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 볶음, 아빠의 새 출발을 응원해!

by 서모니카

간호학원, 미용학원, 공무원학원까지. 거의 평생을 학원 사업에만 올인했던 아빠는 한때 그 지역에서 이름 날리던 원장이었다. 큰 건물 몇 층을 통째로 학원으로 쓰면서 동시에 여러 개 강의실이 꽉 찰 정도로 학생이 많았다. 잘될 때는 잘나갔지만, 온라인 강의가 대세가 되면서 점점 상황이 어려워졌다. 원래 사업의 규모가 크면 잘나갈 땐 씽씽 나가고, 망할 땐 와르르 무너지는 법이다.


학원에 인생을 걸다시피 한 아빠가 사업을 정리한다는 건 가족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늘 분주하게 강사들과 기획 회의를 하고, 학원비 정산을 하고, 직접 광고 전단까지 돌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걸 모두 그만두고 나니 한동안은 멍하니 앉아 계실 때가 많았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마치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처럼 보였다. 나보다 훨씬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인데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한참 고민하던 아빠가 선택한 건 의외로 식당이었다. 평생 사무실에서 펜만 잡던 사람이 갑자기 식당이라니. 가족 모두 놀라면서도 은근히 걱정했다. 집에서도 식칼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사람이 60대에 갑자기 식당을 차리겠다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아빠는 마음을 정한 뒤에는 철저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교육도 꼬박꼬박 다니고, 새벽에 장을 보고, 매일같이 레시피를 외우고 연습했다.


하지만 주방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칼질에 서툴러 매일 손을 베고, 뜨거운 불판에 손을 데여서 열 손가락 중 여덟 손가락에 항상 밴드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밴드가 물에 불어 떨어지면 전기 테이프로 손가락을 감고 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엄마는 방수밴드, 손가락 골무 같은 걸 사다 놓으면서 “전기 테이프 같은 거 쓰지 마라” 하고 잔소리를 했다. 속상하셨던 거다.


솔직히, 나는 기대보다 걱정이 훨씬 훨씬 컸다. 이제 와서 시작하는 식당일이라니,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터놓고 말하면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멋있지만 현실은 고되잖아. 나는 이제 겨우 30대인데도 뭔가 새로 배우려면 두렵고 힘들고 서툰데, 아빠는 두 배나 나이를 드셨으니 더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식당 오픈 두 달이 지난 후에야, 나는 드디어 아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메인 메뉴는 탕 종류였지만, 사이드로 나온 제육볶음이 나를 ‘까암짝’ 놀라게 했다. 고기는 야들야들 부드러운데 불맛은 제대로 나고, 양념은 맵지 않으면서 달큰하게 감칠맛이 돌았다.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서 물었다.


“아빠, 이거 진짜 아빠가 만든 거 맞아?”


아빠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흠칫했다. 정작 나야말로 60대보다 더 굳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아빠가 이렇게 잘 해낼 수 있는데도 괜히 안될 거라고 속으로 판단했던 거다. 밖에 나가서 남들한테 떠들 때는 ‘나는 뭐든 도전하고 보는 타입’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도, 사실은 편견 덩어리였던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로 아빠네 식당 리뷰에는 ‘제육볶음 맛집이다’라는 내용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집들이 할 때 일부러 아빠 가게에서 제육볶음을 포장해 와서 볶아 내놨는데, 친구들 반응이 뜨거웠다. “어디서 사왔어? 레시피 좀 알려줘!” 하면서 감탄했다. (물론 아빠는 아직까지 나한테도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으셨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아빠는 제육볶음을 해줄까, 하고 내게 묻는다. 너무 자주 먹어서 이제는 조금 물리지만, 그래도 “조금만”이라고 대꾸한다. 그 맛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 아빠의 도전 정신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아빠의 제육볶음은 단순히 한 끼 반찬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응원, 나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걸 주는 메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나도 제육볶음처럼 불맛 나게 멋지게 해보고 싶다.


<불맛 나는 제육볶음 레시피>

-돼지고기 앞다리살이나 목살 250g을 한입 크기로 썬다.
-큰 볼에 고추장 1큰술, 간장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설탕 1큰술, 맛술 1큰술, 참기름 1/2큰술, 후추 약간을 넣고 잘 섞어 양념장을 만든 뒤, 고기에 넣어 잘 버무려서 20분 정도 재운다.

-양파 반 개는 채 썰고, 대파 반 대는 어슷 썰어 준비한다. 당근도 약간 썰어 넣으면 보기에 좋다. 매운 좋아하면 청양고추 반 개도 어슷 썰어 준비한다.

-팬을 센 불로 달군 뒤 식용유를 두르고, 미리 썰어둔 양파와 대파, 당근을 먼저 넣어 향이 올라올 때까지 화르륵 볶는다.
-재워둔 고기를 넣고 센 불에서 빠르게 볶아준다. 고기가 절반 정도 익으면 팬을 살짝 들어 불에 직접 닿게 흔들어 불맛을 입힌다. 이때 화상을 입지 않게 조심한다.
-고기가 다 익으면 썰어둔 청양고추를 넣어 한 번 더 볶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 향을 더한 뒤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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