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아이들의 미술 수업이 있는 날. 우리집 아들 둘과 둘째의 친구 시준이까지, 어린이집에서 아들 셋을 하원시켜 미술 학원으로 향한다. 어제는 학원 건물에 주차할 곳이 없어 건너편 주민 센터에 주차를 하고 학원으로 걸어갔다.
“자, 이제 길 건너야 하니까 우리 손 잡자. 시안이도 엄마 손 잡고 시준이도 이모 손 잡아.”
“나는 추우니까 주머니에서 손 안 뺄 거야. 손 안 잡을 거야.”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만 3세 시준이가 손 잡기를 거부했다. 조그만 애가 자기 생각을 조목조목 펼치는 게 너무 귀여워서 빵 터졌다. 생각할수록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심지어 엄마도 아닌 어른에게 싫은 걸 싫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시준이가 너무 좋았다.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이건 어림없는 일이다. 그때는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어른들의 말에 한 번도 싫다고 해본 적은 없지만 싫다고 했다간 큰일이 난다는 것쯤은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무조건 ‘네, 네, 괜찮아요’ 하던 게 습관이 돼서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냥 내가 좀 참고 말지’ 하는 게 생활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솔직한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게 너무 좋다. 특히 우리 둘째가 (둘째라 그런지) 싫다는 얘기를, 속마음을 드러내는 말을 참 잘하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를 닮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무척 기대가 된다. 분명 요즘의 ‘MZ세대’와는 또 다른 모습일 텐데, 얼마나 당차고 멋있을까. 이럴 때는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이 무척 달갑다. 분명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내향인이든, 외향인이든 성향에 관계없이 모두가 자연스레 각자의 방식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평소에는 화도 잘 내고 소리도 잘 지르는 엄마이지만, 아이들이 어렵사리 용기를 내 본인의 감정을 표출할 때는 되도록이면 그 감정을 수용해 주려고 노력한다. 자꾸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가짜 마음 말고, 진짜 마음을 꺼내놓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지 않도록.
말은 이렇게 하지만, 추워서 주머니에서 손 안 뺄 거라고 당차게 본인의 목소리를 냈던 시준이는 결국 이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꺼내 준 손이 어찌나 작고 따듯하던지.
미안해, 시준. 위험해서 그랬어… (나, 시준이의 대쪽 같은 진짜 마음 또 들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