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p. 249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딸이 마주하게 된 아버지의 사람들을 유쾌하고 정겹게 그려낸 소설이다. 격랑의 한국 근대사를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아 낸 생전의 아버지는 딸의 눈에는 그저 시대착오적인 우스운 혁명가이자 물정 모르는 촌뜨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례식장을 찾은 수많은 조문객들의 회상 속에 비춰진 아버지는 이념의 틀에 갇힌 투사가 아니라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다정하고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고, 시대의 모순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자신에게 사기를 친 이에게조차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며 이해하려 했던 아버지는, 마을의 소외된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람대접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 주었던 아버지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빨치산이라는 붉은 낙인 속에서의 감시와 제약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빨치산 아버지로 인해 삶의 여정이 순탄치 않았던 그의 딸은 조문객들의 추억에 비친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마주하며 미움과 원망으로부터 해방된다.
죽음의 역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려 허무함만 남을 것 같은 다소 두려운 단어가,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와 유쾌한 시선에 힘입어 해방의 모티브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본인과 딸에게는 물론 아버지의 삶 한 자락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했던 조문객들에게도 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 오해, 원망, 미움, 분노와 같은 어두운 감정은 더 이상 상대의 실체를 마주할 수 없다는 상실 앞에서 연민과 사랑으로 탈바꿈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젊은 날의 선택에 따른 삶의 궤적을 이분법적인 이념에 가두지 않고 사람의 도리라는 보편적 틀에서 세대와 이념을 뛰어넘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어쩌면 죽음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다른 관점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을 떠올릴 때 더욱 명료해지는 삶의 우선순위, 타인의 죽음을 맞이할 때 되짚어보게 되는 그와의 역사와 그를 매개로 한 새로운 인연과의 조우, 타국의 이름모를 이의 죽음을 뉴스로 접할 때 느껴지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애도. 죽음이라는 화두는 오늘과 여기에 매몰된 나의 시선을 먼 미래와 과거, 가깝고 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 보이지 않았던 것을 상상하고 느끼게 만든다. 나를 타인과 연결짓고 삶을 관조하게 한다. 그 앞에서 부글부글 갖가지 감정으로 들끓고 있던 나의 마음은 찬물 한 컵을 끼얹은 냄비 속 물 마냥 고요를 되찾는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소설 속 화자의 아버지가 늘상 입에 달고 사셨다는 십팔번 말씀에서 삶의 지혜를 느낀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건넬 따뜻한 위로, 타인으로 내 마음이 다친 날 되뇌일 이 한마디는 우리를 힘겨운 감정에서 해방시킨다. 사램이니까 욕심도 있는 것이고, 사램이니까 실수도 하는 것이고, 사램이니까 급하면 뻥도 치고 것이재. 그걸 사람이 이해 못 해 주면 워쩌냐. 그게 사람냄새고 이해해 불면 안쓰럽지 않은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도 없어야. 되는 것 하나 없는 세상을 버텨 온 주인공의 아버지는 그의 평생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인생을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인간관계에 그렇게 힘들어할 필요 없다고.
죽음이라는 유한함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오늘,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인연을 맺은 타인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내 삶의 한 부분을 함께해 주어 행복했노라고, 나로 인해 너의 삶 역시 조금이나마 화사했기를 바란다고.
#라라크루 14기 6-2
*** 이 글은 미주 동창회보 3월호에 수록된 기고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