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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an 02. 2024

엄마 일곱 살 (1)

7년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

  2017년 4월 25일,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나는 그저 ‘나’라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면 그만이었는데 엄마가 된 이후의 나는 ‘나<엄마’라는 이상한 삶을 (힘들어도 꾹 참고) 살아야만 했다. 엄마로 살아온 지난 칠 년의 시간은 나라는 사람을 참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시간을 아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된 첫 해에는 사실 정신이 없었다. 정신력과 체력 모두가 힘들어서 많이 슬펐고 때론 무기력했고, 그래서 자주 울었다. 집에 갇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웃고,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울고,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육아만 하던 내가 나의 삶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3월부터였다. 나도 좀 숨을 쉬고 싶어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섰다. 대전에서 서울로, 뜨개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겨우 한 달에 두 번이었고 남편도 허락했으니 눈 딱 감았다. 남편 입장에서도, 툭하면 울고 불고 소리 지르는 나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무척 즐거웠지만, 배움이 즐거울수록 갈급함이 커져갔다. 단순한 취미라고 하기에는 지불하는 비용이 컸으니 이왕이면 열심히 익히고 싶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날로 커져가는데, 내 현실은 애 엄마였다. 시간도, 체력도 없는 애 엄마.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어 슬펐지만 꾸역꾸역 버텼다. 아이가 잠들면, 아이가 혼자서 잘 놀면, 나는 실과 바늘을 들고 숙제를 했다.


  아이가 18개월쯤 됐을 무렵, 이사를 하면서 아이는 기관 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사업자를 냈다. 취미 생활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벌고 싶어서 더 잘하는 취미를 이용했다. 뜨개 수업료를 벌기 위해 자수 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자수는 결혼 초에 배워 열심히 익혀둔 나의 취미이자 특기였고, 공교롭게도 나는 사범대 출신으로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일을 저질러 버렸다. 호기롭게 일은 저질렀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울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나에게 돈을 내고 배움을 얻으러 온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부담이 컸다. 부담은 곧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애 엄마였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뜨개 숙제도 해야 하고, 이제는 자수 수업 준비까지.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도 없는 주제에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내가 숨 쉬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소중한 나의 일이 생겼기 때문에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부족한 시간을 아끼고 또 아껴야만 했다.


  뜨개 학생과 자수 선생으로 성실히 수업을 이어가던 2019년 봄, 둘째가 생겼다. 임산부의 몸으로 자수 패키지를 만들어 팔고 문화센터 수업도 진행하고 서울로 뜨개를 배우러 다니고, 그걸로도 모자라 태교라는 명목하에 꽃 수업을 신청해 난생처음 꽃을 만져보았다. 꽃을 배우게 된 건 너무도 우연한 계기로, 자수 수업에 모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 명이 꽃 수업을 등록하면 수강료 할인이 크다는 말에 즉흥적으로, 셋이 함께 손 잡고 취미반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꽃은 그간 내가 해왔던 공예와는 전혀 다른 분야여서 어려웠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꽃 수업을 반년 듣고 나니 임신 막달이 되었다. 아쉽지만, 내가 진행하고 들어왔던 수업들을 모두 정리했다. 둘째를 돌까지 키우고, 어린이집에 보낸 뒤에 다시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둘째는 2020년 1월 24일에 태어났고, 그 날은 코로나가 시작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다. 나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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