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모니카 Aug 15. 2022

자네, 연예인 해볼 생각 없나?

내 인생 최초의 오디션

며칠 뒤, 연예기획사에서 문자 메시지로 보내준 주소를 찾아갔다. 나 이러다 벼락스타 같은 거 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부푼 마음을 안고서 말이다. 그러나 주소를 따라 간 곳에는 내가 생각했던 으리으리한 빌딩 대신, 지은 지 꽤 되어 보이는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문자에 적힌 주소 상으로는 이 건물의 3층이 맞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던지라 계단을 이용해 3층까지 올라가고 나니, 이미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혹시나 화장이 무너지진 않았나 살폈다. 세상 물정보다 마스카라 바르는 법을 먼저 배운 ‘싸이 셀럽’은 흐르는 땀에도 여전히 짱짱하게 올라가 있던 속눈썹을 보고 만족스러워 했다.     


똑똑. 긴장되는 마음으로 철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이 바깥쪽으로 벌컥 열리며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왔다. 남성의 몸 뒤편으로 보이는 광경은, 다행히 제법 그럴싸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사무실이었다. “오디션 보러 왔는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안쪽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높은 삼각대 위에 설치된 카메라만 덜렁 있었다.     


“자, 여기 카메라 보고 자기소개 해보세요.”     


나는 땀도 식히기 전에 거대한 카메라를 마주보고 섰다. 오디션이라고 하면 응당 여러 사람을 대면하고 앉아서 질문에 답하고 노래나 춤 같은 특기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웬 카메라야. 당황한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남성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짧은 자기소개를 했다.     


“조금 더 발랄하고 귀엽게 해볼 수 있을까?”     


남성의 요구에 맞춰 나는 영혼을 끌어모아, 마치 음악 프로그램 MC와 같은 톤으로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었고, 남성의 기대에는 못 미쳤나 보다. 남성은 애매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그때에서야 나에게 착석을 권했다.     


규모는 작지만 꽤 잘나간다던 그 기획사에서는 유명 게임의 온라인 광고 모델을 찾고 있다고 했다. 게임사 측에서 얼굴이 많이 팔리지 않은, 신선한 모델을 희망하여 신인 위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모델로 선정되면, 게임 속 귀여운 여성 캐릭터 의상을 입고 광고를 찍게 된단다. 나는 그제서야 ‘더 발랄하고 귀엽게’를 요청했던 의도를 이해하게 됐다.     


남성은 나를 앞에 앉혀두고 내 외모를 나노 단위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목구비는 나쁘지 않지만,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서 그런지 얼굴이 너무 둥그렇다. 키가 작은 편인데, 이번 광고 모델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제약이 많을 수 있다. 웃지 않으면 너무 뾰로통해 보인다.     


이쪽 업계에서는 외모가 스펙이고 상품이니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겠다만, 아직 어렸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면전에서 욕을 먹다니. 남성은 나에게 몇 마디쯤 더 조언(?)해주더니, 결과는 일주일 안으로 통보해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어정쩡하게 남자를 따라 일어서 기획사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체 그 게임과 캐릭터가 뭔지 검색해봤다.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외쳤다. 오 마이 갓.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옷을 입다 말았다. 혹시 일러스트레이터가 옷을 그리다 말고 도망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만약 광고 모델로 뽑히게 되면 내가 분장하게 될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나 이거 뽑혀도 못하겠는데. 저런 거 입고 광고 모델 한다고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     


나는 그날 밤까지 끙끙 앓으며 고민하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연예기획사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오디션 불합격 처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고민에 고민을 더해 보낸 문자에는 당연히 답이 없었다. 어쩌면 내 문자를 읽고 콧방귀를 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너 뽑을 생각 없었다며. 아무튼 그렇게 나의 인생 첫 오디션은 꿈처럼 날아갔다. 만약 그때 그 오디션에 합격해서 그 게임의 모델이 되었다면 내가 지금쯤 엄청난 셀럽이 되었을까? 장담컨대, 지금이랑 별 다를 바 없었을 거다. 여우의 신포도라고? 그럴지도.


하지만 '본투비 관종'일지도 모를 나는, 역설적이게도 오디션에 똑하고 떨어진 뒤에 '셀럽' 그러니까 요즘 말로는 '인플루언서'의 세계에 더 관심이 생겼다.


낀플루언서 TIP. 오디션을 보거나 제안을 받으러 갈 때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잘 세우고 가자.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오케이' 했다가는 거대한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다음 화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본 투 비 관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