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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Aug 10. 2022

어쩌면 '본 투 비 관종'

싸이월드에서 처음 느낀 인플루언서의 맛

나의 첫 SNS는 싸이월드였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미겠다고 쏟아부은 도토리를 모두 모으면 다람쥐 마을 하나쯤은 먹여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싸이월드가 처음 인기를 끌었을 때는 거의 지역 기반 플랫폼이라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 친구들에게 직접 “너 싸이 아이디 뭐야?”하고 물어봐서 1촌 신청을 했었으니까. 그때는 미니홈피 하루 방문자가 50명만 되어도 주변에서 “우와, 너 인기 되게 많다!”하고 놀랄 정도였다. (여담으로, 친구들끼리 방문자 수를 늘려주기 위해 서로의 미니홈피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기도 했다.)  

   

이후, 싸이월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했다. 싸이월드 메인 페이지에 접속하면 그날 이슈가 됐던 게시물이나 댓글을 큐레이팅하여 보여줬다. 그 중에서도 제일 핫했던 콘텐츠는 ‘투멤녀’와 ‘투멤남’이었다. 그날 싸이월드에서 ‘제일 잘나가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일종의 인증 마크였다. 투멤은 싸이월드 측에 신청을 한 뒤, 내부 심사를 거쳐 뽑히는 방식이었다. 투멤이 되면 싸이월드 메인에 사진과 함께 짧은 자기소개가 걸렸다. 사진이 걸려있는 동안은 미니홈피 하루 방문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싸이월드의 부흥과 궤를 같이했던 게 바로 ‘얼짱 신드롬’이었다. 외모가 출중한 덕분에 큰 인기를 끈 사람들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싸이월드 투멤 출신이다. 투멤은 일종의 인싸, 인플루언서 등용문이었던 셈이다.     

당시 동네에서 좀 나간다는 언니, 오빠들 아이디나 겨우 알아내서 몰래몰래 구경을 다니던 나에게 '전국구'인 싸이월드 투멤들은 너무도 대단해 보였다. 메인에 걸린 사진을 타고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면, 사진첩에 가득 찬 사진들도 하나 같이 멋있고 힙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투멤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옷을 입는 스타일부터, 싸이월드에 포스팅을 하는 방법까지 보고 배웠다. 그렇게 그들의 열렬한 팔로워가 됐을 때쯤,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싸이월드에서 꽤 유명했던 일종의 '셀럽 크루'에서 새 멤버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떴다. 싸이월드 투멤 출신, 연예기획사 연습생, 얼짱 등 한 가락씩 하는 남녀들이 모여 '싸이월드 혼성 아이돌'처럼 활동했다. 이들은 싸이월드 클럽(지금의 네이버 카페와 비슷한 커뮤니티 기능)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셀카를 올리고, 팬들에게 글을 남기곤 했다.


싸이월드가 한창 잘나갈 때는 이런 크루들의 팬덤이 어마어마했다. 투멤 개인의 인기만 해도 장난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그룹으로 모여서 활동한다니 말 다 했지. 매일 방명록에 찾아오는 팬들은 셀 수도 없었고, 고가의 선물을 보내는 팬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셀럽 크루들은 비정기적으로 멤버가 교체되곤 했다. 갈등으로 나가기도 하고, 생업 문제로 크루를 탈퇴하기도 했다. 그러면 새 멤버를 모집해 그 자리를 채우는 것. 

    

나는 평소 눈여겨 보던 크루에서 새 멤버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읽고, 무작정 지원했다. 그동안 투멤들을 보고 배우며 꾸민 미니홈피와 셀카에 꽤 자신이 있었거든. 그리고 결과는? 합격. 비록 아직 연예기획사 연습생도, 얼짱 출신도 아니었지만 코디 센스가 좋고 셀카가 개성 있어서 좋다나. 그렇게 나는 당당하게 ‘비공인 싸이 셀럽’이 되었다. (사족이지만, 당시 나와 같은 크루에서 활동했던 멤버 한 명은 지금 수백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됐더라.)     


크루의 멤버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평생 받아보지 못했던 관심을 한번에 받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 미니홈피에 방문하고, 내가 올린 사진들을 구경하고 간다는 사실은 굉장히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를 누군가가 내 사진을 ‘퍼가요~♡’ 한다거나 내가 입은 옷의 구입처를 묻는 건 내 어깨에 뽕을 가득 올려주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내가 ‘본 투 비 관종’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은 듯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이돌이 되겠다’고 장래희망을 적어냈다가 담임 선생님께 된통 혼난 이후로는 인기라든가, 사람들에게 관심 받는 일에 대한 관심을 의식적으로 끊고 살았다. ‘나처럼 평범한 애가 무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싸이월드의 인플루언서가 되다니! 사람들의 관심이 생경하면서도 즐거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추억을 저장하기 위해, 나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었다. 어차피 나나 내 주변 사람들만 볼 사진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를 지켜보는 관중이 생긴 것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시뻘건 틴트를 입술에 바르고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셀카를 찍거나, 새로 산 옷의 브랜드 로고가 떡하니 보이게 ‘스트릿 샷’을 찍어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내 멱살을 잡고 싶지만, 그땐 그런 사진이 유행이었다. 한번은 누가 내 셀카를 가져가서 본인 사진인 척하는 현장을 적발하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콧대가 바짝 올랐다. 어머, 이제 내 사진을 도용하는 사람까지 생겼어. 나 유명해졌나 봐.     


그렇게 싸이월드 인기인으로서의 단맛에 한참 빠져있을 때, 싸이월드에 위기가 찾아왔다. 글로벌 SNS 서비스인 페이스북의 등장이었다. 나는 내 텃밭인 싸이월드를 지켜야 할지, 페이스북으로 넘어가야할지 갈팡질팡했다. 그때, 크루에 함께 소속돼 있던 선배(?)가 조언했다. ‘일단 그쪽에도 계정 하나 만들어. 상황 보고 그쪽이 더 흥하면 그리로 넘어가게.’ 역시, 플랫폼 셀럽 짬밥이 있구만. 얼마 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동했다. 싸이월드는 순식간에 빈집이 됐다. 그리고 나도 은근슬쩍 페이스북으로 둥지를 옮겼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버리고 페이스북으로 완전히 이주한 뒤에도 내 최초의 ‘팔로워’들은 나를 따라 페이스북까지 와주었다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들이 방송 채널을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시청하는 팬이라도 생긴 기분이었다. 내가 글이나 사진을 올렸다 하면 바로 찾아와 댓글을 달아주다니.


처음으로 맛본 ‘인플루언서 뽕’에 취해 살던 나에게 도화선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페이스북에 적어둔 메일 주소로 웬 연예기획사에서 오디션 제안을 보내온 것이다. 오 마이 갓. 


(다음 화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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