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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라트비아, 축제라면 질렸어!

Play Ground. Endless festival. 나 도망갈래!

by 권도영

북유럽에 위치한 라트비아(리가)는 축제의 나라(도시) 였다. 작은 도시지만, 수많은 공연들로 도시를 가득 채웠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이곳에도 저곳에도 음악소리가 들린다. 이 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기를 하나씩은 다룰 줄 알았다. 날 초대한 알치 역시 축제를 즐긴다. 그래서였을까? 알치와 함께 있는 내내 내가 지치고 피곤해서 쉬는 날이 아니라면, 항상 축제, 공연이 있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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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특별했던 축제는 플레이 그라운드 였다. 낮 시간에는 감자를 넣고 쏘는 총, 스케이트보드, 롱보드, 카트 레이스, 스노우보드, 웨이크보드 등등 즐길 수 있었고, 저녁엔 각 섹션별로 다양한 음악의 공연들이 열려 파티 분위기가 펼쳐졌다. 수많은 즐길거리 중에서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스노우보드 섹션이었다. 한여름에 야외에 스노우보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눈을 가져와서 산 한쪽 면을 덮게 한 것이다. 운영진들이 정말 어디에도 없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었다. 수많은 즐길거리가 있어서였을까? 이건 도저히 하루만에 모든 것을 즐기는 게 불가능했다. 축제는 2박 3일간 내내 이어졌다. 플레이 그라운드 축제가 있는 곳 한 켠에 수많은 텐트들이 쳐졌고, 이들은 2박 3일간 놀 생각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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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운영진 중 한 명인 알치 덕분에 컨테이너 하나를 배정받아 잠을 잘 수 있었고, 롱보드 관련 파트에서 심사를 보기도 했다. 정해진 롱보드 시간 외에는 놀러온 보더들과 돌아다녔다. 다른 것을 구경하면서 아이스크림과 주전부리를 먹었다.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은 하나씩 해보며 많이 구르기도 했다. 감자를 쏘는 총은 예상 외의 큰 반동으로 작은 포탄을 쏘는 것만 같았다. 촬영을 위해 드론들이 날아다니는 이 곳에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해가 질 때쯤부터는 맥주를 손에 들고, 공연을 즐겼다.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이곳 저곳에서 나왔다. 락, 재즈, 힙합, 30여 년 전 유행했다는 장르와 그 당시 유명했던 가수의 공연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모인 이들 모두 몸을 흔들며 소리 지르기에 바빴다. 새벽 3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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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2박 3일 동안 익스트림 스포츠와 음악을 즐기며 축제를 벌이자는 내용은 말로 듣기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현실로 겪어봤더니 아무나 끝까지 즐길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죽을 것 같았다. 내 체력으로는 플레이 그라운드 축제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 날은 물론 재밌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었고, 하루종일 에너지를 내뿜었다. 2일차가 되니,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는 게 힘에 부치는 느낌이었다. 또 다시 새벽까지 놀 자신이 없었다. 이러다 좀비가 될 것 같았다. 노는 기계가 되어야 했다. 간신히 2일차를 즐기고, 드디어 3일차 집에 가는 날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이 새벽까지 이어진다고 들었다. 그러면 2박 3일이 아닌데, 2박 4일 혹은 3박 4일이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닌가? 그 소식을 듣고 겨우 버텨오던 멘탈이 바스락 조용하지만 큰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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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알치, 미안한데, 나 도저히 여기서 하루 더 못있겠어. 집에 가면 안될까?’

‘내가 다음 날 아침에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려고? 여기서 집 엄청 멀어’

‘이쪽에서 가는 버스 같은거 없어?’

‘응! 하나도 없어’


그랬다. 플레이 그라운드가 열리는 이 곳은 리가 가 아니었다. 도시가 아예 달랐다. 이 숲 속에서 대중교통 편조차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도보로 갈 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차가 없다면 이 곳을 나갈 수 없었다. 답이 보이지 않아 멍하니 보드에 앉았고, 이렇게 나의 탈출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 때 축제 기간 동안 나랑 많이 보드를 타며 놀았던 마티스가 곁으로 다가왔다.

IMG_7292.jpg 나와 함께 한 마티스


‘도영, 표정이 힘들어보이네?’

‘마티스! 응, 좀 힘드네. 집에 가서 쉬고싶다 진짜’

‘나랑 똑같네. 축제가 너무 길어. 집에 같이 갈까?’

‘응? 어떻게 가게? 올 때 어떻게 왔는데?’

‘친구 차 얻어타서 왔는데, 갈 땐 히치하이킹하지 뭐!’

‘와! 히치하이킹? 할 수 있을까?’

‘나 몇 번 해봤는데 할 수 있어! 해보자’

‘좋아! 그러자. 안해봤는데 이번 기회에 해보지 뭐 재밌겠는데?’


플레이 그라운드를 벗어날 방법이 생겼다. 난 알치에게 다시 갔다. 마티스와 같이 히치하이킹으로 버스 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티스가 있으니 연락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었다. 알치에게 집 열쇠를 받고, 마티스와 함께 마지막으로 쭉 한 번 돌아보고,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숲을 나섰다. 가능한 빨리 떠나고 싶었다.


pelnruskite-ar-serfa-deli-playground-festivala-organizetajas-sibillas-slegelmilhas-stasts-592fbf6f4fb74-672x448.jpg 나를 호스트한 알치


일단 한참을 걸어갔다. 경험자인 마티스는 자신감에 넘쳤다. 난 유럽에서 처음 해보는 히치하이킹에 설렜다. 우리처럼 지쳐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큰 길로 나오니, 차들이 꽤 많이 지나다녔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차들은 무심하게도 우리를 지나쳐갈 뿐이었다. 거듭된 실패에 자신감이 사라져갈 무렵, 한 대의 차가 섰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쉽게도 방향이 달라서 탈 수가 없었다. 힘이 빠졌지만, 역시 마티스는 고수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다음 차를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히치하이킹은 믿음이라고 했다. 분명 되니까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자고.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마침내 우리는 히치하이킹에 성공할 수 있었다.


히치하이킹으로 리가 도시까지 넘어와서 버스를 타고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4일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축제를 이렇게 스파르타로 즐기다니. 노는 건 참으로 힘든 거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나한테 밤새면서 노는 건 안 맞는다는 것을. 어휴. 조금만 노는 게 행복한 거다. 내게 맞는 방식으로만 놀아야지. 이 날 나는 끝까지 놀 줄 아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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