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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Jan 15. 2018

#33 라트비아, 축제라면 질렸어!

Play Ground. Endless festival. 나 도망갈래!

  북유럽에 위치한 라트비아(리가)는 축제의 나라(도시) 였다. 작은 도시지만, 수많은 공연들로 도시를 가득 채웠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이곳에도 저곳에도 음악소리가 들린다. 이 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기를 하나씩은 다룰 줄 알았다. 날 초대한 알치 역시 축제를 즐긴다. 그래서였을까? 알치와 함께 있는 내내 내가 지치고 피곤해서 쉬는 날이 아니라면, 항상 축제, 공연이 있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그 중 가장 특별했던 축제는 플레이 그라운드 였다. 낮 시간에는 감자를 넣고 쏘는 총, 스케이트보드, 롱보드, 카트 레이스, 스노우보드, 웨이크보드 등등 즐길 수 있었고, 저녁엔 각 섹션별로 다양한 음악의 공연들이 열려 파티 분위기가 펼쳐졌다. 수많은 즐길거리 중에서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스노우보드 섹션이었다. 한여름에 야외에 스노우보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눈을 가져와서 산 한쪽 면을 덮게 한 것이다. 운영진들이 정말 어디에도 없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었다. 수많은 즐길거리가 있어서였을까? 이건 도저히 하루만에 모든 것을 즐기는 게 불가능했다. 축제는 2박 3일간 내내 이어졌다. 플레이 그라운드 축제가 있는 곳 한 켠에 수많은 텐트들이 쳐졌고, 이들은 2박 3일간 놀 생각으로 가득했다.



 난 운영진 중 한 명인 알치 덕분에 컨테이너 하나를 배정받아 잠을 잘 수 있었고, 롱보드 관련 파트에서 심사를 보기도 했다. 정해진 롱보드 시간 외에는 놀러온 보더들과 돌아다녔다. 다른 것을 구경하면서 아이스크림과 주전부리를 먹었다.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은 하나씩 해보며 많이 구르기도 했다. 감자를 쏘는 총은 예상 외의 큰 반동으로 작은 포탄을 쏘는 것만 같았다. 촬영을 위해 드론들이 날아다니는 이 곳에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해가 질 때쯤부터는 맥주를 손에 들고, 공연을 즐겼다.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이곳 저곳에서 나왔다. 락, 재즈, 힙합, 30여 년 전 유행했다는 장르와 그 당시 유명했던 가수의 공연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모인 이들 모두 몸을 흔들며 소리 지르기에 바빴다. 새벽 3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뜨거웠다.



 큰.일.났.다.


 2박 3일 동안 익스트림 스포츠와 음악을 즐기며 축제를 벌이자는 내용은 말로 듣기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현실로 겪어봤더니 아무나 끝까지 즐길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죽을 것 같았다. 내 체력으로는 플레이 그라운드 축제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 날은 물론 재밌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었고, 하루종일 에너지를 내뿜었다. 2일차가 되니,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는 게 힘에 부치는 느낌이었다. 또 다시 새벽까지 놀 자신이 없었다. 이러다 좀비가 될 것 같았다. 노는 기계가 되어야 했다. 간신히 2일차를 즐기고, 드디어 3일차 집에 가는 날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이 새벽까지 이어진다고 들었다. 그러면 2박 3일이 아닌데, 2박 4일 혹은 3박 4일이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닌가? 그 소식을 듣고 겨우 버텨오던 멘탈이 바스락 조용하지만 큰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결국, 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알치, 미안한데, 나 도저히 여기서 하루 더 못있겠어. 집에 가면 안될까?’

‘내가 다음 날 아침에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려고? 여기서 집 엄청 멀어’

‘이쪽에서 가는 버스 같은거 없어?’

‘응! 하나도 없어’


 그랬다. 플레이 그라운드가 열리는 이 곳은 리가 가 아니었다. 도시가 아예 달랐다. 이 숲 속에서 대중교통 편조차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도보로 갈 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차가 없다면 이 곳을 나갈 수 없었다. 답이 보이지 않아 멍하니 보드에 앉았고, 이렇게 나의 탈출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 때 축제 기간 동안 나랑 많이 보드를 타며 놀았던 마티스가 곁으로 다가왔다.

나와 함께 한 마티스


‘도영, 표정이 힘들어보이네?’

‘마티스! 응, 좀 힘드네. 집에 가서 쉬고싶다 진짜’

‘나랑 똑같네. 축제가 너무 길어. 집에 같이 갈까?’

‘응? 어떻게 가게? 올 때 어떻게 왔는데?’

‘친구 차 얻어타서 왔는데, 갈 땐 히치하이킹하지 뭐!’

‘와! 히치하이킹? 할 수 있을까?’

‘나 몇 번 해봤는데 할 수 있어! 해보자’

‘좋아! 그러자. 안해봤는데 이번 기회에 해보지 뭐 재밌겠는데?’

 

 플레이 그라운드를 벗어날 방법이 생겼다. 난 알치에게 다시 갔다. 마티스와 같이 히치하이킹으로 버스 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티스가 있으니 연락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었다. 알치에게 집 열쇠를 받고, 마티스와 함께 마지막으로 쭉 한 번 돌아보고,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숲을 나섰다. 가능한 빨리 떠나고 싶었다.


나를 호스트한 알치


 일단 한참을 걸어갔다. 경험자인 마티스는 자신감에 넘쳤다. 난 유럽에서 처음 해보는 히치하이킹에 설렜다. 우리처럼 지쳐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큰 길로 나오니, 차들이 꽤 많이 지나다녔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차들은 무심하게도 우리를 지나쳐갈 뿐이었다. 거듭된 실패에 자신감이 사라져갈 무렵, 한 대의 차가 섰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쉽게도 방향이 달라서 탈 수가 없었다. 힘이 빠졌지만, 역시 마티스는 고수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다음 차를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히치하이킹은 믿음이라고 했다. 분명 되니까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자고.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마침내 우리는 히치하이킹에 성공할 수 있었다.

 

 히치하이킹으로 리가 도시까지 넘어와서 버스를 타고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4일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축제를 이렇게 스파르타로 즐기다니. 노는 건 참으로 힘든 거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한테 밤새면서 노는 건 안 맞는다는 것을. 어휴. 조금만 노는 게 행복한 거다. 내게 맞는 방식으로만 놀아야지. 이 날 나는 끝까지 놀 줄 아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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