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시키는 힘
때로는 익숙한 이야기를 벗삼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질지 알 수 없는 낯선 영화나 드라마 대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다시 소비하는 것은 안전한 기분 전환이다. 더불어 처음 봤을 때 무심코 지나친 세세한 부분을 찾아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어느 한가한 주말 오후,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일정을 대강 마무리하고 다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그랬다. 처음 시청했을 당시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던 때라 내가 좋아하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부분만 빨리감기로 스킵해 가면서 스토리만 따라갔었는데, 이번에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주의깊게 보며 인물의 감정선을 느껴봤다. 극 중 박동훈 부장을 비롯한 삼형제가 나와 같은 40대여서인지 여러 부분에서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주친 한 장면. 남자 주인공이 술자리에서 팀원들에게 말한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을 알기가 두렵다." 남자 주인공의 휴대폰을 도청 중이던 여주인공은 자신을 두고 한 그 말에 분노했다. 순간 궁금해졌다. 비슷한 듯 다른 결을 가진 연민과 공감은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왜 연민은 분노를 자아내는 걸까.
Gemini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이 연민(pity)과 공감(empathy)을 대할 때 반응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이유가 그 속에 담긴 권력관계와 연결감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연민은 "참 안됐다 (하지만 내 일은 아니지)"라는 심리가 전제된, 나는 위에 있고 너는 아래에 있다는 수직적 관계를 나타내고, 이에 대한 분노는 나를 함부로 약자로 정의하지 말라는 자아의 방어기제라고 한다. 반면 공감은 수평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공유로, 같은 눈높이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곁에 있어 주겠다는 신호로 정서적 유대감과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처음 시청했을 때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그 미묘한 차이가 비로소 보였다. 사채업자의 폭력에 속수무책 당하는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던 한 소녀는 연민으로 다가와 끝내 유대감을 주지 못하고 떠나가는 수많은 인연을 거치며 세상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다. 하지만 같은 사실에 대해 공감을 보인 극중 남자 주인공으로 인해 여주인공은 세상으로부터의 자발적 고립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에 이른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소녀의 행위(살인)를 나와 전혀 관련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기저에 자리한 보편적 가치(가족에 대한 사랑)와 숙명적 비애(사회적 고립과 근원적 외로움)를 알아봐 준 남자 주인공 덕분이다. "나라도 내 식구 패는 놈은 죽여." 핸드폰 도청 앱을 통해 여주인공의 귀에 전해진 남자 주인공의 그 한마디는 연민에서 시작되었을 지언정 공감으로 넘어선 연대로 이어져 두 주인공의 삶을 위로했다.
보이지 않고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고 연결해 내는 힘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앞의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거나 내 경험 속에 갇혀 사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을 인지하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면 스스로는 물론 타인에게도 연민이 아닌 공감을 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타인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하지도, 나의 감정에 매몰되지도 않을 것 같다. 삶이 편안해지고 인생이 더 행복해질 것 같다.
물컵에 담긴 깨끗하게 정수된 물, 설거지통에 담긴 흐려진 물,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 바닷물과 화장실 변기물. 서로 다른 환경과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물이 모두 같은 분자구조를 가지고 지구를 순환하는 과정에 순간순간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나와 조우하는 모든 인연과 사건 사고 역시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경험으로 알지 못하는 오묘한 순환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 보면 삶의 모든 순간이, 스쳐 지나가는 모든 타인이 아련하게 소중해진다. 마치 드라마에서 연인이 된 두 사람의 과거를 조명할 때, 미처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던 시기에 서로를 무표정하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볼 때처럼.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고 시간과 공간의 구분을 넘나드는 연결짓기를 시도해 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성실한 노력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겸허한 자세가 결국 나를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