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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Jul 27. 2018

#39, 강도가 불러온 트라우마

콜롬비아, 남미를 조심하세요

 강도를 당한 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간신히 카롤리나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서 쉬고 있던 카롤리나는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하얗게 식겁한 내 얼굴, 나갈 때와 완전히 달라진 나를 보고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물었다. 강도 당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 동네가 특히 위험하다며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라며 안타까워했다. 미안해했다. 이미 벌어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 난 일단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긴장이 풀렸는지 금방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기로 했다.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난 알 수 있었다. 깨달았다.

 

 세.상.이. 변.했.다.는.것.을. 

 

 놀라웠다. 세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아야 정상이다. 하루 아침에 바뀔 리가 없다. 그런데 어제 집을 나설 때와 오늘 나와서 본 세상은 내게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분명히, 하루 전만 해도 따뜻하고, 파란 하늘 이쁜 풍경에 사람들은 친구같은 밝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길가에 지나다니는 모든 이들이 날 위협하려는 것만 같았다. 공포가 엄습했다. 

 

 단 한 번의 강도 경험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다니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강도는 어두운 밤거리에서 당할 확률이 높다. 왜 밤이 되면 위험할까? 서로 아끼며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고, 별들이 빛을 내며 우리를 반겨주는 아름다운 시간이지만, 어둠은 범죄자들이 사건을 일으키기도 쉽고, 숨기에도 쉽다. 그러니 차라리 밤에 강도를 맞았다면, 나았을까? 밤은 원래 무서우니, 밤 시간에는 더욱 더 조심하게 되고, 낮에는 지난 여행들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필이면 낮에 강도를 맞으니, 이젠 밤 뿐 아니라 대낮마저도 무서워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내게 위협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예민해졌다. 집을 나온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다시 안전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몇 년 전 친한 여동생에게 안좋은 일이 생길 뻔 했다. 집에 여자 둘이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열려는 시도를 했다. 삐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언니가 튀어나가 맨 위에 걸 수 있는 바로 문을 잠그고, 또 문을 잠갔다. 간발에 차로 문을 잠글 수 있었다. 비밀번호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기에 더 무서웠다고 한다. 게다가, 범인은 위에 층에 살던 남자였고, 웃옷마저 벗고 밖에 있었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무서워서 그 집에서 살지 못하고,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가서 살게 됐다. 

 

 그때 걔가 며칠, 몇 주 반복해서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나도 너무나 놀라 안정시켜주려 노력했으나, 계속 반복된 이야기에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가볍게 말했다. 엘레베이터에 혼자 탔을 때 모르는 남자가 타는 것만으로도 무서워 아예 내린다는 말에 약간 오버하는 것 같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강도를 당하고, 위험한 상황을 한 번 겪고나니, 이제서야 그 여동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당시 더 다독여주지 못했단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긴 채, 길가에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할 것을 의식한 채 조심히 경찰서에 도착했다. 카롤리나에게 도움을 받아 사건에 대해 에스파뇰로 적은 종이를 경찰에게 들이밀었다. 기다리라는 바디랭기지에 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기다렸다. 처리해야 하는 일들과 먼저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어서 오래 걸렸다. 

 

 마침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왔고, 사건 경과에 대해서 자세히 말을 했다. 상황을 알게 됐지만, 범인을 잡을 수는 없을 거라 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경찰이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콜롬비아에 여행온지 하루만에 이런 불상사가 생겨서, 안좋은 면을 경험하게 된 것을 미안해했다. 

 

‘스몰 머니 인 더 파킷 Small money in the pocket. 현금은 조금만 들고다녀!’ 

 또 다시 강도를 당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는 마음에 현금 조금만 가지고 다니라는 말을 건네고, 

‘Safe travel. 안전한 여행해’ 

 

 남은 여행을 부디 안전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위로를 받고, 집에 돌아왔다. 인터넷이 되니, 폰에 갑자기 페메, 카톡이 쏟아졌다. 세계 각지에서 무슨 일이냐며, 괜찮으냐,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 많은 응원, 도움의 메세지들이 가득했다. 특히나,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연락과 그들의 걱정이 날 위로해주었다. 비록 이번에 강도를 당했지만, 여행을 통해 만난 소중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그렇다.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모든 사람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단지 극소수의 사람에게 운 없게도, 그리고 내 부주의로 인해 강도를 당한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정신은 그 당시의 패닉을 기억하고, 두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실제 현실 속 모든 사람들이 내게 위협을 가하고, 가진 것을 뺏으려 하진 않는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해왔는가. 게다가 대부분은 처음 본 사람들이지 않은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결코 거짓은 아니지만, 의식하지 못해도 날 응원하는 이들은 많이 있음에 분명하다는 걸 알았으니 조금만 용기를 내보자. 앞으로도 여행은 남아있으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남미가 내게 주는 마지막 미션인가? 남미에서 남은 20일 동안,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적극적으로 여행해보라는 미션. 그리고 안전히 돌아가보라는 그런 미션. 이 미션을 수행해내면 앞으로 더 멋지게 여행할 수 있는 내면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번 강도 사건 덕분에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더욱 깊어졌으니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 이제는 전보다 덜 속단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나도 너도 위험한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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