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척' 하는걸 멈출 수 있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돌아올 때쯤이면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더 당당하고, 더 단단
하고, 더 '나다운'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긴 비행과 여권에 찍힌 스탬프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진짜 나'를 발견할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발견한 건 똑같은 생각, 똑같은 습관, 똑같은 불안이다. 단지 시간대만 달랐을 뿐. 주변 환경이 바뀐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여행은 당신을 지워주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너무 바빠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의 볼륨을 키울 뿐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면, 익숙한 것들로 스스로를 속일 수가 없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남는 건 필터 없는 날것의 나다. 그게 때로는 자유롭게 느껴지고, 때로는 불편하다.
치앙마이의 어느 카페에서, 주변 사람들을 보며 묘한 위축감이 느껴진다. 다들 자기만의 루틴이 있고, 목표가 있고,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라는 걸 제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다.
'이쯤이면 나를 찾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계속 든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었다. 그저 '이래야 한다'는 가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여행은 당신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쥐어주지 않는다. 당신이 늘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새로운 빛과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상황 속에서 비춰볼 뿐이다.
때로는 그게 충격적이다. 그리고 때로는 위안이 된다.
그러니 이건 분명히 말해둔다. 당신은 해외에서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누군가인 척하는 걸 멈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마드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흔히 '장소가 바뀌면 나도 바뀔 거야'라는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직면이다.
당신을 새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보여줄 뿐이다.
그게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