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행복해보이나요?
이번 여행을 통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특별한 친구가 차니또다. 해외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친구가 되지만,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내게 동갑인 차노는 더욱 더 친구같았다.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는 생각이 간혹 들던 친구, 차노를 소개합니다.
차노는 어디에 살까? 스페인, 카디츠에 산다.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카디츠는 바다와 접한 도시다. 스페인 남쪽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유럽 문화와 인근에 있는 아프리카 문화가 섞여 건축양식들도 이쁘고, 해안 도시 특유의 넉넉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있다. 거리를 걷다보면 서로 인사를 자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이 가깝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경험이 있다. 난 차노와 함께 보드를 타며 카디츠를 돌아다니며 영상을 찍었고, 편집을 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날부터 돌아다닐 때 보이는 사람마다 내게 영상 잘 봤다며 인사를 하고, 술을 사주고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이들에게 내가 받아들여졌다.
차노는 이런 카디츠와 닮았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다. 친화력이 좋아 누구와도 쉽게 친해진다. 여행 전 기억이 난다. 여행 준비를 하던 내게 차노가 인스타그램 디엠을 보냈다. 한 번 밖에 본 적 없고,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지만,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사진을 한 장 보냈다. 그 사진 속에는 바다가 보였다. 차노 집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고 했다. 환히 보이는 바다가 차노의 마음 같았다. 시원하게 오픈하며 좋은 친구가 되자는 메세지로 들렸다. 실제 같이 어울리고 느낀 점도 같았다.
차노의 일상은 심플하다. 아침에 일어나 친구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로 간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옥상에 올라가 그물에 누워 여유를 즐긴다. 낮잠을 자고, 바다로 나간다. 바닷가에서 자란 차노는 바다와 파도에 대해 잘 안다. 덕분에 패들 서핑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차노 덕분에 패들 서핑을 기본 자세부터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 정말 재밌게 즐겼다. 시간이 지나자 저질체력이 드러났다. 그저 서핑보드에 누워 둥둥 떠다녔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차노가 넘어와서 대신 패들해주기도 하고, 장난치면서 바다에서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녁엔 바에서 맥주 한 잔씩 하며 동네 사람들과 어울린다. 혹은 패들 서핑 수업을 받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여자를 엄청 좋아하는 차노는 마냥 헤헤거린다. 차노 친구는 차노가 인기가 많아서 같이 있으면 여자들이 다 차노한테 간다며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차노는 집 앞 바다에 나가 패들 서핑을 가르칠 때 외엔 롱보드를 타고 카디츠 이곳저곳을 다닌다. 9개의 스폰서가 있을 만큼 실력도 좋다. 많은 스폰서를 가진 자기 자신이 신기하고, 운이 좋다고 말을 한다. 운이 좋다고 말하지만, 스폰서를 받는 나름의 확고한 기준이 있고, 긍지도 있다. 내 생각과도 비슷해서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내가 차노 동네에 와서야 알게 되고, 놀랐던 게 있다. 바로 차노는 돌싱남이다. 나와 똑같은 나이지만, 벌써 결혼을 했다가, 이혼까지 했고, 클라우디아라는 예쁜 딸이 있다. 현재 클라우디아는 엄마랑 같이 살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차노는 클라우디아를 만난다. 클라우디아의 날에 나도 함께 만났었다. 처음 본 나를 낯설어했지만, 아빠 차노를 좋아하는 마음은 너무나 확실하게 느껴졌다. 독일에서 일하던 차노가 돌아와 카디츠에 다시 사는 이유 역시 클라우디아 때문이었다. 차노에게 가장 소중한 건 클라우디아였기에.
차노에게 물어보았다.
‘차노, 너한테 행복은 뭐야? 행복해?’
‘난 행복해. 사실 내게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야. 돈을 좇지도 않아. 날 사랑하는 엄마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클라우디아가 있지. 비록 돈을 많이 벌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서핑으로 일을 하고, 보드를 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시간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 죽을 때까지 내 사랑을 퍼트리며 사는 거야(Spread the love). 이게 중요해.
물론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있긴 하지. 너처럼 보드타며 세계여행을 가고 싶어도 그럴 돈은 없거든. 하지만, 널 초대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그 여행을 같이 하는 게 되지. 그 순간 만족하며 다른 방향으로 원하는 걸 풀 수 있다고 생각해’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차노의 행복 역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행복에 나 역시 감화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차노는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또 어떻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때 즐겁고, 행복하다는 자신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다. 방향성이 자신을 향해있을 때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말할지라도, 그게 스스로의 행복을 발견해 누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차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퍼트리며 살겠다고 했다. 자신의 행복, 사랑을 자신 주변으로 퍼트리며 사는 삶, 이것은 차노에게도, 내게도 진정한 행복이자 바람이다.
혹시라도,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질문이 도움을 줄 것 같다. '지금 어떤 사람이 행복해보이나요?' 연예인이 떠오를 수도 있고, 주변에 실제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고, 과거 역사에서 숨쉬고 있는 인물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왜 행복해보이는지 생각해보면, 그게 자신만의 행복의 조건이 될것이다.
내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여러 사람이 떠올랐고, 그 중 한 명은 차노였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차노. 진심으로 사람에게 다가가고, 즐기는 차노. 앞으로도 쭉 오래 친구로 지내는 게 당연해졌다. 근데, 차노야. 한국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내 생각에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스페인에 놀러와서 눌러사는 사람을 한 번 찾아봐. 하하하. 갑자기 차노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