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보 아사나

by 백안

*아사나 : 하나의 자세 안에 기듯 몸의 움직임과 마음의 태도 등을 말한다.



”와퍼 주니어 세트 하나 먹으면 배불러. 와퍼세트는 다 못 먹어.. “


20대 시절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녀는, 162cm에 50kg 정도의 체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주니어세트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또래친구들로부터 자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또래 대학생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햄버거를 1+1 행사하면 그렇게나 기뻐했다. 나는 주니어 2개 먹으면 이제야 배가 차는 느낌인데, 괜히 민망해서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었다.


’ 먹는 일‘ 에 행복함을 느끼는 건 어쩐지 미덕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남녀노소 모두가 다이어트에 열광하고 있는 시대에, ‘패스트푸드, 튀긴 음식, 과식’ 같은 단어는 금기어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바람직한 식단은 한국인 특유의 건강한 한식 밥상에, 밥은 잡곡밥을 먹는 것. 국물은 남기고 식사는 짜거나 달지 않게, 고기나 튀김보다는 야채나 단백질 중심의 식단으로.

나의 냉동실에도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6개월 동안 나는 라면은커녕 가스레인지를 한 번도 켜본 적이 없었다. 냉동실엔 닭가슴살 현미주먹밥 or 닭가슴살. 냉장고엔 감동란과 사과. 가끔 먹는 별식인 ‘라면’은 늘 컵누들 마라탕 맛이었다. 심지어 회사에 도시락도 이렇게 싸갔다. 그나마 추가한 음식이 있다면 식물성 마요네즈를 간장과 섞어 감동란과 밥에 비벼먹는 게 최고의 한 끼 식사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먹는 즐거움은커녕, 먹어야 하니까 먹었던 인간사료와도 같은 저 식단을 6개월이나 반복했다. 철저한 식단으로 살은 10킬로 가까이 감량했지만, 덕분에 ‘미각의 행복세포’를 까마득히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뿐만이랴, 다이어트는 식단뿐만 아니라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일 아침 공복 달리기 30분은 그냥 세수하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보통 5킬로를 뛰었고, 전날저녁 혹시 술이라도 한잔 했다면 7킬로 이상은 반드시 뛰어야 했다. ‘반성하기-먹기-반성하기’ 이런 연속의 굴레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나름 식단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친구와 잠깐 동거를 했다. 그 친구는 완전 채식을 비 향하는 비건이다. 평소 마음속으로 채식을 실천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드디어 실현시키기 위해, 나도 그녀를 따라서 조금씩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네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함께 맛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며 먹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는 내게 채식을 전파한 것은 물론, 내가 비건에 대해 갖고 있던 ‘소식좌’라는 편견까지 전부 부숴버렸다.

함께 살다 보니 끼니를 같이 챙기게 되면서, 우리는 대화의 주제가 먹는 것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오늘 저녁에는 뭐 먹을까?"

"내일은 뭐 먹을까? 다음 주에는 뭐 먹을까?"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이 낯설었다. 먹는 건 단순히 냉장고에 채워져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이렇게까지나 먹는 것 만으로 대화를 빼곡히 채웠던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친해지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그녀와의 동거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는 그녀의 먹보력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늘 먹던 음식이 떨어졌나?'를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에서, 이제는 무슨 음식을 먹을까?로 사고가 바뀐 것이다. 점점 나의 먹보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먹보력이 높아지면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회사 점심시간이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늘 구내식당만 이용하던 나는 이제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 꼼꼼히 고민한다.

오늘 나오는 메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저 없이 식당으로 향한다. 늘 사 먹진 않지만, 이젠 조금 더 나를 위해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 배가 터지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었다. 그냥 그 자체로 온몸의 장기 세포 하나하나까지 쾌감이 번져가는 것 같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또 후식으로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졌었다. 아쉽지만 배가 너무 부를 때에는 후식을 먹는다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에,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다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어야지..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아쉬움이 남았고 배가 부른데도 아쉬움이 마음을 지배하는 시간이 꽤나 길었다. 배가 너무너무 부른데도 불구하고 자꾸 올라오는 아쉬운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먹보는 배가 너무 부를 때에도 먹고 싶으면 먹는 거야?”

“당연하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먹어야지!!!"


그녀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단지 먹고 싶으면? 먹는다. 그뿐이다! 이것은 너무 단순한 답이었다. 먹기에는 도전과 결과만으로 충분히 희열에 차오를 수 있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 쾌락인가!


요가의 수련 동작에는 도전하기-버티기-놓기 3단계가 있다. 요가에서는 흔히 ‘놓기’의 단계에서 고통이 사라지고 현존하는 순간에 머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을 ’ 깊은 아사나에 머무른다 ‘라고도 표현한다.

먹는 메뉴조차도 칼로리를 따지고 신경 쓴다면 짊어지지 않아도 될 고통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짐을 지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했다. 먹보 아사나는 시작은 먹기, 결과는 만족만 있을 뿐, 그 사이에는 어떠한 고통도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먹기를 예찬한다. 한없이 만족을 주는.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



<친구가 말해준 먹보의 조건 3가지>

1. 칼로리를 신경 쓰지 않고 먹는다.

2. 탄/단/지 밸런스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3. 운동은 다음 식사를 위해 위장을 소화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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