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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Feb 02. 2024

1월의 책

2024년, 새 마음으로!

1. <콰이어트>, 수전케인 / 20240103

외향성 이상 사회에서 내향인이 갖는 힘을 일깨워주며, 내향인들이 되도록이면 피로감을 적게 느끼면서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안내자 같은 책


내향인으로서, 나 역시 책에서 언급한 대로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지만 사자 같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공격적인 힘은 사람을 때려눕히지만, 부드러운 힘은 사람을 끌어당기거든요.” p.328



2.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 20240104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쓰면서 삶을 풍성하게 가꾸고 기록하는 김민철 작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책


그저, 낡은 벽 하나를 두고 1000자가량의 글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갈 수 있는 그녀의 통찰력이 부러웠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감정 하나까지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는 사소한 습관이 만든 결과일 거라 생각하니, 기록하는 습관을 갖지 못한 자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때론 책이 우리를 구원한다. 책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책으로 구원받는다. 드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귀하게도. 고맙게도. p.75



3. <아무튼, 영양제>, 오지은 / 20240105

사랑하는 뮤지션, 오지은 언니의 새 책이라니. 그렇다면 일단 사야지. 무조건 읽어야지. 내가 영양제를 좋아하든 아니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지은이니까. (하트)


오지은 언니의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은 충실한 독자로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아주 그냥 술술술 읽힌다. 귓가에 언니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기분이다. 혹시나 오지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면 (책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그녀가 출연한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한 편이라도 듣고, 이 책을 읽길 추천한다. 단, 방송은 반드시 꼭 ‘영노자’ 여야만 한다. 이 책은 영노자에서 수다 떠는 오지은 버전으로 읽어야 제맛이니까!


간단히 살 수 있다는 것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난 그래서 좋아하지만. p.22



4.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 20240106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을 통해, 그녀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다르게 읽혔다.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녀의 필력에 또 한번 감탄했다.


소설을 읽으며 드라마로 제작될 ‘가녀장의 시대’를 자꾸만 상상하게 됐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에 불쑥 찾아오는 명랑한 웃음, 코 끝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 그런 것들을 드라마로 만나 볼 수 있다니. 아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너무 좋네.


<가녀장의 시대>는 관찰자의 시선에서 덤덤하게 써 내려간 듯 보이지만 지나치게 섬세했다. 먹먹한 순간들이 왕왕 있었고, 그 순간들이 모여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남은 것은 꼬옥 안아주고 싶은 마음.


복희가 죽으면 어떡하지? 그것은 슬아의 오랜 질문이다. 복희는 영원히 살지 않을 텐데, 복희가 죽으면 된장은 누가 만들 것인가. 중년이 된 슬아가 노년의 복희로부터 된장을 전수받을 것인가. 아니면 마트에서 파는 된장을 사 먹으며 엄마와 외할머니를 그리워할 것인가. 그러다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칠 것인가. /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십 대의 슬아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로 글을 쓰고 있다. p.98



5. <세상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다면>, 발걸음 / 20240107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작지만 큰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붙잡아 기록해 둔 책


아이를 키우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 본 경험이 있는 자로서 이 책의 쓰여진 순간들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 동질감으로 인해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과도하게 몰입하는 바람에 책의 구성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발걸음 님은 결혼 생활을 10년 넘게 지속해 오신 육아 선배님이구나, 아이의 알레르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놓고도 노심초사하며 5년째 도시락을 싸는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몰입하며 읽고 있는데 응? 갑자기 유치원 등원길? 이렇게 뜬금없는 시간의 역행이라니?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는 마음…


MBTI에서 T와 F가 공존하는 유형으로서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읽는 사람으로서 내 공간에 솔직하게 나의 감상을 적어 내려가고 싶은 것은 T,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리뷰를 남기면 작가님께서 보실 수도 있는데 혹시나 그 마음에 상처라도 남길까 걱정하는 것은 F.


갑자기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불쑥 등장한 유치원 등원에서 마음이 흔들려버린 탓에 이후로는 조금 냉정한 시각에서 글을 읽게 되었는데, 아무리 짧은 책이라 해도 내용의 구성에 어떤 흐름 같은 것이 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정제된 결과물을 주로 읽어 온 나로서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날것의 구성이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또 생각해 보니 이것이 독립출판의 매력이구나 싶었다.


꾸준히 기록하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내기까지. 그 안에 담긴 소중한 걸음걸음이 느껴지는 것만은 확실했다. 작가님의 행보를 응원하는 독자로서 힘차게 나가아실 다음의 걸음을 기대해 본다.


책을 읽는 시간은 곧 나를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깨달아 갔다. 내가 내 이름을 찾고 싶었던 것은 커리어나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나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 나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p.19



6. <재즈>, 토니 모리슨 / 20240110

2024년에는 야물찬 독서를 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김민철 작가님께서 진행하시는 ‘오독오독 북클럽’을 신청했다. ‘재즈’는 오독오독 1월의 책이라 읽게 된 책. 평소 내가 즐겨 읽던 부류의 책이 아니라 걱정이 좀 되었는데, 역시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재즈’는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려워서 괜시리 자존심이 상하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감탄을 내뱉게 될 정도로 유려한 문장이 가득해서 무언가에 홀린 듯 술술 읽게 되지만, 잠시만 긴장의 끈을 놓아도 생각이 다른 길로 빠져버리게 돼서 정신줄을 바짝 챙겨야 했다. 역시나, 인정하기 싫지만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다.


읽으며 감탄했던 포인트는 정말로 재즈 연주를 들으며 다양한 변주에 빠져드는 것처럼 수시로 바뀌는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몰입하며 읽게 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의도에 빠져들 수 있다니. 참으로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책이 몇 장 남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이 어려운 소설을 조금 알 것도 같단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말과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읽고 나니 그제서야 숙제를 마친 것 같지만, 내가 숙제를 제대로 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 순간 내게 큰 위로가 된 것은 나를 이 책으로 안내해 준 북클럽의 이름이다. ‘오독오독북클럽’


과거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홈을 따라 끊임없이 돌아야 하는, 이 세상 어떤 힘도 바늘을 붙들고 있는 대를 들어올릴 수 없는, 혹사당하는 레코드와 같다. p.337



7. <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 20240110

2011년, 트친이던 편집자님이 책을 내셨다고 해서 재빠르게 초판을 구매해 아주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분이 바로 정.세.랑.


정세랑 작가의 첫 번째 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를 친정집 책꽂이에서 발견하고 옛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읽어 보려고 가져왔다. 책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이 책을 읽던 중에 전화벨이 울려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요’가 생각이 안 나서 전화기를 들고 잠시 멍-하니 있었던 것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내겐 그 정도로 흡입력이 상당했던 소설.


2024년에 <덧니가 보고 싶어>를 다시 읽으며, 대체 지난날의 나는 어느 대목에서 그렇게 빨려 들어간 걸까, 정답을 찾지 못하고 책이 끝나버리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차에 정답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은 취향.


나는 분명 장편 소설을 하나 읽었는데 아홉 개의 단편을 덤으로 받았다. 횡재한 기분이다.


 때때로 인생은 그렇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곤 한다.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가 많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 하지만, 후자가 더 매력적이라 해도 최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p.96



8. <식물원>, 유진목 / 20240111

심도 깊은 독서를 향한 갈망이 이글이글 타올라, 작가는 어떻게 책을 이해하는지 궁금해서 이슬아 작가의 서평집을 구매했고 유진목 시인의 <식물원>은 서평집에 실린 첫 작품이었다. 도장 깨기 하는 것처럼 서평집에 실린 작품을 하나씩 읽은 뒤 이슬아 작가의 서평을 읽어 볼 작정이다.


이 책은 시집 중에서도 두께가 얇은 편이고 절반은 사진이라 읽는 데에는 부담이 없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시집이라 두 번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어떤 생활, 더 나아가 누군가의 생애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졌는데 두 번째 읽다 보니 자꾸만 죽음을 언급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거듭되는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살아내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


다른 것이 아닌 그는 종려나무인 것이 좋았다. 길고 가느다란 잎과 뾰족한 끝이. 찌르기 전에 꺾이는 무력함이. 천천히 말라가는 목숨이. 때로 휩쓸리는 삶이. 여럿이 모여 있으면 징그럽기도 한 것이 좋았다. p.51



9. <겨울의 언어>, 김겨울 / 20240112

‘김겨울’이라는 뮤지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설마 그 김겨울이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의 김겨울과 같은 사람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같은 사람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라디오 북클럽을 들어보았다. 무작정 믿음이 가는 이 목소리는 뭐지? 방송을 듣자마자 김겨울 작가의 단정한 말솜씨와 신뢰감 가득한 목소리에 반해버렸고, 더 나아가 그의 글이 궁금해졌다. 말을 통해 짐작건대 글도 분명 좋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언어>는 프롤로그가 마치 시처럼 아름다워서, 몇 번을 읽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프롤로그라니. 김겨울 작가님과의 첫 만남은 시작부터 참 아름다웠다.


김겨울 작가의 글에는 차분한 깊이가 느껴졌다. 글을 읽는 마음까지 고요하게 만들었으며, 이따금 드러내는 솔직한 고백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척이나 덤덤하게 드러냈지만 읽다 보니 귀엽기도 했던 김겨울 작가의 이야기가 참 따뜻해서, 겨울에 읽기 좋은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겨울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계절일진대, 겨울을 소리 내어 부르는 사람에게 겨울의 혹독함이란 자신을 휩쓸어도 좋을 바람이다. 나는 제자리에 곧게 서서 거센 바람을 맞는 일을 생각하며 그럼에도 이것이 삶이라면 노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노래는 이따금 뚝뚝 끊기고 위태롭다. 그러니 겨울 속에서 기꺼이 노래하는 다른 사람들, 내가 책 속에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삶의 노래는 이어진다. p.6



10.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윤성호 / 20240113

요조의 책을 읽다 만난 책, 윤성호 감독을 좋아하는 남편이 보면 좋아할 것 같아 저장해 두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와 남편에게 먼저 건넸는데, 들떠서 읽던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윤성호가 그 윤성호가 아닌 것 같아’ 으잉?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찾아봤더니 동명이인이었다. 읽기도 전에 웃픈 해프닝.


그래도 궁금했던 책이니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희곡은 처음이었는데, 호로록 읽히는 재미가 좋았다. 호로록 빨려 들어오는 텍스트 속에 담긴 의미를 곱씹는 재미도 좋았다.


그래도 그런 거 있잖아. 만나봐야 아는 거잖아요, 일이든 사람이든. 그런데 언제? 어떻게? 어떤 순서로? 시간은 막 흘러가는데, 나는 늙고 보잘것없어지는데, 난 도대체 어떤 확률 위에 있는 거야? 이게 무슨 카드놀이도 아니고, 이럼 안 되잖아요. 인생이 이럼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왜 다들 모른 척해?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p.67



11.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 20240113

박연준, 장석주 시인의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가 출간되자마자 읽었다. 2015년 겨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2023년 겨울에 그 책을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최근 읽으면서는, 박연준 시인이 <한국이 싫어서>를 언급한 대목에 마음을 붙잡히고 말았다. 장강명이라는 작가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소설의 제목과 상황이 현재 나의 처지와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술술 읽혔지만 마음이 저릿했다. 2015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2024년에 읽어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서글프기도 했다. 어쨌거나 한국을 떠나 사는 것에 성공한 계나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며 책을 덮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근데 내가 지금, 내 코가 석자인 사람이 누굴 걱정하고 있는 지를 생각하니 더 큰 한숨이 나왔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서글픈 걸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p.160



12.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 20240115

이야기 장수 이연실 편집자님의 책이 있다니, 제목이 <에세이 만드는 법>이라니! 에세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연실 장수님께서 만드셨던 책을 사랑해 왔던 독자로서, 너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책을 통해 엿본 이연실 편집자님의 생활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해서 놀랐다. 그간 편집자님께서 만드셨던 책들이 작가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고군분투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생각하니, 왠지 나도 더 뜨겁게 책을 사랑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김이나 작사가님, 배우 하정우 님의 책을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담아두었다. 뜨거운 마음과 함께. (하트)


마침,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 지난주 방송에 이연실 편집자님께서 이 책과 함께 출연해 주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반가웠다. 이제 책 다 읽었으니 라디오 북클럽을 들으러 가야지!


책을 파는 일, 특히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작가의 경험과 삶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잊을 수 없는 부분을 내다 팔아야만 한다. 나는 책 만드는 과정에서 그 두려움과 무게감, 그로 인한 파장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삶의 일부를 떼어 내 만든 책이 외면받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어떻게든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만들려 노력한다. p.53



13. <여행의 장면> / 20240115

여행기는 참 오랜만이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몇 년 간 여행은 꿈도 못 꾸었던 탓도 있고, 그 사이 아이가 둘이 되면서 (특히 둘째가 36개월이 넘어가면서) 온전히 4인 가족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여행은 크게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행기를 읽으며 마음에 헛된 바람 따위 불어넣어봤자 속만 쓰릴 게 뻔해 읽을 생각조차 없었는데, <여행의 장면>에 참여하신 작가님들 이름을 보니 하트가 퐁퐁 솟아나는 데다 출판사가 ‘유유히’라서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수신지 작가님의 만화와 글로 본격적인 여행기가 시작된다. 배웅으로 시작되는 여행기라니, 너무나 귀엽고 참신했다. 그렇지만 그다음 이어지는 글들은 그저 글 속의 떡, 같은 느낌이었달까. 아 옛날이여,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었는데 그때 여행도 열심히 다니고 적극적으로 좀 놀아볼걸. 부러움과 아쉬움만 쌓여갔다.


그러다 만난 고수리 작가님의 글. 4인 가족이 오순도순 숲으로 떠난 여행기를 마주하니 마음에 편안한 웃음이 번졌다. 그저 행복의 모양이 달라졌을 뿐, 어떤 식으로든 행복할 수 있으니 부러워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일반적인(?) 여행기와 달리 <여행의 장면>에는 정말 다양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 혼자 훌쩍, 둘이서 정답게 떠나는 여행도 있고, 4인 가족이 떠나기도 하고, 부모님이 대신 떠나기도 한다. 책 한 권을 통해 열 개의 행복을 마주한 느낌. 아, 여행 가고 싶다!


지금 온몸으로 느끼는 이 작은 세계를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행복했다. 사랑하니까 행복해졌다. 행복은 껴안고서 함께 모닥불을 쬐는 일. 이다지도 사소하고 따스했다. 간소해서 완전한 행복이 여기 있었다. 무엇 하나 바라지 않는데도 품과 손길과 온기와 자연과 사랑이 우리를 겹겹이 감싸 안아주었다. p.162



14.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 20240118

평소 너무나도 사랑하는 김하나 작가님께서 책발전소 1월의 북클럽을 진행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신청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어쩐지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책을 만나게 되었고, 작가님의 편지를 지침서 삼아 읽으며 ‘길고 아름다운 명상의 세계‘로 나아갔다.


황제의 회상록답게, 어휘도 너무 어렵고 문장도 만연체로 늘어지다 보니 정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경험상 이 책은 쉬었다 읽으면 다시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가급적 오래 앉아 읽는 편이 나았다. 흐트러지는 정신줄 부여잡고 읽어 내려가고 있으면 황제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하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감탄의 맛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었다.


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온 활자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오른쪽 눈으로 들어와 왼쪽 눈으로 흘러나갔고, 곧바로 또 나의 눈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활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읽었고 또 그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갔다. 그래서 이 책의 2권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려 한다. 1권이 있으면 당연히 2권까지 나란히 책장에 꽂아두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감히 2권까지 들일 엄두를 못 내겠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삶의 연륜과 독서 내공이 쌓인 뒤에, 1권을 다시 한번 읽고 참 재미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2권을 들여 볼 참이다.


고생했다. 이제 재미있는 책 읽으러 가자.


더할 수 없이 불투명한 사람들이라도 희미한 빛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 우리들의 커다란 오류는 상대방 개개인에게서,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미덕들을 얻으려고 하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미덕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등한히하는 것이다. p.76



15.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1>, 수신지 / 20240119

잊고 살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수신지 작가님처럼 엄청난 모범생은 아니었어도, 작가님처럼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 학생’이었던 나의 학창 시절.


1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아보자면 장학금 탄 돈으로 사우나에 가고, 서점에서 마음 가는 책, 클래식 음반 코너에서 장영주의 앨범을 사 들고 오는, 제대로 된 기분 전환을 할 줄 아는 아랑이의 모습이다. 열여덟의 나는 갖지 못했던 호기로움. 아랑이는 분명 멋있는 어른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달까.


우리 아랑이, 연두, 은이 덕분에 뭉근하게 번지는 나의 지난날을 어루만져 보았다. 온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



16.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2>, 수신지 / 20240119

너무 ‘착해서’ 공부가 힘든 은이, 또 심각하게 ‘착실해서’ 반장 역할에 고충이 따르는 아랑이, 쿨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내면에서 타오르는 ‘질투심’으로 힘든 연두까지. 그 시절을 먼저 겪어 본 언니로서, 모두의 마음이 이해가 되니 짠하고 또 귀엽고. 오늘은 옛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



17.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 20240119

제목이 주는 산뜻한 충격에 반해서 읽어보려고 마음에 담아둔 책인데, 책 속에 실린 사진들을 보니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취.향.저.격.


뜨개와 자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네뜨’ 할머니의 취향과 안목에 반해버렸다. 정말이지 나도, 그녀처럼 귀엽고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었다. 손으로 조물조물 만든 것들을 차곡차곡 보관했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보라며, 흔쾌히 선물할 수 있는 호방함이 참 근사했다.


손때 가득한 물건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미니멀 라이프’를 접한 뒤로는 조금만 싫증이 나고 안 쓰는 물건들은 가차 없이 버려버렸다. 비워내고 나면 말끔해지는 집이 좋아서, 열심히 버렸다. 심지어 가차 없이 버리는 것들 중에는 내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것들도 있었다. 만든 당시에는 더없이 소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관심 밖으로 밀려난 물건들. 갑자기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너무 아까웠다. 다시 주워 와서 보물 상자에 차곡차곡 넣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다람쥐가 도토리를 그러모으듯 소중하게 모아서 오래오래 보관해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될 그날을 위해!


누군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의 향을 흡수하는 일이다. 그가 사용하던 숟가락, 접시, 침대보를 내가 쓴다. 치약이나 샴푸, 세탁세제 따위도 얻어 쓴다. 그가 밑줄 그은 책을 읽고 그의 체형대로 모양이 잡힌 옷을 빌려 입는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서 나는 향이 같아진다. p.24



18.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 20240120

건조한 일상 속에, 생활의 피로가 녹아 있는 이야기들이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희미한 빛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주셔서 그것들을 읽으며 나는 또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내 안의 희미한 빛을 지키며, 때로는 조금 더 밝게 빛을 밝히며 꿋꿋하게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네가 자면서 배냇짓을 할 때 나는 네 안에서 분주히 세워지고 있을 네 안의 세상이 궁금했고 그곳이 어떤 세상이든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p.144



19. <겨울 간식집> / 20240121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작가에 대한 애정도가 넘치는 사람이라, ‘누구의 책’이라 명명할 수 없는 앤솔로지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책장 정리를 할 때 가장 먼저 정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랬는데 <겨울 간식집>은 달랐다. 이 책은 기획과 구성이 정말 좋았다. 사랑하는 박연준 시인님의 글이 실려 있기도 했고, 제목 때문에 왠지 겨울에 읽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큰 기대 없이 골라 들었는데 읽는 내내 너무 좋아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어떻게 이런 책을 만들었을까!


여섯 명의 작가가 쓴 여섯 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겨울 간식들이 등장하고, 소설의 끝에는 작가의 ‘겨울 레시피’가 담겨 있다. 정말로, 추운 겨울날 이불속에 앉아 따수운 겨울 간식을 꺼내 먹는 기분으로 맛있게 읽었다.


이번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한번 읽고 말기엔 너무 소중한 책, 겨울마다 꺼내어 호호 불어 먹고 싶은 책이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음 겨울에는 귀엽고 따뜻한 표지로 다시 읽어봐야지!


사는 게 너무 달아서 때론 숙모와 문재 오빠에게 미안해졌다. 달고 따뜻한 걸 살아남은 우리만 계속 먹는 것 같아서. p.203



20. <겨울밤 토끼 걱정>, 유희경 / 20240122

‘겨울밤 토끼 걱정’이라니! 인스타 광고 속 시집 제목을 보고 마음이 쿵, 시인 이름을 보고 또 한번 쿵.


사랑하는 시인의 팬미팅이 열린다는 포스팅을 보고 ‘어머 그렇다면 나도 가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공간의 이름을 딴 ‘핀‘미팅이었다. (맙소사)


내게 있어 시는 언제나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은 것. 이번에는 특별히 낭독회를 가야 하니 두 번이나 읽었는데, 그랬는데도 알 듯 말 듯. 얄미운 토끼 녀석.


묵독과 낭독, 오랜만에 경험하는 낭독의 세계가 정말 좋았다. 유희경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시도 좋고, 함께 자리한 분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듣는 시도 좋았다. 아, 역시 시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아름다운 것. 충만하게 아름다운 밤이었다.


‘겨울밤 토끼 걱정’이란 제목은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농담을 들은 시인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실은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농담이 그러하듯. p.102



21.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 20240125

좋아하는, 그렇지만 17km를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동네(?)책방의 공유 서재에서 책을 한 권 골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여섯 책방(소심한책방, 달팽이책방, 손목서가, 유어마인드, 고스트북스, 동아서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라, 책을 좋아하고 책방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어느 대목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왔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마음이 저릿하기도 했다.


특히 손목서가, 유진목 시인님의 글에 마음이 붙잡혀 자꾸만 멈추게 되었다. 자연스레 유진목 시인의 산문이 읽고 싶단 마음이 들었는데, 그 순간 나의 눈앞에 들어온 유진목 시인의 산문집. 원하는 책을 원하는 때에 바로 손에 쥘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유진목 시인의 산문집을 사 들고 집에 오는 길, 동네 책방에 앉아 책을 읽으니 이런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온 동네에 소문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서점들이 오래오래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으니, 공간이 지속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해 널리 널리 알려야지. 그것은 서점 애호가로서의 책임과 의무!


책은 그 책을 쓴 작가와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작가들과의 다양한 시간들이 나에게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p.63



22.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 20240126

시작부터가 감동이었다. 너무도 매력적인, 정말 잘 쓰여진 글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글을 직접 옮겨봄으로써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내 팔을 희생시킬 의향이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웠다. 사무치게 부러웠다.


앤솔로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올 겨울에는 앤솔로지 책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빠져드는 속도가 엄청나다. 이 책도 그랬다. 좋아하는 뮤지션 강아솔의 음반을 먼저 들었고, 듣다 보니 책도 읽고 싶어져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이건 한 번 읽고 반납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었다. 눈이 닿는 곳에 꽂아두고 느긋하게 곱씹고 싶어 져서 서점 장바구니에 담았고, 음반도 함께 주문했다. 이 둘은 함께여야 더 아름다우니까.


그러니까 어떤 시간은 퉁퉁 언 맨발로 요약된다. 언 발을 녹이고 싶은데 내가 가진 건 차가운 손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 그 순간을 감당하는 것이 오롯이 나의 몫인 것만 같은 시간. 차가운 손으로는 발을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따듯해지지 않았다. 차가운 발 때문에 손도 덩달아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붙잡고 있었다. 다른 손을 가진 누군가가 내 발을 잡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의 내 상상력은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내 발을 잡아줄 손은 내 손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게 나에겐 진실이었다. p.199



23. <언스쿨링>, Peter Grey / 20240129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갑작스레 결정된 해외 이주 때문에 매일 마음이 시끄럽다. 국제학교의 비싼 수업료도 부담이거니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잘 적응해 줄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 대안으로 홈스쿨링을 알아보던 차에 만난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정보는 없었지만, 오늘날 획일화된 우리의 학교 교육이 아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 언급된 ‘서드베리 벨리 학교’와 같은 이상적인 학교가 더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도 그런 학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작위적이고 허울뿐인 놀이 교육 말고 진짜 놀이를 통한 교육.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곰곰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면서도 걱정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통제하려는 시도는 목적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우리가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하면,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인생의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방해하게 된다. p.300



24.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 20240129

사랑하는 책방의 추천 도서라 눈에 익혀둔 책. 도서관 관심 도서에 저장해 두었다가 빌려왔는데, 괜히 빌렸구나. 후회가 됐다.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거 좋은데 빌려 읽은 책이 너무 좋으면 짜증이 난다. 사서 읽을 걸. 이번 달에 같은 후회를 세 번째 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이 정말 좋았다는 얘기다.


서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 미친 솔직함은 뭐지?‘ 사실 나는 이 책에 대한,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터라 읽으면서 더 놀랐다. 평소 나는 시인의 산문집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 책도 시인의 산문집이란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작가님이 시인이셨다니. 놀라웠다. 그간 내가 사랑해 왔던 시인의 산문집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빠져들었다. 재미있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위트 속에 술술 풀어낸 쓸쓸함이 좋았다. 때로는 애처로운 마음마저 들었으나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잘 버텨주실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백은선 시인은 글의 마지막에 이 책이 첫 산문집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될 거라고 했다. 돈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은 시인으로 살 거라고 했다. 아쉽지만,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


우리, 다음번엔 시로 만나요.


한 가지 면만 가진 사람도 없고 한 가지 성격만 가진 인간도 없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슬프고 기쁘고 이상하고 안도하고 그런 반복을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는 게 내게 남은 삶을 탕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것은 나뿐이야. p.186



25. <Gen Z 100년 교육, 언스쿨링이 온다>, Kerry McDonald / 20240131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십 대 후반, 패기 넘치던 교육학도 시절에는 나름 진보주의적인 교육관을 지녔던 터라 ‘자유주의’ 교육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들을 많이 찾아 읽었다. 오랜만에 교육과 관련된 책을 읽으니 옛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자기 주도적 학습 좋고, 놀이식 교육 너무 좋지만, 좋은 건 알겠지만,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아서 씁쓸하다. 부모가 먼저 결단력 있게 언스쿨링을 외치며 아이를 제도권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선 책에서 제시한 언스쿨링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는 불확실한 이상을 쫓아 내 아이의 삶을 희생시킬 배포가 없다는 것이고.


패기 넘치던 교육학도는 어쩌다 이런 쫄보 아줌마가 되었을까.


부모는 아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 우리는 온당한 범위 안에서 자기주도성과 자제력을 장려할 수 있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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