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이 되기 전, 폴 칼라니티가 남긴 질문
숨결이 바람이 되기 전에, 나는 무엇을 살았는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몇 페이지는 읽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에 가까웠다. 눈물이 차오르면 잠깐 멈추고, 다시 읽고, 또 멈추고. 그렇게 폴 칼라니티의 마지막 숨결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책이 끝나 있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원제는 'When Breath Becomes Air'다. 숨결이 공기가 되는 순간, 그것은 곧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호흡이 멈추면 그 숨결은 허공으로 흩어져 바람이 된다. 저자는 제목 하나로 이미 자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첫 페이지를 넘겼다. 우리는 모두, 결말을 알면서도 삶을 산다.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다. 10년을 바쳐 뇌를 다루는 의사가 되었고, 완성을 눈앞에 둔 서른여섯의 어느 날, 4기 폐암 진단을 받는다. 죽음을 직업으로 마주하던 사람이 죽음의 당사자가 되는 순간. 의사의 눈과 환자의 몸 사이에서, 그는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것이 그에게 마지막 수술대였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 멈추게 되는 구절이 있었다. 그는 암 선고 후에 아내에게 아이를 갖자고 했다. 아내가 물었다. 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한다면 죽음이 더 고통스럽지 않겠냐고. 그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정말 좋은 일 아닐까?"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더 깊이 살았다는 증거라는 듯. 그는 딸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고, 얼마 후 눈을 감았다.
나는 오래 그 대화 앞에 머물렀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피하는 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을 미루고, 잃지 않으려고 갖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폴은 달랐다. 그는 더 아플 것을 알면서도 더 깊이 들어갔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였을 테니.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달력의 숫자, 창밖의 햇빛, 아내의 손, 갓 태어난 아이의 체온.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갑자기 선명해지는 순간. 폴은 그 순간들을 문장으로 붙들었다. 자신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살고 있는가.
매일 아침을 그냥 시작하고, 매일 밤을 그냥 끝낸다. 오늘 먹은 것이 무엇인지, 오늘 나눈 말 중에 진심이 얼마나 담겼는지, 크게 돌아보지 않는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 당장은 아닐 거라는 무의식적인 믿음 위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하루를 산다. 폴이 그랬던 것처럼. 진단 전까지는.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죽어가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삶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을 바꾼다고. 알기 전과 후,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있는데,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온도가 달라진다. 그 온도 차이가 사는 방식을 바꾼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삶의 온도를 가늠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충분히 뜨겁게 살고 있는가. 내가 매일 내려놓으라고 되새기는 것들, 욕심과 집착과 두려움, 그것들을 내려놓은 자리에 나는 무엇을 채우고 있는가. 비워낸 공간에 정말 소중한 것들이 들어와 있는가.
폴 칼라니티는 서른일곱에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까지 쓴 문장들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끝에 다다라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았다.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남긴 무게다.
숨결이 바람이 되기 전에, 나는 오늘을 제대로 살았는가.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나는 다시 오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