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호주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스물셋이었다.
겨울이 시작하는 12월, 낯선 공항의 공기엔 낯익은 기대와 낯선 불안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한 장, 그게 나의 전부였다.
호주라는 나라는 그때의 나에겐 모험이자 도피였다.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기보단,
지금의 삶을 더는 견딜 수 없어서
한 발자국이라도 떨어지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현실은 여행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구한 카페 아르바이트는 새벽 5시에 시작했다.
영어는 입에 붙지 않았고, 동료들은 내 이름조차 잘 발음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하고 또 일하다 보니, 어느덧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익숙해졌고,
일도 늘었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생겼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고,
또 한 명이 태어났다.
그 사이 나는 더 이상 워홀러가 아니었다.
남의 나라에 잠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할 사람,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매일이 ‘불안’이었다.
비자의 만료일은 매년 다가왔고,
신분은 늘 조건부였다.
공공기관에서 전화가 오기라도 하면 괜히 숨죽여야 했고,
떳떳하게 만들지 못하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첫째 아이는 자라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영주권을 준비하던 몇 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증명해야 했다.
우리가 ‘진짜’라는 걸,
이 가족이, 이 삶이, 누군가가 판단하는 ‘조건’을 충족하는지 말이다.
수없이 출력한 서류들,
이민국에 보낸 답변,
인터뷰,
그리고 그 모든 기다림 속에서
나는 ‘존재’보다는 ‘증명’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Your permanent residency has been granted.
Congratulations.
단 두 줄.
읽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조용히 울었다.
기쁨이라기보다는…
그저 끝났다는 안도.
숨죽이며 살았던 시간들이
잠시 멈췄다는 해방감.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너무 오래 참아왔던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영주권 받으면 진짜 시작이야.”
맞는 말이다.
그날 이후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라고,
나는 여전히 일과 육아를 오가며,
또 다른 시작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가 아닌,
이 나라에 ‘나의 이름’으로 서게 되었다는 감각.
그건 단지 비자 하나가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을 돌려받는 일이었다.
영주권을 받고 나서,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견디고, 버티고,
그리고 살아낸 나 자신을.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나, 여기 있어요.”
“이제, 조금은 편안해져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