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5일 월요일 날씨 갑자기 비
공구가 없어서 침대 조립은 못 하고, 매트리스만 깔고 잔 새 집에서의 첫날. 중국에도 쿠팡처럼 로켓 배송이 되는 사이트(Jingdong)가 있대서 어제 공구를 주문했더니 바로 오늘 도착했다. 뭐야, 중국도 살기 좋잖아? 침대가 생기고, 냉장고가 들어오고, 베란다엔 빨래가 널려 있으니 드디어 집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집 앞에는 뭐가 없어서 밥을 먹으려면 ‘롱지후’까지 이동을 한다. (롱지후는 정저우에 오자마자 묵었던 호텔이 있던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쇼핑몰이 있는 곳으로 추정) 집 근처에 새로운 곳을 찾아볼까 싶지만 더운데 걸어서 가긴 마땅치 않고 아파트 상가에 있는 음식점은 애플 지도 별점이 높지 않아서 외국인에게 진입 장벽이 높을 것 같아 안전하게 쇼핑몰 안에서 고르고 있다. 롱지후까지는 4km 정도인데 택시 타고 이동하면 택시비가 2천 원쯤 나온다. 여긴 택시비가 진짜 저렴해서 어딜 가든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런데 흡연 택시를 만나면 담배 냄새를 견뎌야 하고, 오래된 택시를 만나면 에어컨이 잘 안 나와 땀을 줄줄 흘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아, 지하철 요금도 구간에 따라 200원, 400원, 600원이었으니 여긴 대중교통 요금이 진짜 저렴한 편이다. (참고로 어린이는 키 130cm부터 발권하면 돼서 우리집 꼬마들은 무료!)
점심을 먹고 1층 스타벅스 옆에 있는 ‘CHAGEE’에 갔다. 음료 패키징도 예쁘고, 스벅과 함께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위용으로 짐작컨대 맛집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침 시음 행사 중이라 우롱티 어쩌구 하는 것을 한 입 마셔보니, 와우!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알고 보니 유명한 체인인데 내가 모르고 있던 거였다.) 단순하게 ‘지금 마신 것과 같은 걸로 한 잔 주세요’ 했지만 결코 단순하게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공차처럼 기호에 따라 당도와 얼음양을 조절할 수 있지만 나는야 까막눈. 직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주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분명 다음에도 또 마시고 싶을 맛인데 나의 짧디 짧은 언어로는 지금 내가 마신 것을 설명할 길이 없어 컵에 적힌 세부사항들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다음을 위하여.
이제 집이 좀 갖춰졌으니 오늘은 연구실에 가져다 놓은 짐을 가져오기로 했다. 집에 와서 포장해 온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좋았던 날씨가 한순간에 흐려지고 비가 정말 무섭게 퍼부었다. 날씨야, 이러지 마. 비는 내일부터 온다며… 순간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거라곤 젤리 나부랭이가 끝인데, 당장 애들 저녁은 어쩌지? 우산이 다 연구실에 있는 짐 속에 있어서 당장 우산도 없는데 어떻게 나가지? 빗줄기가 휘어지도록 퍼붓는 모습을 보니 고립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시작해 별별 생각을 다 한 쫄보. 이에 반해 남편은 일기예보에 비는 4시에만 잠깐 오는 걸로 되어있다며 태평하다. 니 눈에는 지금 저게 잠깐 내리고 그칠 비로 보이니? 속이 부글부글 했는데, 비는 정말 잠깐 동안 무섭게 퍼붓고 바로 그쳤다. 없는 걱정도 사서 하는 쫄보인 덕에 흰머리만 늘어난다. 으휴…
비가 그친 뒤, 저녁은 새로운 곳 탐방에 나섰다. 목적지는 ‘시티 온’. 중국 같지 않은 거리 풍경에 마음이 혹 했고, 지하에 있는 푸트 코트 같은 음식점에서 한 그릇에 3천 원도 안 되는 만둣국의 맛이 너무 황홀해서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쇼핑몰 입구에서 만둣국 사진을 보고 맛있게 생겨서 들어갔는데, 역시 메인에 걸 만한 맛이었다. 만둣국은 기름기 하나 없이 담백하고, (중국에도 이런 담백한 맛이 있었다니!!) 곁들임 메뉴로는 군만두처럼 보이는 것을 주문했는데 바닥은 바삭하고 위는 촉촉하고 속은 육즙이 가득, 게다 만두피는 은근하게 달콤한 환상의 맛이었다. 와, 역시 만두는 중국이구나!
중국에 와서 짝퉁 레고만 보고 정품은 한 번도 못 봤는데, 시티 온에 레고 매장이 있어서 신난 아이들과 남편을 레고 매장에 넣어두고 나는 쇼핑몰 탐방에 나섰다. 건물이 옆으로 아주 아주 넓고 꼬불꼬불해서 길 잃고 쇼핑하기에 안성맞춤인 듯했다. (대륙의 스케일이란!) 한참을 구경하다가 자라홈을 만나 눈이 번쩍, 홀린 듯 들어가 구경하고 있는데 왜 안 오냐는 남편의 전화에 찜해 둔 발매트를 하나 들고 가 호다다닥 결제를 했다. 돌아서서 나오며 확인해 보니 266위안. 뭐? 고작 발매트 하나에 5만 원이 넘는다고? 한국에서도 이런 과소비 한 적 없는데 중국이라고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구나. 정신 바짝 차려야지. 중국도 예쁜 건 비싸다!