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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Dec 16. 2018

#44 경쟁에서 1등, 2등의 의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의 대회

 아르헨티나 여행은 약 2주로 시간을 잡았다. 2주 동안 어디를 여행할지를 정해두진 않았다. 모든 걸 정해놓은 여행보다 불확실성이 더 재밌으니까. 단 하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확정해두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파비오가 친구를 소개해줘서 라 플라타를 여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 플라타에서 만난 친구들이 내게 로사리오에서 롱보드 대회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잘 몰랐던 아르헨티나 보더들을 한 번에 많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내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역시 정신만 차리고 있다면, 재미있는 거리들이 찾아온다는 걸 또 다시 느꼈다. 



 우리는 나후엘 차에 총 6명이 타고 로사리오로 떠났다. 장거리였지만, 아르헨티나 보더들이 서로 노는 모습을 보면서 재밌었다. 마떼를 서로 돌아가면서 마시고,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 벌어지는 등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았다. 장거리 중간에 한 번씩 내려서, 쉬곤 했는데 난 그게 좋았다. 한 번은 내렸더니 옆에 말들이 돌아다녔고, 또 한 번은 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해지는 시간을 즐겼다. 행복함에 취했는지도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분주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느덧 로사리오에 도착했다. 



 큰 파라나 강을 옆에 둔 광장이 대회장소였다. 이 곳엔 롱보드 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케이터, 롤러, 등 다양한 놀거리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회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어 우리는 몸을 풀며 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쏘유캔 대회를 제외하고는 이번 여행에서 대회에 참가해 본 적이 없었다. 스페인에서도, 브라질에서도 난 심사를 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친구들이 대회 나오는 게 어떠냐고 나와서 같이 즐기자고 하길래 나가기로 했다. 알고보니 내가 나가기로 하기 전에 이미 등록이 되어있었다. 역시나 남미 사람들의 경쟁심은 알아줘야했다. 이미 작정하고 날 데려왔던 거였다.



 아르헨티나 대회는 트릭과 댄싱이 완전히 구분된 채로 진행이 되었다. 결과를 놓고 말하면, 난 댄싱파트에서 1등을 했다. 이번 대회를 나가기 전, 많은 대회에 참가했다. 비오는 날 대회를 제외하곤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유럽대회에서 한 번 3등을 제외하고, 국내외 모든 대회에서 2등을 했다. 만년 2등이 1등을 했다. 내 기분이 어땠을까? 현장에서 많은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축하를 해줬고, 내 라이딩에 감탄했고, 좋아해줬다. 당연히 기뻐야 정상이건만, 실상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회에서 내 라이딩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껏 나갔던 대회 중에서 가장 못탔다. 아마도 이들은 나의 스타일을 인정해줘서 1등을 준 거 같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도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내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를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 스스로에게 정말 만족스러웠는가 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고, 최선을 다할 때 과정에서 감동이 친구가 되어 찾아온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1등을 하건, 2등을 하건, 3등을 하건, 혹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건 결과만큼의 순서대로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내가 그동안 대회를 참가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단순히 경험을 위해서라면 단 한 번 대회에 가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자주 대회에 나가고, 심사를 봤을까? 그것은 재밌기 때문이다. 대회에 나가면, 평소에 쉽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함께 그동안 연습했던 것을 나눈다. 대회에 나온 사람들을 응원하며 소리를 지른다.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참가를 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덜 남고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추억을 쌓고, 또 쌓아 추억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한 추억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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