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갑자기 반응이 냉랭해요?
나는 본격적으로 페이스북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국내 서비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게시물의 전파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친구를 맺은 사람들에게만 내가 올린 게시물이 노출되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댓글’이었다. 친구들의 피드에서 댓글을 주고받다 보면,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니까.
그리고 동시에 내 피드에 스토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내 프로필을 방문한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페이스북은 당시 싸이월드나 블로그와는 달리 내가 게시물을 별도로 카테고리화하거나 노출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게시물을 올린 시간 역순으로 피드를 쭉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었다. 그러므로 페이스북에는 시간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쭉 볼 수 있을 만한 연재물 성격의 게시물을 올리면 좋겠다고 판단한 거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획한 코너가 있었다. 그 중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건 ‘모니카의 친절한 음악추천’. 그래도 어디 가서 ‘음악 좀 듣는다’고 어깨 뽕 좀 채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 계절이나 상황에 잘 맞는 노래를 골라 추천 사유를 함께 적어 올렸다. 이를 테면, 이런 식.
모니카의 친절한 음악 추천 #5
9월의 마지막 날에는 무조건 이 노래를 들어야 해요.
Green day-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노래의 ‘닉값’은 둘째치고, 멜로디나 스트링 사운드가
제법 쌀쌀하고 바삭한 가을 날씨하고도 너무 잘 어울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오후 3시쯤 한가한 공원에서 듣는 걸 추천합니다.
왜냐고요? 들어보면 압니다!
얼마 안 가, 음악 추천 게시물을 보기 위해 나에게 친구 요청을 거는 사람들도 생겼다. 나중에는 이 음악 추천 연재물을 따로 모아서 올려달라는 요청까지 있었다. 페이스북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난 게시물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면서 말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슬슬 오자, 나는 더 신나서 음악을 추천했다. 음악 추천 사유에도 스토리텔링을 더했다. 그 음악에 관련된 내 경험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업그레이드 버젼 콘텐츠는 대충 이런 스타일이다.
모니카의 친절한 음악 추천 #6
오늘은 꼭 방청소를 끝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상태.
외출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30분 안에 청소를 마치고 씻고, 옷까지 갈아입어야 한다.
나는 긴장되어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음악 리스트를 서치한다.
이럴 땐 무조건 bpm이 높은 곡을 골라야 한다.
사람은 박자가 빠른 음악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지거든.
다급한 마음에 다급한 몸짓이 깃든다.
1초에 걸레질 왕복 두 번 해주지.
그래서 내가 고른 곡이 뭐냐고?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왕벌의 비행.
당신의 청소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그러자 음악추천 코너의 팬을 자칭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내 음악추천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캡쳐를 해서 모아둔다는 사람도 있었다. 와우, 다행이다. 페이스북에 안착 성공!
물론, 실패한 기획도 있다. 맥락 없이 던진 셀카 사진들이 바로 그것. 아직 ‘싸이 셀럽’의 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의 판단 미스였다. 페이스북 세상의 사람들은 내 예상보다 더 나의 셀카에는 관심이 없었다. 시들시들한 반응을 몇 번 본 뒤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단순히 예쁘고 멋진 걸 넘어서, 본인이 공감할 수 있거나, 참여할 수 있는 게시물을 더 좋아했다. 정확하게 SNS의 성격을 가진 거다.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페이스북에서 셀카로 공감을 많이 이끌어내려면, 배경이 중요했다. 내 얼굴만 대문짝만하게 나온 셀카가 아니라, 근사한 배경이 같이 나온 사진이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진에는 꼭 이런 댓글이 몇 개씩 달렸다. ‘사진 찍은 카페 어디예요? 가보고 싶어요!’ 그렇다. ‘본격 SNS 유저’들은 내 얼굴이 아니라 ‘자신도 가볼 수 있는’ 배경 속 카페에 더 관심을 가졌다.
어쩐지 페이스북의 도입과 함께 인플루언서의 길이 더 멀고 험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