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쯤부터 슬슬 나에게도 ‘협찬’이라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야, 협찬은 SNS 유명인들만 받는 거 아니었어? 처음에 제안이 들어온 건 화장품 쪽 제품들이었다. 세안제나 메이크업용 제품들. 기초 화장품 제품이야 그저 제품을 들고 인증샷만 올리면 된다고 하니, 비교적 수월했다. 문제는 메이크업 제품.
콘텐츠 촬영용 메이크업이라고 해봐야 ‘3분 컷’으로 화면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해왔던 나에게 ‘메이크업 튜토리얼’ 사진/영상은 큰 벽이었다. (여담으로, 유튜브 촬영용 메이크업을 실제로 보면 아주 엉망이다. 카메라에 잘 잡히려면 실제보다 2배는 진하게 팍팍 칠하기 때문.) 평소에도 메이크업은 가능하면 안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야말로 대혼란 상태였다.
‘메이크업 제품은 협찬 안 받는다고 할까?’
‘아니야, 그러다가 아예 PPL 안 받는 사람이라고 소문 나면 어떻게 해?’
‘뷰티 유튜버 될 것도 아닌데 좀 못 하면 어때.’
별별 생각을 거친 뒤에 메이크업 PPL을 수락했다. 나에게 제공된 건 유명 메이크업 브랜드의 신상품 전체 라인과 소정의 콘텐츠 제작료. 사실 경제적 보상보다는 ‘이런 브랜드에서 나에게 PPL 요청을 해왔다’는 사실이 더 감동 포인트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일들이 이제 내게도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런데 아뿔싸, 하필이면 협찬 제품이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디션이었다. 아이섀도는 물론이고 립글로즈에까지 펄이 어마무시하게 들어간. 펄은 전문가도 잘못 쓰면 망한다는 악마의 질감인데. 결국, 나는 ‘컨닝’을 시도했다. 나보다 먼저 협찬 제품 리뷰 영상을 올린 대형 뷰티 유튜버들을 찾아가 그들의 메이크업 방법을 배웠다. 그 다음은? 열심히 따라했지, 뭐. 내 얼굴을 도화지 삼아 테스트 메이크업을 몇 번이나 한 뒤에야 그나마 영상으로 찍을 정도가 됐다.
다행히 최종적으로 메이크업 제품 PPL 영상은 꽤 괜찮게 뽑혔다. 브랜드 담당자 측도 만족스러워하며 2차 배포를 해도 되는지까지 물어봤다. 으악, 살았다.
그런데 이게 한번 잘하면 PPL 업계에서도 소문이 나는지, 그 뒤로도 다양한 뷰티 브랜드에서 협찬 및 PPL 제의가 들어왔다. 심지어는 연예인들만 초대된다는 런칭 행사에도 초청 받았다. 아이돌로 활동할 때도 못 가본 행사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름만 들어도 ‘헐, 거기?!’ 할 정도로 유명한 명품 뷰티 브랜드 행사에서 포토월에도 서 보는 진귀한 경험들을 했다.
그러나 클리셰처럼 문제는 항상 정점에서 터진다. PPL이나 초청 행사에 끌려다니다 보니, 정작 내 콘텐츠는 하나도 만들 시간이 없었다. 팔로워들은 점점 협찬 제품이나 광고로 도배되는 내 피드를 보고 팔로우를 취소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고치지 않으면, 악순환은 계속 될 거라 판단했다. PPL에 피로해진 사람들이 팔로우를 끊으면, 팔로워가 줄어든다. 팔로워가 줄어들면 브랜드에서도 더 이상 광고 요청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수익 유지를 위해 더 자잘한 PPL을 더 많이 받으려 할 거다. 그럼 또 팔로워는 줄어들고……. 그래서 나는 과감한 선택을 내리기로 했다.
낀플루언서 TIP.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틱톡 등의 채널에서 PPL을 진행할 경우에는 본인의 콘텐츠 성격을 잘 고려하세요. 힙한 착장으로 인기를 끌던 패션 인플루언서가 어느 날 갑자기 쭈꾸미 볶음 제품을 홍보하면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상충되겠죠? 물론, 쭈꾸미 볶음을 ‘레드 패션 룩’이나 ‘원마일룩’과 연관지어 콘텐츠를 만든다면 새로운 시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