 그런데 메뉴판을 펼쳐든 순간, 내 눈길은 전혀 엉뚱한 곳에 꽂혔다. 교자가 아니라 맥주였다. 일본 밥집에서 맥주 파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니냐고? 하지만 보통 맥주가 아니라 ‘말차 맥주’라면?
일본 여행을 꽤 자주 다니고 있지만, 말차 맥주는 그 때 처음 봤다. 함께 있던 일본인 친구조차 ‘나도 이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이거 시키자!”
친구는 깜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맛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나는 와하하하 웃었다.
“맛없으면 맛없는 대로 먹는 거지 뭐. 우츠노미야까지 와서 너랑 나란히 앉아 맛없는 맥주 마신 추억이 생기잖아. 그게 더 재밌지 않아?”
사실 그때 나는 꽤 진심이었다. ‘언제 또 말차 맥주를 마셔볼 기회가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아서 평생 모르는 맛이 얼마나 많을까. 그걸 생각하니 호기심이 더 들끓었다.
잠시 후, 드디어 말차 맥주가 나왔다. 맥주가 아니라, 진짜 녹즙 같은 진한 초록색이었다. 위에는 크림색 맥주 거품이 올라가 있어서 묘하게 신선하면서도 기괴한 비주얼. 친구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이상한 마법주스 같다’며 질색했지만, 나는 주저 없이 잔을 들었다. 치얼스!
거침 없이 크게 한 모금, 두 모금 꿀꺽꿀꺽 삼켰다. 한 여름의 우츠노미야 더위에 지쳐있기도 했고, 생각보다 목넘김도 좋았다. 먼저 쌉싸래한 말차 향이 훅 끼치고, 그 뒤로 시원한 탄산이 올라왔다. 마지막에 남는 건 맥주의 제법 묵직한 바디감. 분명히 낯선 맛이었지만, 꽤 괜찮았다. 말차맥주 한 잔을 바닥까지 비웠다. 친구에게도 한 입만 맛보라고 권했지만 끝내 거절하더라. 에이, 이렇게 맛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이 계속 생각났다. 그래서 결국 검색했다.
한 일본의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말차 맥주 레시피를 공개해 놓은 것을 발견하고,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그리고 후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놀랍게도 그 포스팅 조회수가 엄청 잘 나왔다. 한국에서는 아직 말차 맥주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나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검색하다가 다 이쪽으로 들어온 것 같다. ‘이 맛을 내가 세상에 알렸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에서도 말차 맥주를 파는 곳이 조금씩 생겼다.
말차 맥주 광고나 메뉴판을 볼 때마다 ‘그때 안 마셨으면 이런 추억도 없었겠지’ 싶다.
남들은 “해외 취업에 도전해서 다행이다”, “짝사랑에 고백해서 후회 없다” 같은 말을 하지만, 나는 “말차 맥주를 마셔봐서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너무 하찮아서 머쓱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그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그리고 원래 작은 것부터 시작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런 식으로 많은 선택을 해왔다. ‘부딪혀봐야 아는 거지’ 하고. 그게 맛없을지도 모를 맥주 한 잔이든, 새로운 직장이든, 새로운 관계든, 결국 겪어봐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간혹 그런 나를 향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냐’고 핀잔을 주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그런 막연한 두려움으로 놓쳐온 즐거움이 엄청 많겠지. 그 자체로 벌일테니, 나까지 입술 삐죽일 필요 있나.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찜찜함이 사라진다. 안 해보면 평생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때 마셔볼 걸, 그때 해볼 걸’ 하고. 물론, 말차 맥주 한 잔이 내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도전 경험들이 쌓여서 ‘도전하는 습관’을 만들어준다. 나는 앞으로도 말차 맥주 같은 낯선 것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잔을 들 사람일 예정이다.
<쌉싸름하지만 착 감기는 말차 맥주 레시피>
-유리잔에 말차 파우더 1작은술을 잔에 넣는다.
-미지근한 물 3큰술을 넣고 덩어리 없이 잘 푼다. 작은 거품기로 휘휘 저으면 더 잘 풀리지만, 나는 보통 그냥 티스푼으로 해결한다.
-냉장고에서 미리 차갑게 식힌 맥주를 잔에 천천히 따른다. 거품이 너무 많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자.
-아주 살살, 두어 번만 저어 거품을 살리고 바로 쭈욱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