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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Jul 10. 2018

#38 생일을 해외에서 맞이한다는 것

In Almeria 알메리아에서

  계획에 없던 알메리아 라는 도시에 왔다. 여행을 하며 생각했던 루트와 다른 경로로 선회하는 것, 그것은 여행이 가진 묘미 중 하나다. 또한, 그 즉흥성에서 비롯된 여행에서 새로운 즐거움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초반에 몇 번 경험하고고 난 이후엔 오히려 더 기대를 하게 되었다. 발렌시아를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카디츠에서 만난 Nito 니토의 초대로 알메리아를 찾아온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알메리아에 여행온 나는 만족하고 또 만족했다. 


 나와 함께 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듯이, 내가 보드타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크루징하면서 댄싱하는 것이다. 크루징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니토는 자신있게 크루징 코스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정말 많은 곳에서 크루징해온 나에게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다니, 과연 어떠하길래? 기대 이상으로 알메리아는 시티크루징하기에 최고의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버스를 탄다. 이 버스는 알메리아 전체를 돌며, 맨 위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꼭대기에서 우리는 우르르 내렸다. 


지도에 맨 위에 올라간 후, 보드를 타고 쭉 내려온다. 이 이상의 시티크루징 코스가 없다.


 그.리.고. 


 내 인생 최고의 시티크루징을 시작하였다. 그리 심하지 않은 내리막 경사로 도시 이곳저곳을 누비며 크루징을 하며 스텝을 밟았다. 알메리아 크루와 함께 서로 소리지르며 즐겼다. 그 어떤 놀이기구가 이와 비견될 수 있을까? 감히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약 30~40분간 즐겁게 보드를 타고 내려온 최종 도착지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곳은 해변이었다. 위에서부터 즐겁게 내려오고 보이는 바닷가, 해변. 다 내려와 보드를 해변 모래에 꽂아두고,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몇몇 애들이 수영복 바지를 입고 온 이유가 있었다.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삶은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황홀한 경험들을 하게 해주니까. 그리고 이 알메리아에서 난 생일을 맞이했다. 해외 여행 중에 맞이하는 생일은 기분이 묘했다. 스페인어로 생일 축하노래를 듣는 것도 너무나 신기했다. 여행을 하던 중간에 생일을 맞이한 거라 세계 각지의 친구들로부터 축하메세지를 받았다. 한국인인데, 한국인보다 다른 나라 친구들로부터 축하한다는 연락을 더 받았다. 


 내가 뭐라고 이런 응원과 축하를 받을까? 태어난 날이 대체 뭐라고 말이다. 가끔 삶이 너무 힘들어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어린 시절 왜 나를 낳았냐며 부모님께 소리지르기도 했다. 세상 모두가 나의 적이라고 느껴지며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네거티브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본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철저하게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 불완전한 존재로 죽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 그래서인가보다!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힘들고 슬프고 괴로운 일들 역시 많았을 1년간 잘 버텨왔다고, 잘 이겨내고 살아왔다고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려고 생일을 다들 이렇게 특별히 여기나보다. Happy birthday 라고, 생일 축하한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선물을 주는가보다. 이 날만큼은 특별히 더 행복하고 좋은 일 있으라고. 힘내서 밝게 살아가자고. 괴로운 순간이 많지만 잠시나마 빠져나와 Happy 한 기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이다.


 갑자기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생일만 특별해야 할까? 다른 날들도 특별하게 보낼 수 있지 않나? 단 하루만 응원받고, 축하받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1년 365일 하루하루 모두를 생일처럼 특별한 날로 만들 수는 없을까? 삶에 충실해서 마치 다시 태어났다고 여길만한 순간들을 늘릴 수 있다. 


 2009년 2월 27일 책을 만나며 나는 다시 태어났다.

 2010년 3월 22일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5월 31일 네이버 어썸피플이라는 카페를 열며 다시 태어났다.

 2015년 9월 5일 롱보드를 처음 타며 다시 태어났다.

 2016년 3월 15일 세계여행을 떠나며 다시 태어났다.

 … 등등 너무나 많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를 생일처럼 특별한 날들로 만들며 살아가는 것 또한 재미있지 않을까? 최소한 추억 부자는 분명히 될 것이다. 이게 나의 일생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1년이라는 캘린더에 생일같은 추억들을 새겨넣는다. 이미 꽤나 쌓여버렸기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모두들 오늘도 생일 축하합니다.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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