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0
스마트폰의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이것저것 사 모은 장난감들. 스케줄러, 삼색볼펜, 스마트 폴더폰, 이북리더, 아이패드, 아이폰.
권력 분산의 시작은 무소음 알람시계였다.
그리고 사진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스마트폰-아이폰-으로 찍었다. 가장 화질 좋은 카메라가 이것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2024.03.19
마지막 도전으로 번역프로그램 트라도스 활용 1단계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두 번째 떨어지고서 번역의 꿈 모두 헛되었나 싶어 잠시 답답했지만 어쨌든 자격증에는 이전에 두 번 떨어졌음이 기록되지 않는다. 올초 느적느적 시작했는데 자격증을 따기까지 그렇게 늘어지지 않아-작년 블랙프라이데이에 프로그램을 샀으니 사실 늘어질 대로 늘어졌지만-다행이다. 어물어물하다 2024년의 1/4분기를 그대로 넘길 뻔했는데.
2024.03.18
도서관에 봄이 왔다.
도서관 바로 옆, 좋아하게 된 카페에 오늘도 왔는데 아쉽다.
특유의 아주 강한 향이 사라졌다. 누군가의 네이버 플레이스 리뷰에 따르면 치앙마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 향.
문을 밀고 들어갈 때 숨을 한 번 훅 멈추게 하는, 그래서 다른 세계로 온 듯한 기분이었는데. 아주 특별하지는 않아도 에스닉하니 이국적이었는데 그 향이 없으니 그저 트렌디하게 잘 꾸민 카페 중 하나가 돼 버렸다.
- 불편하게 하기-
어제 남편이 물었다.
- 아이폰 쓰니까 뇌가 뿌연 느낌이라더니 요즘은 흐린 느낌 없어?
그러게.
오늘이 폴더폰으로 바꾼 지 딱 2주째 된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는 뇌가 흐린 느낌이 불만스러워 해결하려 한 기억이 없다. 그간 머리에 너무 많은 생각이 드나들어 과부하가 걸린 적이 있나? 과부하 걸려 느려진 두뇌에 답답한 적 있나? 우선 지금까지는 아니.
며칠 전 카페에서 현재 취미 목록을 쭉 적었다. 산발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본 취미들. 나열한 것은 처음이다.
왜 썼느냐면, 최소한 여기 오른 내용들로 조예가 깊어지고 싶다거나 잘하고 싶다거나 오늘은 꼭 해야 한다거나 하는-업무역량에나 할 법한 불만으로-압박감 느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려고.
참, 그 목록에 못 썼는데 오래된 또 다른 취미로 ‘다짐하기’가 있다. 주변에서 ‘혼자 결심하고 혼자 지키려고 노력하고 혼자 좌절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 이번에도 그 습관을 못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히 압박 느끼지 말자는 다짐이니까.
거기에 가장 먼저 쓴 것은
1) 폰 만지기(솔직하게 적자)
였다. 정말 (솔직하게 적자)라고 썼다. 그 뒤로 실제 취미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자기소개할 때에도 큰 무리 없는 것들이 이어졌다. 마지막 취미는 번역이었다.
그리고 느낀 바가 있어, 그날 저녁을 넘기기 전 중고 거래로 폴더폰을 호다닥 들인 것이다. 다이어트를 준비하며 집에 있는 주전부리를 모두 처분하는 심정이었다. 폴더폰은 보호 비닐조차 뜯지 않은 듯 흠집 하나 없었다.
예전에 이보다 더 안 돌아가는 블랙베리를 2년 가까이 썼다. 느리지만 아무튼 다 되기는 되는 스마트폰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카카오톡, 네이버 지도, 유튜브 뮤직 이 세 가지가 되니까. 이게 안 되면 아이폰으로 다시 도망갈 작정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여러 가지 스마트 기기가 있으니 괜찮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두려움에 대해 쓴 작년 일기가 눈에 스쳤는데 ‘이렇게까지?’싶게 구구절절했다)
한국인들은 빨리빨리가 문제라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빨리빨리가 DNA에 박힌, 한국인 그 자체인 나. 손에 닿는 감각조차 희미한 터치스크린에 익숙한 나머지 이제 와서 꾹꾹 버튼 눌러 카카오톡 답장을 쓰려면 약간의 결심이 필요했다. 해서 정말 웹서핑 시간이 줄었다. 일단 타이핑이 불편하고 검색 결과가 빨리 떠 주지도 않으니 아무리 많은 연관 링크들이 나에게 손짓해도 유혹에 넘어가기가 정말 불편해서다. 일단 그런 연관 링크가 많으면 전체 페이지가 뜨는 속도가 느려져 달갑지 않다.
그러니 신문 보는 시간이 빨라졌다. 모르는 용어가 하나 나오면 우선 검색하고, 검색하니까 그 밑에 ‘이 블로그 인기글’이 뜨고, 같은 주제의 다른 블로그 포스팅이 주르륵 목록으로 떠서 파도 타듯 타고 또 타며 정작 신문은 팔꿈치 아래로 밀려나던 것을 못 하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두서없이 다양하게 다가오는 정보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다.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SNS를 끊어보고, SNS를 끊었더니 그 빈 시간을 블로그 구경으로 채우는 나를 발견하고. 쉴 새 없이 유튜브와 네이버 블로그를 새로고침하는 대신 폴더폰으로 바꾸고. 인터넷 세상에 산재한 읽을거리를 이북리더로 대체하고, 성취욕을 느끼고 싶을 때 게임을 하기보다 자수하거나 요리에 도전한다. 아주 초보적인 파스타나 찌개류 정도이지만.
생각 많고 복잡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참 단순하다. 인풋이 줄어드니 아웃풋이 다채로울 것도 없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신문을 다 읽고 분리수거함에 탁 넣은 뒤 가볍게 돌아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따라잡아야 한다-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는 생각을 줄여 보려고 ‘다짐‘하는 중. 그래서 취미에 조예가 깊어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클래식이나 재즈는 좋으면 듣고, 더 찾아보지 않는다. 책은 잡으면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그래서 중간에 덮은 책에 느끼는 무게감-도 버렸다. 민음사 유튜브 보니 직원들이 ‘병렬식 독서’라면서 책을 통독하지 않고 읽을 만큼만 읽고 덮더라고. 물론 직원이라 그 많은 책 다 읽기가 불가능해서겠지만 그 영상이 약간의 자신감을 주었다. 음악도 전주까지만 듣고 휙휙 넘겨도 죄책감 없듯이 독서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흡인력 있는 예술가가 맞다면 독자의 집중력을 붙들어 주겠지.
모리 마리의 에세이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을 읽고부터 소확행 말고 자확행-방금 만든 말인데 자기만의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을 즐기는 삶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신산한 삶 넋두리하는 에세이보다 마이웨이 확실한 일본 할머니들 에세이가 눈에 잘 띈다. 지금은 사노 요코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고 있다. 귀엽게 웃으며 손뜨개 가디건 입을 듯한 호호할머니 말고, 성깔 있는 일본 할머니들이 티격태격 부대끼는 일상이 이어진다.
나이 든 일본 여성 에세이들에 일관된 특징이 하나 있는데, 음식을 잘해 먹고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멋져 보이기 시작한 게 신기한 변화이다. 집밥이란 엄마가 차려 주시는 식사이거나, 아니면 좋은 곳에서 사 먹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호화 미식에 빠지자면 끝도 없겠지만 대중적인 외식은 이제 더 새롭게 발견할 거리가 없어서인 듯도 하다. 술 마시는 게 재미가 없어진 것처럼.
품을 들여 맛깔난 요리를 만드는 게 자기 대접으로 보이는 날이 오다니, 정말 변해 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