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페이스북 인플루언서에 대한 내 열정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현생에 치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과제를 하거나, 스펙을 쌓거나, 취업용 이력서를 쓰면서 페이스북의 부흥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페이스북에 잘 적응한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분야에서 점점 영향력을 쌓기 시작했다. 늘 비키니 입은 사진만 일관성 있게 올리며 어마어마한 남성 팬을 모은 모델,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웃긴 썰을 모아 올려 웬만한 연예인보다 팔로워가 많아진 유머 페이지, 세상만사에 모두 비평글을 올리는 비평가까지.
나는 뷔페 입장권을 얻지 못해, 남들이 맛있는 음식을 접시에 양껏 담는 걸 구경만 하는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페이스북 활동을 완전히 끊은 건 또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미련이 남아서, 종종 음악 추천글을 올리거나, 남자친구와 방문했던 예쁜 카페나 맛집 사진을 올렸다. 알바로 하고 있는 모델 활동 중에 괜찮은 사진이 나오면 그것도 올렸다. 그러면 애매한 개수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곤 했다. 치열한 전선에서 멀찍이 물러난 패잔병이 된 기분이었다. 크으, 분하다.
그 상태로 취업을 했다. 비록 SNS 세상에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지만, 어쨌든 커다란 사옥에서는 내 자리 하나쯤 정해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언론사에 입사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하고, 써내는 일을 하다 보니 그나마 꺼진 불씨처럼 남아있던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한 창작욕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아, 하루종일 콘텐츠 찍어내다 퇴근했는데 그 짓을 또 해야 한다고요? 안 해, 안 해.
그렇게 개점휴업 상태로 페이스북을 방치하고 있을 때, 페이스북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싸이월드가 겪었던 바로 그것처럼! 인스타그램이 확 떠오르며 페이스북의 자리를 위협했다. 한번 흘러간 게시물은 다시 볼 수 없던 페이스북과 달리, 인스타그램은 지난 게시물까지 한번에 모아서 보여주었다. 게다가, 텍스트 위주의 페이스북과는 정반대로 이미지 중심으로 UX가 구성돼 있었다. 오히려 글을 많이 쓰기에 불편할 정도였다. ‘거, 글은 됐고, 기깔나는 사진이나 올리고 가슈.’ 긴 글 읽기나 토론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유레카’지.
게다가 ‘해시태그’ 기능을 도입해서 게시물을 검색하기도 쉽게 했다. 이제 나와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도 해시태그 검색을 통해 내 게시물을 볼 수 있게 된 거다. 아, 관종들은 이거 못 참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 기회가 늘어난다고? 얘, 대박이다, 진짜.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이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재빨리 대응했다. 바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생성했다. 물론, 본거지는 여전히 페이스북에 둔 채로 일단 인스타그램에 자리 하나 마련해둔 것이다. 덕분에 ‘iam.momo’라는 나름 희귀한 계정을 선점할 수 있었다. (미국, 일본에서 이 계정을 유독 탐내더라. 본인에게 아이디를 양도해줄 수 없겠느냐는 전 세계 ‘Ms.모모’ 씨들의 메시지가 요즘도 심심찮게 날라오곤 한다.)
여차하면 튈 곳을 마련해두니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물론, 페이스북 인플루언서들이야 본인들 팔로워를 고대로 데리고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겠지만, 어쨌든 다같이 새로 시작하는 건 맞으니까. 다시 싸워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언가를 주절주절 써대야 반응이 좋았던 페이스북과는 달리 간단하게 사진만 툭 올리면 된다니, 부담감은 더 줄었다. ‘어라, 이거 약간 싸이월드 말기 감성이랑 비슷한데?’ 싶기도 했고.
이미 마음은 거의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간 상태가 되니, 페이스북 활동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이전에는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런 내용의 콘텐츠는 싫어하겠지?’하는 생각에 자가검열을 꽤 많이 했다. 대중이 두루두루 좋아할 만한 유쾌하고 부드러운 내용의 콘텐츠만 올렸다. 그러나 이제 내가 진짜 다루고 싶던 주제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어쩌면 다소 날카롭고 예민할 수도 있는 주제들도 거침없이 다뤘다.
예를 들자면. <데이트 비용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가?>, <온라인 의류 쇼핑몰 사진이 사기인 이유>, <주말에 연락하는 상사는 잘못한 걸까?>와 같은 주제들 말이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하니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다. ‘순한 맛이라 좋아했는데, 갑자기 매운 맛이네요.’라며 팔로우를 끊거나, 본인과 다른 의견을 낸다고 페이스북 메시지로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보내오는 사람도 생겼다.
하지만 그것을 압도하는 긍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남들 눈치 보느라 미처 꺼내지 못한 말인데 대신 해주어서 속이 시원하다거나, 내 의견에 공감한다는 댓글부터 글을 찰지고 맛깔나게 잘 쓴다는 칭찬까지. 페이스북 게시물 공유 기능을 타고 지인의 지인, 그 지인의 지인까지 내 계정을 찾아와 팔로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휘리릭 써서 올린 글 하나가 대박이 터졌다. <정치 성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옳은가?>에 대한 글이었다. ‘너는 정치 성향이 이러하니까 저러저러한 사람이다’하고 멋대로 판단하고 선을 넘는 사람들을 겪은 뒤, 넌덜머리를 내며 쓴 글이었다. 실은 굉장히 개인적인 글이었는데, 누군가 그걸 그대로 캡쳐해서 온라인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올리며 핫이슈가 됐다. 그 게시물은 조회수가 하루만에 몇 만 단위로 오르고, 내 페이스북 계정에도 팔로워가 천 단위로 불어났다. 엄마, 나 뭐 잘못 했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려와?
대중의 눈치를 보며 기획하고 고민하여 올린 게시물들은 흐지부지 잊혔는데, 별생각 없이 써 내려간 투정글에서 잭팟이 터지다니. 그야말로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감성적인 에세이스트’나 ‘유쾌한 음악추천가’, ‘신비주의 모델’ 컨셉은 다 안 먹히더니, 될 대로 되라며 던진 ‘아무말 망나니’ 컨셉이 먹힐 줄이야!
이 경험으로 또 하나 배웠다. 백날 머리 싸매고 꾸며봐야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아이디어와 전개력은 못 따라간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거라더니, 정말인가 싶었다. 그 뒤로도 몇몇 개의 글이 꽤 잘 됐다. 좋아요 수가 천 단위로 찍히며 내가 인플루언서의 길에 가까워지는 데에 톡톡히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페이스북에서 빨 수 있는 꿀도 다 빨았겠다, 이제 슬슬 다음 플랫폼으로 주소지를 옮길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