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능력이 훨씬 중요한 한의사의 진료
우리는 어떤 순간에 상담을 원하는가?
좋은 상담자가 되려면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내년 한 해의 운세를 점치는 토정비결 풀이부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색감을 알고 싶은 퍼스널 컬러 상담까지. 가깝게는 연애상담, 멀리는 경제연구소의 전망까지 우리는 막연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상담할 곳을 찾는다.
이때 상담자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상담이라기보다 하소연에 가까울 것이다.
상담을 시작하는 키워드는 경청
완성하는 키워드는 결론짓기, 비전 제시
한의사는 뛰어난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진료를 시작하고 깨달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의사에게는 뛰어난 술기 능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상담자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의료기기 사용 권한에 대한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환자를 파악하는 관점도 약간 차이가 있다.
갑자기 생겼다는 소화불량의 이유를 급성 위염으로 볼 것인지, 어제 저녁에 생긴 스트레스로 볼 것인지에 따라 치료방향이 달라진다.
따라서 한의사가 빈 부분을 잘 채워 넣어야 한다.
한의사라는 직역은 환자와의 대화, 그리고 맥진 등 촉진에 의한 의사의 판단이 매우 중요한-조금은 특별한 직군이다.
치료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환자들은 자신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 따라서 의료인은 그저 약을 처방하는 사람이 아니다. 환자의 몸 상태를 판단하고 치료계획을 세우며, 이 치료 여정에 환자를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것 또한 임무이다.
추가 검사가 필요해 보이는 환자에게는 더 큰 병원에서 검사해 보셔야겠다고 알리고, 진료의뢰서를 쓰는 것 또한 치료계획에 해당한다.
한의사 면허증을 따기 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침술법이나 한약 처방법은 전체 치료 프로세스 속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학생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기능하던 레지던트와 일차진료 주치의의 역할은 또 다르다. 조직의 권위로 어찌어찌 넘어가던 경계가 다 사라지고 개개인의 역량이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해진다.
환자, 혹은 고객이라도 좋다. 어떠한 목표로 상대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리드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흔히 도는 조별과제 조장의 어려움처럼.
일반 한의원 진료원장으로서 근무하는 초반에는 치료계획을 전달하고 환자를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부분이 매우 힘들었다. 치료 계획을 직접 세움으로써 그 사람의 미래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계획을 설명할 때만 되면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해 재진율이 떨어지기도 하고(매출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대표원장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컴플레인을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일단 자신 있게 지르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된다는 대표원장님의 말씀마저 부담스럽기만 했다.(이 말씀도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로컬은 전쟁터이다. 부담스럽고 무서워서 회피하기만 하면 나는 점점 도태된 한의사로 남게 될 것이다.
진료가 부담스러웠던 이유
왜? 나는 왜 환자를 진단하는 일이 부담스러울까? 매일 퇴근하기 전 그날 하루 가장 어려웠던 환자에 대한 진료 노트를 쓰고, 선배들에게 질문하며 보완해 나갔다.
어리석게도 그때는 비보험인 고가의 한약처방을 권하는 게 스스로 너무 상업적이라고 느껴서인 줄 알았다. 마치 양심적 한의사로서 무슨 가책이라도 느끼는 줄 알고.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 못 하는 한심한 생각이었다.
치료계획을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했던 것은 환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치료라고 확신했다면 왜 못 권하겠는가?
나는 신참 진료원장인 것을 들킬까 봐 여유 있는 척에만 급급했고 정작 파고들어 자세히 알아내야 할 환자의 여러 가지 정보를 놓쳐 버렸던 것이다. 갈림길이 모두 안개에 덮여 있는데 자신 있게 한쪽을 정해 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가 얼마나 되겠는가.
주치의가 환자에 대해 잘 알아야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다. 실제 진료는 매 순간 질문과 판단의 연속이다.
의료인은 좋은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과정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많은 한의대생들이 환자를 잘 치료하는 한의사가 되기 위하여 성실히 학업에 정진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A>B로 결론을 도출하는 진료과정에서 학생들은 B를 먼저 배운다. 하지만 B를 도출하기 위한 A의 기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을 돌아가게 된다.
인턴으로 입사하여 처음 '선생님'이라는 무거운 호칭으로 불리게 된 날, 환자를 체크하러 가는 손에 들린 빈 차트판이 넓게만 느껴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진표로 알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한정적이고 환자의 집중력은 그다지 길지 않다.
숙련된 선배 한의사들이 단순히 환자를 잘 구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들은 환자의 대화, 그들의 몸짓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내는 프로페셔널이다.
초보 한의사일수록 상담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사상체질, 맥진 등 파악이 끝난 환자를 분류하는 방법은 이미 많다. 제대로 파악해야 분류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환자를 잘 알고 싶어 던졌던 질문들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참 한의사의 상담 매뉴얼,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 매뉴얼을 제시하기 위해 연재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방법이었던 전화, 카카오톡 등 SNS 상담 또한 중요한 접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뉴 노멀(New normal) 시대로 환자와의 접점을 조성하는 방법 또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도 순차적으로 다룰 것이다.
의료인은 환자의 호전이 곧 본인의 직업적 만족도와 연결되며 사회 보건에 기여하는 축복받은 직업이다. 이 연재가 한의사로서 막 항해를 출발한 이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